예측하기 힘든 삶을 살게 해준 너에게 잘보이려고 쓰는 글
어렸을 때 나는 늘 변덕이 심하다는 말을 들었다.
참을성이 없다는 엄마의 잔소리에 가려져
그게 어떤 의미인지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나는 단순히 참을성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변화를 즐기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반복되는 똑같은 장면과 풍경을 오래 견디지 못한다.
결과가 너무 쉽게 예측되는 일 앞에서는
이상하게도 숨이 막힌다.
그래서였을까.
카드를 뒤집고, 뽑기를 기다리는 아이의 마음으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탐구하고 실험하는 과정이 좋았다.
연구원이라는 직업을 사랑했던 이유도
아마 그 짜릿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반대로,
큰 변화 없이 반복되는 일이나 풍경 속에 오래 머무는 것은
점점 나를 소진시켰다.
타고난 역마살이라고들 말하지만,
그 이동은 여행지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먹는 음식의 맛도,
질감도,
입는 옷도,
하는 일의 방식도,
머무는 역할도
어느 정도의 시간과 횟수를 지나면
그 안에 계속 머무르는 것 자체가
버겁게 느껴졌다.
독일 회사에서는
20년, 25년 근속한 직원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쉽게 바뀌지 않는 집 계약 구조,
안정적인 복지와 연금 제도,
관료적인 시스템까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 사회는 기본적으로
‘계속 머무는 삶’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다.
마치 오래머물수록 돌아가는 혜택이 점점 커지니 오히려 벗어나는게
손해로 느껴지게 하는 구조랄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를 구해줄 동앗줄이 아니라 그게 결국은
썩은 동앗줄이였다면 그때는 누구를 원망할 수있을까?
그런 환경 속에서 살면서
나의 역마살은 오히려 더 또렷해졌다.
새로운 나로 거듭나기 위해 또는 가다듬기 혹은 발현시키기 위해
연구원으로 일하면서도
디자인을 공부했고,
의료 봉사 현장을 드나들었고,
여행지를 기록하고 설명하는 일을 했고,
유튜브를 시작했고,
데이터를 다뤘고,
음악을 만들었고,
사업을 준비했고,
이렇게 글을 남기기도하고,
프리랜서로 춤을 추고 가르치기도하고,
노래를 하고,
디제잉을 했다.
하나로 정의되지 않는 이 이동들이
한때는 나 스스로에게도
일관성 없는 선택처럼 보였던 적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이것은 방황이 아니라
탐험에 가까웠다고.
다가오는 2026년,
내 피 속을 흐르는 이 역마살이
나를 또 어떤 세계로 데려다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이제는 이 변덕과 이동을
불안이나 결핍으로 해석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
지나고 보면
같은 풍경을 오래 바라보는것을 참지못하는 내 성향도,
예측 가능한 길 앞에서 망설이게 되는 마음도
나를 망가뜨린 적은 없었다.
아닌가? 장면이나 코스의 레벨만 바뀌어
마치 겨울 산속에 호랑이에게 죽기살기로 벗어난 후
다음엔 산멧돼지 혹은 곰을 만나 겨루는 식의 삶이였던건가?
어쨌든 그 덕분에, 오히려 언제나
새로운 장면과 풍경으로 나를 데려다주었다.
2026년
어디로 가게 될지는 모르지만,
또 다른 실험대 앞에 서게 되겠지.
카드를 뒤집듯, 뽑기를 기다리듯,
다시 한 번 호기심을 먼저 꺼내 들고.
예측되지 않는 삶이기에
나는 계속 움직일 수 있고,
그래서 아직도
살아 있다는 감각을 느낀다.
새해를 맞이한 모두에게 건배를
그리고 맘껏 헤맬 우리의 미래에게 미리 인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