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나를 살려놓은 뒤에 남은 것

방황의 끝에서 다시 글 앞에 앉다

by 하얀 오목눈이

윤동주의 시를 읽고 나면

이상하게도 당장 무언가를 해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대신,

“그래도 오늘을 조금 더 살아도 되겠다”는 마음이 남는다.


그게 참 신기했다.

보통 위로라는 건 등을 떠미는 방식인데,

그의 시는 나를 가만히 앉혀 두는 방식이었으니까.


글을 쓰다 멈춰 서 있던 날들,

나는 스스로에게 꽤 가혹했다.

왜 이렇게 느린지,

왜 아직도 흔들리는지,

왜 확신 하나 없이 문장 앞에 앉아 있는지.


하지만 윤동주의 시를 읽고 나서부터는

그 질문이 조금 바뀌었다.

“왜 아직도 부족할까?”에서

“그래도 아직 쓰고 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로.


시가 나를 다시 살려놓은 뒤에 남은 건

거창한 용기가 아니라,

다시 펜을 드는 아주 작은 이유였다.


그날 이후로 나는

완성된 문장을 목표로 삼지 않게 되었다.

대신,

하루에 한 줄이라도 진심을 남기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윤동주 시인이 그랬던 것처럼,

결과보다 태도를 지키는 쪽을 택했다.


글을 쓰는 일이 다시 쉬워진 건 아니다.

여전히 막히고, 여전히 흔들린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방황을 실패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방황은

글을 버리라는 신호가 아니라,

글에 조금 더 솔직해지라는 신호라는 걸

나는 시를 통해 배웠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글 앞에서 이렇게 말해본다.

“오늘은 잘 쓰지 못해도 괜찮아.

그래도 너는 여기까지 왔으니까.”


윤동주의 시는 여전히

내가 가장 자주 돌아오는 자리다.

힘들 때마다,

의심이 몰려올 때마다,

‘왜 쓰는지’를 잊어버릴 때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는

다시 한 번 확인한다.

글은 나를 증명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내가 나로 살아가고 있다는 기록이라는 걸.


그래서 오늘도 쓴다.

아직 미완성인 삶을,

아직 흔들리는 마음을,

그러나 분명히 살아 있는 하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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