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법을 배우는 시간
창고 일을 시작한 지
어느새 한 달이 지났다.
처음 출근하던 날과 비교하면
몸은 많이 익숙해졌다.
무거운 박스를 드는 법도
어느 정도 알게 됐고
스캐너를 찍는 손도
이제는 거의 자동처럼 움직였다.
삑.
박스를 들고
파렛트 위에 올린다.
그리고 다시 이동한다.
하루 종일 반복되는 일이지만
처음처럼 숨이 턱 막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몸이 익숙해진 것과
사람들이 익숙해지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야 신입.”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돌아봤다.
한 달 전부터
나를 괴롭히던 선임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박스를 발로 툭 밀었다.
“이거 왜 여기 놔.”
나는 말했다.
“저쪽 라인에서—”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가 말을 잘랐다.
“말대꾸하지 말고 치워.”
주변에 있던 몇 명이
작게 웃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박스를 들었다.
그리고 옮겼다.
뒤에서 또 목소리가 들렸다.
“신입 요즘 말 많아졌네.”
“그러게.”
“한 달 됐다고 이제 좀 안다 이거지?”
나는 그냥 일을 했다.
괜히 말을 하면
더 길어질 걸 알고 있었다.
박스를 들고 이동하는 동안
뒤에서 또 들렸다.
“야.”
“일 좀 빨리해라.”
“여기 놀러 왔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이건
일 때문이 아니라는 걸.
그냥
나를 괴롭히는 거였다.
점심시간.
창고 옆 작은 휴게실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구석 자리에 앉아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그때 민수가 옆에 앉았다.
“형.”
나는 고개를 들었다.
“네.”
민수는 내 얼굴을 잠깐 보더니 말했다.
“…또 뭐라 했죠?”
나는 잠깐 웃었다.
“아니에요.”
민수는 한숨을 쉬었다.
“티 나요.”
그때 옆에서 누군가 말했다.
“또 그 형들이야?”
고개를 돌려보니
지훈 형이었다.
같은 라인에서 일하는
조금 나이가 있는 형이었다.
나는 고개를 조금 숙였다.
“…괜찮아요.”
지훈 형이 말했다.
“괜찮긴.”
그는 젓가락으로 김치를 집으며 말했다.
“그 사람들 원래 그래.”
민수도 말했다.
“형 너무 참지 마요.”
나는 잠깐 웃었다.
“…일해야죠 뭐.”
지훈 형이 말했다.
“그래도 사람은 사람이지.”
잠깐 조용해졌다.
그리고 지훈 형이 말을 바꿨다.
“오늘 끝나고 시간 있어?”
나는 물었다.
“왜요?”
민수가 웃었다.
“저녁 먹으러 가요.”
“형도 가요.”
나는 잠깐 멈췄다.
“…저요?”
지훈 형이 말했다.
“왜.”
“사람 밥 먹는데 허락 필요해?”
나는 조금 웃었다.
“…아니요.”
민수가 말했다.
“오늘 스트레스 풀어야죠.”
나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조금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리고 그날
퇴근 후.
창고 앞에는
몇 명이 모여 있었다.
지훈 형.
민수.
그리고 같은 팀에서 일하는
두 명의 동료들.
지훈 형이 말했다.
“가자.”
우리는 창고 근처 골목으로 걸어갔다.
조금 걸어가자
작은 술집이 보였다.
문 위에
낡은 간판이 걸려 있었다.
문을 열자
따뜻한 공기가 나왔다.
“어서 오세요.”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민수가 메뉴판을 보며 말했다.
“일단 소주 두 병?”
지훈 형이 웃었다.
“신입도 마셔?”
나는 잠깐 웃었다.
“…조금은요.”
“좋지.”
잠시 뒤
탁자 위에
소주병과 안주가 놓였다.
잔이 채워졌다.
지훈 형이 말했다.
“자.”
“한 달 버틴 거 축하.”
민수가 웃었다.
“진짜 축하할 일이에요.”
나는 조금 놀랐다.
“…그 정도인가요.”
지훈 형이 말했다.
“여기서 한 달이면 대단한 거야.”
잔이 부딪혔다.
짤랑.
나는 한 모금 마셨다.
목이 조금 따끔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풀렸다.
민수가 말했다.
“형 처음 왔을 때 기억나요.”
“완전 긴장했잖아요.”
지훈 형이 웃었다.
“맞아.”
“지게차 지나가는데 굳어 있었지.”
사람들이 웃었다.
나도 조금 웃었다.
그리고 그 순간
오늘 창고에서 들었던 말들이
조금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지훈 형이 말했다.
“너무 신경 쓰지 마.”
나는 고개를 들었다.
“네?”
그는 말했다.
“그 형들 말이야.”
“…그냥 그런 사람들이야.”
민수가 말했다.
“형은 잘하고 있어요.”
나는 잠깐 말을 하지 못했다.
그냥
잔을 조금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말했다.
“…고맙습니다.”
지훈 형이 웃었다.
“뭐가 고마워.”
“같이 일하는데.”
술집 안에서는
사람들 웃음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밖에서는
차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소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그리고 느끼고 있었다.
창고에서는
하루 종일
사람 때문에 힘들었지만
이렇게
같이 웃어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오늘 하루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다는 걸.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내일도…’
‘버틸 수 있겠다.’
그렇게
창고 생활 한 달째의 밤이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