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퇴근길, 그리고 어머니의 전화
창고 안 스피커에서
짧은 안내음이 울렸다.
“오늘 작업 여기까지.”
누군가 크게 말했다.
“퇴근이다!”
그 말이 떨어지자
사람들 움직임이 조금씩 달라졌다.
아까까지는
박스를 옮기던 손들이 바빴지만
지금은
장갑을 벗고
허리를 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누군가는 크게 하품을 했다.
“아… 허리야.”
누군가는 말했다.
“오늘 물량 왜 이렇게 많았냐.”
사람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섞였다.
나는 마지막 박스를 내려놓고
잠깐 숨을 고르고 있었다.
손바닥이 조금 아렸다.
장갑을 벗어 보니
손가락 마디가 붉어져 있었다.
민수가 옆에서 말했다.
“첫날인데 버텼네.”
나는 조금 웃었다.
“…생각보다 힘드네요.”
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 그래.”
그는 물병을 한 모금 마셨다.
“근데 형은 괜찮은 편이에요.”
나는 물었다.
“왜요?”
민수는 웃었다.
“첫날에 중간에 사라지는 사람도 많아요.”
나는 잠깐 놀랐다.
“정말요?”
“네.”
민수는 어깨를 으쓱했다.
“점심 먹고 안 오는 사람도 있고.”
나는 창고 안을 한번 둘러봤다.
아까 나를 밀치던 사람들도
저쪽에서 장갑을 벗고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나를 잠깐 쳐다봤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른 사람과 웃으며 이야기했다.
나는 괜히 시선을 피했다.
민수가 말했다.
“신경 쓰지 마요.”
“…네.”
하지만
몸이 조금 긴장되어 있었다.
몇 분 뒤
사람들이 하나둘
출입문 쪽으로 걸어갔다.
퇴근 카드 찍는 기계 앞에
줄이 생겼다.
삑.
삑.
기계 소리가
짧게 반복됐다.
내 차례가 왔다.
나는 카드를 찍었다.
삑.
그 짧은 소리가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
‘퇴근…’
첫날이 끝난 순간이었다.
밖으로 나오자
차가운 공기가 얼굴에 닿았다.
해는 이미 많이 내려가 있었다.
하늘이
주황색과 회색 사이 어딘가였다.
민수가 말했다.
“형 어디로 가요?”
“버스요.”
“아.”
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반대쪽이에요.”
잠깐 어색한 침묵이 있었다.
그리고 민수가 말했다.
“오늘 고생했어요.”
나는 조금 웃었다.
“민수 씨도요.”
민수는 손을 한번 흔들었다.
“내일 봐요.”
“네.”
민수는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나는 혼자
천천히 버스 정류장 쪽으로 걸었다.
발이 조금 무거웠다.
허벅지가 묵직했다.
아까는 몰랐는데
몸이 이제야 피곤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도로 옆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고 있었다.
차들이 지나갈 때마다
불빛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잠깐
하늘을 올려다봤다.
‘첫날 끝났다…’
그 생각을 하는 순간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지이잉—
나는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에
익숙한 이름이 떠 있었다.
어머니.
나는 잠깐
멈춰 서 있었다.
그리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내 목소리는
생각보다 조금 작게 나왔다.
어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아들.”
익숙한 목소리였다.
“일 끝났어?”
나는 잠깐 웃으려고 했다.
“…네.”
“지금 퇴근해요.”
어머니가 말했다.
“오늘 첫날이잖아.”
“어땠어?”
나는 잠깐 말을 하지 못했다.
창고에서 있었던 일들이
잠깐 머릿속을 스쳤다.
무거운 박스.
사람들의 시선.
뒤에서 밀리던 순간.
그리고
민수의 말.
‘질투.’
나는 잠깐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말했다.
“…괜찮아요.”
어머니가 다시 물었다.
“힘들지 않았어?”
나는 웃으려고 했다.
하지만 목소리가
조금 이상하게 나왔다.
“…괜찮아요.”
잠깐 침묵이 흘렀다.
어머니는
내 목소리를 듣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아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밥은 먹었어?”
“…네.”
사실은
점심 이후로 제대로 먹은 게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했다.
어머니는 잠깐 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그리고 말했다.
“너 너무 무리하지 마.”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
가슴이 조금 아팠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버스 정류장 의자에
천천히 앉았다.
“…네.”
어머니가 말했다.
“힘들면 말해.”
“엄마한테 숨기지 말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눈앞에
버스 불빛이 멀리서 보였다.
하지만
그게 잘 보이지 않았다.
눈이 조금 뜨거워졌다.
나는 최대한
평범하게 말하려고 했다.
“…괜찮아요.”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어머니는
그걸 들은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말했다.
“아들.”
“…네.”
“오늘 고생했어.”
그 말이 들리는 순간
나는 잠깐
말을 할 수 없었다.
창고에서 하루 종일
버티고 있던 마음이
그 말 한마디에
조금 흔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겨우 말했다.
“…네.”
버스가
정류장 앞에 멈췄다.
문이 열리며
공기가 움직였다.
나는 휴대폰을
귀에 댄 채 말했다.
“엄마.”
“응?”
나는 잠깐 말을 고르다가 말했다.
“…집에 가서 또 전화할게요.”
어머니가 말했다.
“그래.”
“조심히 가.”
나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천천히
버스에 올라탔다.
카드를 찍었다.
삑.
나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창밖 가로등이
하나씩 뒤로 흘러갔다.
나는 창문에
이마를 살짝 기댔다.
그리고
작게 중얼거렸다.
“…괜찮다.”
하지만
그 말은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나도 잘 모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