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 버텨야 하는 걸까
민수가 돌아간 뒤에도
나는 한동안 같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심장이 조금 빨리 뛰고 있었다.
아까 어깨를 밀쳤던 느낌이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민수가 말했다.
“신경 쓰지 마.”
하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다시 박스를 들었다.
삑.
스캐너 소리가 났다.
그리고 걸었다.
창고는 아까와 똑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지게차가 지나갔고
사람들은 박스를 옮기고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나는 계속
아까 그 사람들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들은 창고 반대편에서 일하고 있었다.
가끔 나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시선을 피했다.
‘그냥 일하자.’
그게 제일 안전한 방법 같았다.
시간이 조금 흘렀다.
트럭 하나가 더 들어왔고
사람들이 다시 바빠졌다.
나는 파렛트 옆에서 박스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 내 바로 옆에 멈췄다.
“야.”
그 목소리였다.
아까 그 사람이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옆에는 아까 같이 있던 사람도 있었다.
“왜요.”
내 목소리는 생각보다 작았다.
그는 박스를 하나 발로 밀었다.
“민수랑 친해?”
나는 잠깐 멈췄다.
“아니요…”
그는 웃었다.
하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근데 왜 붙어 다녀.”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때 다른 사람이 말했다.
“형 그냥 놔둬.”
하지만 말투는 전혀 말리는 느낌이 아니었다.
오히려 재미있어하는 것 같았다.
첫 번째 사람이 다시 말했다.
“여기 처음이지?”
“네.”
“그럼 잘 들어.”
그는 조금 몸을 숙였다.
“여기서 누가 편 들면 안 좋아.”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그는 내 말을 끊었다.
“민수도.”
그리고 말했다.
“괜히 끼어들다가 같이 욕먹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그 사람이 갑자기 내 어깨를 툭 쳤다.
이번에는 일부러라는 게 분명했다.
“표정 풀어.”
그는 말했다.
“겁먹은 것 같잖아.”
뒤에서 웃음이 났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손에 힘이 조금 들어갔다.
그때였다.
갑자기 내 장갑을 누군가 잡아당겼다.
나는 순간 몸이 앞으로 쏠렸다.
“어—”
뒤에서 웃음이 터졌다.
그 사람이 장갑을 놓았다.
“아 미안.”
말투는 또 전혀 미안하지 않았다.
나는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었다.
‘참자.’
그 생각이 먼저 들었다.
여기 온 지
이틀밖에 안 됐다.
괜히 문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때였다.
그 사람이 다시 말했다.
“근데.”
나는 고개를 들었다.
“너 팀장이 좋아하나 보다.”
나는 놀랐다.
“아니요.”
그는 피식 웃었다.
“아까 너 이름 부르던데.”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그건 그냥
지시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다르게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뒤에 있던 사람이 말했다.
“형, 그만해.”
하지만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때 멀리서 목소리가 들렸다.
“야!”
민수였다.
그는 우리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 사람은 민수를 보더니 말했다.
“또 왔네.”
민수가 내 옆에 섰다.
“왜 자꾸 건드려요.”
첫 번째 사람이 말했다.
“건드린 적 없는데.”
민수가 말했다.
“아까도 그랬잖아요.”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장난이라니까.”
민수는 짧게 말했다.
“장난 아니잖아요.”
잠깐 정적이 흘렀다.
창고 소리가 멀게 들렸다.
삑.
지게차 경고음.
누군가 박스를 내려놓는 소리.
하지만 우리 주변만
조용한 느낌이었다.
그 사람이 말했다.
“너 요즘 말 많다.”
민수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냥 일하게 해요.”
몇 초 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람이 웃었다.
“그래.”
그는 돌아섰다.
“오늘은 여기까지.”
다른 사람도 따라갔다.
나는 그들이 멀어지는 걸 보고 있었다.
민수가 말했다.
“괜찮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지만 사실
조금 떨리고 있었다.
민수가 한숨을 쉬었다.
“괜히 신경 쓰이게 했네.”
나는 바로 말했다.
“아니에요.”
잠깐 침묵이 흘렀다.
민수가 말했다.
“그래도…”
그는 창고 반대편을 잠깐 봤다.
“너 너무 참지만 마.”
나는 그 말을 듣고
잠깐 멍해졌다.
“네?”
민수는 말했다.
“여기서 너무 참으면.”
그리고 말을 멈췄다.
나는 그 다음 말을 기다렸다.
민수는 다시 박스를 들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사람들이 어디까지 참는지 보려고 해.”
나는 그 말을 한동안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 처음으로
이 창고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있다는 걸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그 선을 넘으면
문제가 되고
그 선을 넘지 않으면
계속 시험받게 되는
그런 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