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힘들수록 시를 찾게 되는가
힘들 때마다 시를 찾는 이유를
나는 한동안 설명하지 못했다.
그저 습관처럼, 버릇처럼
시집을 펼쳤을 뿐이다.
이상하게도 삶이 괜찮을 때는
시가 잘 읽히지 않는다.
마음이 평평한 날에는
그 문장들이 지나치게 조용해서
오히려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마음이 무너질 것 같은 날,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가득 찬 날에는
시 한 줄이 유난히 크게 들린다.
그건 아마
시가 답을 주기 때문이 아니라,
질문을 대신 품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윤동주의 시에는
“괜찮다”는 말이 없다.
대신
“나도 그랬다”는 숨결이 있다.
그 숨결이
지금의 나를 부끄럽게 만들지 않고,
그대로 두어 준다.
우리는 힘들수록
설명보다 공감을 원한다.
해결보다 이해를 원한다.
시는 그 역할을 한다.
그래서 시는
문제가 해결된 후에 읽는 글이 아니라,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도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글이다.
나는 시를 통해
조금 덜 외로운 상태로
오늘을 건너간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다시 하루를 살아갈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