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바람이 시원한 공원에는
하루를 마무리한 많은 사람들이 밤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벤치가 여러 개 놓인 작은 분수대 옆 광장에는
어린 두 딸과 젊은 엄마가 즐겁게 놀고 있다.
킥보드를 싱싱 잘 타는 작은 아이와 자전거를 서툴게 타는 큰아이,
아직 젊은 에너지가 가득한 엄마는 두 아이를 바라보며 밝고 경쾌한 웃음을 보낸다.
웃음소리는 밤공기를 울리며 나뭇잎을 흔든다.
사뭇 정겨운 풍경이다.
똑같은 모습으로 두 딸들과 공원에서 놀던 옛시간이 떠오른다.
작은 딸의 어릴 적 모습이 꼭 저렇게 귀여웠었지.
체구에 비해 많이 컸던 킥보드에 매달려 신나게 내달리던 작은 딸.
처음 사준 핑크색 자전거를 타던 큰 딸의 모습은 또 얼마나 예뻤던가.
막 단풍을 입기 시작한 벚나무 사이로 공원의 두 아이가
신나게 달리는 모습에 어린 시절 두 딸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과거와 현재의 아이들 웃음소리가 뒤섞여 어둠을 흔들며 하늘로 올라간다.
그 맑은 웃음소리에 문득 나의 어린 시절이 깨어난다.
그 옛날, 밤놀이가 무엇이 있었던가...
마당에 돗자리 펴고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을 세던 시절.
아버지는 저녁상을 치우고 하루가 마무리될 시간이면
종종 우리 삼 남매의 재롱잔치를 즐기셨다.
동생들과 나는 안방 거울 달린 장 앞에 서서 손을 앞에 모으고는
"고향 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푸른 하늘 끝닿은 저기가 거긴가~~~"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하는
동요들을 낭랑하게 불러 젖혔었다.
아랫목에 앉으신 아버지는 박수를 보내시며 웃음을 지으셨고,
때론 상금으로 5원짜리 동전도 주셨다.
그 재롱잔치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때까지 계속되었었다.
밤산책을 따라 나와 손을 잡고 걷던 딸아이는 그 얘기를 듣고
"아이, 엄마 귀여워." 하며 나이 든 엄마 볼을 잡아당긴다.
그랬다.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분명히 있었는데,
딸은 알 수가 없지. 딸이 아는 내 모습은 내가 엄마가 되고 난 이후의 모습일 뿐.
그건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엄마의 결혼 전의 시간을 어찌 알 수가 있었을까.
엄마의 결혼사진과 젊은 시절 사진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으로 엄마의 젊은 시절을 알고 느끼기는 힘들었다.
엄마는 내게 늘 삶의 무게에 힘들어하는 중년과 노년 모습으로만 기억에 남아 있었다.
내가 돌아가신 엄마의 젊은 시절을 일부분이라도 알게 된 것은
서글프게도 엄마 장례식장에서였다.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아홉남매의 막내딸이었던 엄마의 조카들이 엄마의 젊은 시절을 회상한다.
엄마보다 나이가 그리 적지 않은 조카들은 엄마와 어린 시절을 공유했었다.
그들에게서 엄마가 얼마나 예뻤는지,
또 엄마가 얼마나 활발하고 에너지 넘쳤는지,
그리고 젊은 엄마가 모두의 동경대상인 멋쟁이 신여성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젊었던 엄마의 모습 작은 부분을 직접 전해 듣는 것은 아주 색다른 감동이었다.
나는 내가 모르던 젊고 멋있는 엄마를 그때,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만났었다.
그렇게 엄마도 아름답고 활기찬 젊은 시절이 분명히 있었는데
그 시절은 결혼 이후 삶의 그림자에 다 묻히고 잊혀버린 것이었다.
내가 엄마의 젊은 시절을 알 수가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이겠지.
지금 나의 딸이 내 젊은 모습을 모르는 것처럼.
그렇게 흘러가 잊히고, 사라지고, 새 삶이 이어지는 게 인생이리라.
구름 사이로 밤하늘 별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저 별들 속 나의 별은 지나간 긴 세월을 다 알고 있겠지.
그 보이지 않는 연결망에는
엄마와 나와 나의 딸과 또 그 이전의 시간이 모두 담겨 있을 것이다.
밤 공원에서 아주 오래된 추억을 더듬으며
나는 곁에 앉은 딸처럼 나의 엄마를 몰랐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가을밤 가로등 불빛이 따듯한 벤치에 앉아
나보다 더 큰 딸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엄마는 엄마를 잘 몰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