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애정 #끝없는 그리움 #이불 같고 우산 같은
“누구긴 누구야 '우리 엄마'지!”
두 단어가 입에서 나오는 순간 울컥하며 그 어떤 감정이 가슴속에서 함께 묻어 나온다.
그리움인지, 서러움인지...
수십 년을 함께 살았어도 남편은 내가 간장게장을 좋아하는 것을 몰랐다.
식성이 썩 좋지 않아 고기며, 생선 등 비리고 느끼한 것을 요리조리 피하던 내가
생각지 않게 게장을 맛있다 하며 먹는 것을 보고 남편은 희한하다는 듯이 쳐다본다.
결혼 후 나는 간장게장을 담가본 적이 없었다. 솜씨 좋으신 시어머님이 몇 번 담가주시고,
여행 다니면서 가끔씩 먹어 본 것이 전부.
그나마 비린 맛이 심하면 남편에게 미뤄버리곤 했던 때문에
게장은 내가 썩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라고 그의 머릿속에 써버렸었나 보다.
그런데 오랜만에 입에 맞는 게장을 만나고 보니 식욕이 돋아 숟가락질을 부지런히 하는 나를 보며
눈을 둥그렇게 뜨고 남편이 묻는다.
"아니, 게장을 그렇게 좋아하네! 언제 게장을 먹어서 게장 맛을 알아?"
"언제는..., 어릴 때 먹던 맛이지."
"아니, 누가 담가 줘서?"
"누구긴 누구야, 우리 엄마지."
순간 울컥하며 그 무엇이 목구멍을 막는다. 전혀 예상치 못한 감정이다.
잠시 숟가락질을 멈추며 슬금슬금 북받쳐 올라오는 눈물을 꾹 밀어 넣는다.
커다란 추억의 보따리가 환등기처럼 기억 속에 펼쳐져 상영을 시작한다.
돌이켜보면 맏이인 나는 엄마한테 그리 살가운 딸은 아니었다.
연년생 동생을 본 때문에 아기 때부터 할머니 품에서 자란 내게는 엄마의 자리에 항상 할머니가 계셨다.
그런 나는 엄마와 늘 어느 정도의 거리가 있었고 할머니께처럼 정스럽게 굴지도 못했었다.
다른 애들처럼 엄마의 치마폭에 매달려보지 않았고 엄마의 품에 파고들어 보지도 않았으며
엄마하고 조곤조곤 속삭이며 얘기해보지도 않았다.
엄마에게는 동생들이 있었고, 내게는 넓은 바다 같은 할머니가 계셨었다.
다 커서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돌아가신 할머니를 엄마가 대신하지 못했었고
그때는 엄마의 품이 그리 필요하지도 않았었다.
엄마 또한 사춘기의 내게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렇게 엄마와 나는 서로의 마음을 알뜰히 챙기지도 사랑하지도 않은 채 긴 세월을 같이 살았다.
점점 연세 들어가시며 일상의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어지셨던 엄마가
건강 기울어지신 아버지 시중을 내게 넘겨 버리셨을 때,
그리고 후에는 당신 시중마저 내 차지가 되었을 때 나는 엄마를 무척 원망했었다.
내게는 너무도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돌아가실 때까지 엄마와의 긴 여정은 나와 엄마의 얽힌 인연을 녹이는
인고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주위사람들의 시각으로 나는 좋은 딸이었고, 모두들 최선을 다했다고 말해도
나 스스로는 알고 있었다. 내가 엄마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었다는 것을.
엄마가 병상에 오래 누워계시면서 내 시중을 받으시던 어느 날,
갑자기 내 마음의 어떤 응어리가 순간 녹으면서 나는 내가 엄마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엄마 또한 당신의 방식대로 나를 믿고 사랑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 나오는 감정이었다.
나는 힘없이 눈뜨고 바라보시는 엄마를 품에 안고 "엄마, 사랑해."라고 뺨을 대었다.
처음으로 해본 말이었다.
나의 두 딸들은 어릴 때부터 남다르게 엄마를 찾았다.
물론 어린 시절에 달랑 네 식구 밖에 없는 외국생활을 했으니 엄마가 어린 딸들에게는 전부였으리라.
그래서인지 나이 먹어 어른이 된 지금도 시시때때로 다가와 비비고, 껴안고, 입 맞추고 살갑게 굴고,
다 큰 덩치들이 작은 침대에 비집고 들어와 나를 새우잠 자게 만들기도 한다.
가끔씩 이제는 나이 들어 쪼그라든 내 무릎에 나보다 큰 덩치들이 와서 어린애처럼 앉으면
남편은 눈을 부릅뜨고 한소리 하지만 나는 힘들어도 받아준다.
"그래, 엄마가 있어서 좋겠다."
그런 딸들이지만 어른이 돼버린 딸들이 아직도 엄마를 늘 모든 것을 받아주는 바다 같은 존재로
생각할 것이라는 착각은 하지 않는다.
작게, 크게 늘 부딪히고 다투고, 힘들어하다가 가끔씩 위로가 필요하거나 휴식이 필요할 때
잠깐씩 곁을 주는 것뿐이지.
딸들 눈에 이제는 같은 여자로 늙어가는 엄마에 대한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것이 자연스레 읽힌다.
걱정, 근심 없이 푸근한 고향 같은 엄마 품에 하루 종일 뒹굴기에는 이미 너무 많이 지나버린 세월.
얼마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 딸들에게 나는 어떤 엄마일까?
오늘의 나처럼 문득 북받쳐 오르는 그리움에 눈물이 나는 '우리 엄마' 일까...
참으로 '우리 엄마'라는 말은 바다 같이 모든 것을 받아주고, 포근하고 따듯하게 감싸주는 솜이불 같고,
비 오고 눈 오면 막아주는 우산 같고, 얼어붙은 호수를 녹이게 하는 봄의 훈풍 같은 말이다.
물론 요즘 드라마나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모질고, 엽기적인 엄마들도 있고,
그런 엄마들이 아니더라도 자식과 끝없이 부딪히며 사는 것이 현실이지만,
엄마라는 단어는 인간 본연의 짙은 향수를 느끼게 하는 말이 아니던가?
그립고 따스한 고향 같은, 그곳에 가면 아늑하게 근심 걱정 없이 푹 쉴 수 있는 곳.
그곳에 흰 앞치마를 두르고 밥을 지으시다 두 손 벌려 나를 맞아 주는 엄마가 있다.
내가 어떤 지친 모습일지라도 그 품에 받아주는 '우리 엄마'.
세월이 그리고 또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우리 엄마'라는 말은 그냥 그대로
언젠가는 돌아갈 따스한 마음의 고향 같은 느낌으로 변하지 않고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