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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리 Oct 25. 2022

조카

#조카에 대한 기억 #기억으로 사는 삶


사람은 생각과 감정으로 산다고 했다.

기억도 그중 한 부분이니 사람은 많은 부분을 기억에 의해 살아가는 것 같다.

 

미국에 사는 조카가 다녀갔다.

코로나에 발이 묶여 4년이 넘게 오지 못하다 정말 오랜만에 반갑게 얼굴을 마주했다.

중학생 때 미국으로 떠나 어느새 삼십이 훌쩍 넘은 어른이 되어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고 있는 조카딸.

내게는 아직도 어린 시절 종종 뛰어와 품에 안기던 

까무잡잡한 피부에 앞이마가 예쁘게 넓고

코가 조각해 놓은 듯 오뚝하니 귀여운 애기적 모습으로 기억에 남아 있는 그녀.

조카를 생각하면 늘 가슴이 아릿하다.

너무 어린 나이에 부모 품을 떠나 홀로 외국생활을 시작한 것이 

안쓰럽고 측은하게 여겨졌던 탓이다.

그래도 씩씩하게 잘 성장해서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꾸려가는 대견한 조카.

사실 따져보면 조카와 내가 함께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결혼해 분가해서 살던 남동생이 육아 때문에 다시 부모님 집으로 들어오면서 

조카와 나는 한 집살이를 하게 되었었다.

친정 조카로는 첫 번째인 조카는 집안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온 집안을 들었다 놨다 하며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제 엄마가 이른 출근을 하면 베개를 들고 종종걸음으로 엉덩이를 뒤뚱거리며 

내 침대로 파고들며 품에 안기던 귀여운 조카.

그 애기는 나를 '고모 엄마'라고 부르며 따랐었다.

내가 결혼하고 친정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신혼살림을 차렸을 때도 

친정 부모님은 조카를 가끔씩 내게 맡기시고 하루 휴가를 갖곤 하셨고

나는 그 하루를 조카와 여러 추억을 만들며 보냈다. 

물론 지금은 조카에게도 내게도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많지 않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그 시간 속의 따듯한 느낌과 사랑의 감정이 그대로 남아 있는 듯하다.


그렇게 애기 시절을 지내다 내가 외국살이를 시작하고 여러 해가 지나 

조카가 초등학생, 중학생이 되었을 때 귀국하여 잠시 같은 동네에 살았다.

그러다가 이번엔 조카가 미국으로 떠났으니 

조카와 내가 같이 한 시간은 계산해 보면 몇 년이 안 되는 짧은 기간인 것이다.

그렇게 서로 공유하는 삶을 산 기간이 길지 않음에도 

조카에 대한 나의 마음은 어릴 적 달려와 가슴에 안기며 실눈으로 웃던

그 모습을 보며 솟아나던 그 사랑을 그대로 갖고 있다.

아주 오랜만에 만나도, 멀리서 문자로 안부를 주고받아도, 

오래전 가슴에 새겨진 조카에 대한 사랑의 감정,

그 기억이 다이아몬드처럼 변함없이 반짝이며 가슴속에 따듯한 사랑의 운무를 일으킨다.

그럴 때면  조카는 내 마음속에서 다시금 애기적 모습으로 다가와 품에 안긴다.


모든 관계가 기억에서 나오는 감정으로 유지되고, 변형되고 하는 것인 것 같다.

조카에 대한 애기적 그 따듯한 사랑의 기억이 없다면, 

그 느낌과 감정이 남아 있지  않다면  조카와 나는 어떤 관계가 될까?

기억이 없다 해도 마음 깊은 곳에 저장된 사랑은 작용을 할까...


지금도 그녀는 풀밭에 서서 노란 들꽃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꽃보다 한참 더 예쁜 애기적 모습으로 내 가슴에 사랑의 감정을 가득 채운다.


- 조카가 늘 건강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아기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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