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 조금씩 올라가는 자리

인정과 질투 사이

by 하얀 오목눈이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렀다.


창고 일을 시작한 지

어느덧 몇 달이 지나 있었다.


처음에는

박스 하나 드는 것도 버거웠지만


지금은

몸이 먼저 움직였다.


삑.


스캐너를 찍고

박스를 분류한다.


어느 위치에 어떤 물건이 들어가는지

대충 머릿속에 그려졌다.


“거기 말고 이쪽 라인이야.”


누군가 말하면

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리고 바로 옮겼다.


그 모습을

팀장이 몇 번이나 지켜보고 있었다.


어느 날이었다.


아침 작업이 시작되기 전

팀장이 나를 불렀다.


“잠깐 와봐.”


나는 조금 긴장하며 다가갔다.


“네, 팀장님.”


팀장은 팔짱을 끼고

잠깐 창고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요즘 일 많이 늘었더라.”


나는 잠깐 멈칫했다.


“…감사합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왔을 때보다 속도도 괜찮고.”


“실수도 거의 없고.”


잠깐 침묵이 있었다.


그리고 팀장이 말했다.


“다음 달부터 위치 조금 바꿔보자.”


나는 물었다.


“어떤… 위치요?”


팀장이 말했다.


“라인 정리 맡아봐.”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나는 잠깐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옆에 있던 민수가

눈을 크게 떴다.


“형…”


민수가 작게 말했다.


“라인 맡는 거면 거의…”


나는 물었다.


“왜?”


민수가 웃었다.


“승진 같은 거예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날 이후


내 일은 조금 달라졌다.


예전처럼

하루 종일 박스만 옮기는 게 아니라


라인 흐름을 보고

어디가 막히는지 확인하고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쪽 먼저 빼 주세요.”


“여기 박스 쌓여요.”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다.


같이 일하던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몇 주가 지나자


조금씩

익숙해졌다.


“형 여기 정리됐어요.”


“오케이.”


“트럭 하나 더 들어옵니다.”


“알았어요.”


일이

조금 더 빠르게 돌아갔다.


팀장은 가끔 지나가며 말했다.


“괜찮네.”


“이대로만 해.”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걸 좋게 보는 건 아니었다.


어느 날이었다.


뒤에서 누군가 말했다.


“야.”


나는 돌아봤다.


예전에 나를 괴롭히던

그 선임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나를 보며 말했다.


“요즘 바쁘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냥 일하는 거죠.”


그는 피식 웃었다.


“일?”


그리고 말했다.


“신입이 이제 사람 부리네.”


옆에 있던 다른 사람이

작게 웃었다.


“출세했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좋겠다.”


“팀장한테 잘 보여서.”


그 말투는

전혀 축하하는 말이 아니었다.


나는 그냥 말했다.


“…일해야죠.”


그는 잠깐 나를 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


“잘 해라.”


그가 돌아가자

뒤에서 민수가 왔다.


“또 그 형이에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민수는 한숨을 쉬었다.


“진짜 질투 많다니까.”


그때 지훈 형도 다가왔다.


“신경 쓰지 마.”


나는 조금 웃었다.


“…괜찮아요.”


지훈 형이 말했다.


“괜찮긴.”


“근데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


나는 물었다.


“왜요?”


지훈 형은 말했다.


“사람이 잘 되면 원래 저래.”


민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형 진짜 열심히 했잖아요.”


나는 잠깐 창고 안을 바라봤다.


지게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삑.


스캐너 소리가 계속 울렸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그래도 좀 그렇네요.”


지훈 형이 웃었다.


“당연하지.”


“그래도 너무 실망하지 마.”


민수가 말했다.


“형 옆에는 우리 있잖아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조금 웃었다.


“…그러네요.”


그날도

하루 일이 끝났다.


퇴근 카드를 찍고

창고 밖으로 나왔다.


저녁 공기가

조금 서늘했다.


나는 천천히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몸은 조금 피곤했지만


마음은

묘하게 복잡했다.


‘잘된 건데…’


‘왜 이렇게 마음이 이상하지.’


그때였다.


휴대폰이 진동했다.


지이잉—


나는 화면을 봤다.


문자였다.


보낸 사람.


어머니.


나는 바로 문자를 열었다.


[아들 택배 보냈는데 도착했대.]


나는 잠깐 멈췄다.


문자가 하나 더 왔다.


[집에 가면 확인해 봐.]


나는 고개를 조금 갸웃했다.


‘택배?’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현관 앞을 봤다.


작은 박스 하나가

문 앞에 놓여 있었다.


나는 잠깐 그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박스를 들어 올렸다.


생각보다 따뜻했다.


‘…?’


나는 급하게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박스를 열었다.


뚜껑을 여는 순간


익숙한 냄새가

조용히 퍼졌다.


안에는

보온 용기가 들어 있었다.


하나를 열었다.


하얀 김이

조용히 올라왔다.


전복죽이었다.


그리고 옆에는

작은 반찬통과


어머니가 직접 만든

보양식이 담겨 있었다.


나는 잠깐

그걸 가만히 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휴대폰이 또 울렸다.


문자였다.


어머니였다.


나는 천천히 열었다.


[아들 요즘 일 힘들지.]


나는 잠깐

숨을 멈췄다.


문자가 하나 더 도착했다.


[그래도 밥은 잘 챙겨 먹어.]


그리고 마지막 문자.


[엄마는 아들이 열심히 사는 거 알아.]


나는 한동안

휴대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전복죽에서

김이 계속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한 입 먹었다.


따뜻했다.


조용한 집 안에서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맛있다.”


그 말과 함께


오늘 하루 쌓여 있던

피로와 마음이


조금씩


조용히


풀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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