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동아리방

그곳에 남겨진 여운

by 잉크 뭉치




종강 이후 드디어 마지막 남은 신춘문예를 마치고 자유로워졌다.


그럼에도 잡힌 일정과 약속들이 남아 있어 하나씩 처리하기 위해 몸을 움직인다.






동아리에서 만난 선배와 잠시 미팅을 가진 뒤,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다.

그 대화 속에서 위로와 격려, 가르침과 교훈이 자연스럽게 내 안에 스며들었다.


그렇게 들려오고, 경험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써 내려가는 것, 그것이 바로 나에게 어 소설의 의미다.


그러나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허구가 아닌, 오롯이 나의 일을 적어 내려가는 일기이니까.





대화가 끝나고 헤어진 곳은 지하철역의 개찰구였다.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인사를 나누고, 나는 가방에 반납하지 못한 학교 도서를 품은 채 지하철에 올랐다.


학교 도서관에 책을 반납한 뒤 돌아가던 길이었다.

아마도 선배와 나누었던 이야기가 머릿속에 맴돌아서였을까.


종강 후 약간의 허전함이 감도는 캠퍼스를 걷다 문득,

동아리 방에 혹시나 누군가 남아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발걸음을 그곳으로 옮겼다.





동아리 방을 자주 찾긴 했지만,

그곳에서 관계의 뿌리를 다양하게 넓히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아 있어서였을까.


아니면 먼 길을 걸어온 수고에 비해 그 목적이 너무 빈약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을까.


그래서인지 혹시나 동아리 방에 단 한 사람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 공간에서 깊은 대화를 통해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으리라는 작은 희망을 품게 되었다.





그러나 희망은 언제나 희망일 뿐이었다.

동아리 방은 텅 비어 있었고, 나는 조용히 불을 전부 켜지 않고 반만 켰다.


스며드는 희미한 빛이 방 안에 약간의 그림자를 드리우며 서서히 공간을 밝혀 나갔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바로 옆에 걸린 보드마카 칠판을 바라보았다.

칠판 위에는 동아리 공지 포스터와 함께 부원들이 남긴 글씨와 그림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최근 개인적인 일정과 사정으로 인해 동아리 부원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지 않았던 나였다.

그럼에도 그들과 더 친밀한 시간을 갖지 못한 것에 아쉬움은 없었다.


그만큼 나의 삶의 목적은 확고했기 때문이었다.





칠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벽 한쪽에는 다양한 사진들이 빼곡히 걸려 있었다.

역시 대학생 아니랄까 봐, 인생 네 컷 사진들이 허전한 동아리 방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마치 아무것도 없는 길가의 모퉁이에 꽃과 화단이 놓인 것처럼,

벽은 사진들 덕분에 더 생기 있어 보였다.





예전부터 동아리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은 있었지만,

이번에 사진을 다시 볼 때는 그들의 얼굴과 생김새를 더욱 흥미롭게 살펴보게 되었다.


사진 속 사람들을 내가 아는지 모르는지에 상관없이,

공통적으로 밝은 미소가 담긴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 나와 같은 시기에 동아리에 들어왔던 동기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평소 조용하고 내성적인 녀석이었는데, 사진 속에서는 동아리 무리와 함께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모습에 녀석이 잘 적응한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나 자신은 그렇지 못했다는 사실에 약간의 쓸쓸함이 스며들었다.


문득, 나도 이들의 무리에 온전히 소속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에 잠시 나도 모르게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오늘 미팅에서 만난 선배의 사진을 바라보며,

내가 이 방에 들어올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동아리에 소속된 듯한 기분을 다시금 느꼈다.





다음 학기에는 동아리 사람들과 더 좋은 만남과 추억을 쌓길 기대하며,

선배가 나에게 해주었던 말을 떠올려본다.


그 말이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동아리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얼마나 챙겨주려고 애썼는지를 느끼게 해 준 말이었다.


비록 그 문장은 희미해졌어도,

따뜻한 온기만은 마음속 깊이 전해져 있었다.





그렇게 생각에 잠기던 것도 잠시였다.

슬슬 다음 일정이 있어 발걸음을 다시 문 쪽으로 옮긴다.


켜져 있던 불을 끄며 감상의 시간도 자연스럽게 끝을 맺는다.

마치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기 전, 어두운 화면을 바라보는 기분 같았다.


문 손잡이를 잡고 마지막으로 동아리 방을 돌아보았다.


허전해 보이는 텅 빈 방은 약간의 그림자 속에서 어둡게 느껴졌지만,

창가로 스며드는 햇살이 희미한 따스함으로 내 마음을 채웠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형태로써 지닌 것이 아니라, 생각과 마음으로써 존재한다.


나는 그 말의 뜻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기에,

동아리 방의 문을 미련 없이 열고 나올 수 있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아마 다시 보지 못할, 올해의 마지막 동아리 방.


나는 그렇게 조용히 문을 닫았다.


앞으로 처리해야 할 일들을 떠올리며,

과거의 기억을 뒤로한 채,

나는 다시 현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2024년 12월 19일, 목요일 오후 4시였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평범한 하루,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날짜.


그럼에도, 그 짧았던 순간에 스며든 의미는

날짜를 특별게 만들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