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은 것들
밥을 다 먹고 나니
몸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먹는 집 밥이라 그런지
속이 편안했다.
나는 식탁 위에 있던
그릇들을 조심히 들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아이고, 놔둬.”
“엄마가 할게.”
나는 웃으며 말했다.
“제가 할게요.”
그리고 싱크대 쪽으로 걸어갔다.
수돗물을 틀자
시원한 물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천천히
그릇에 묻은 양념을 씻어냈다.
어머니는 옆에서
반찬통을 정리하고 있었다.
“회사 일은 할 만해?”
어머니가 물었다.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네.”
어머니는 웃었다.
“아까도 그렇게 말했잖아.”
나는 그릇을 닦으며 말했다.
“그래도 처음보다는 괜찮아요.”
어머니는 잠깐 나를 바라봤다.
“몸은 괜찮아?”
“…괜찮아요.”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 마.”
나는 조용히 말했다.
“네.”
설거지가 끝나고
나는 마당으로 나왔다.
햇빛이 부드럽게 비치고 있었다.
어머니는 빨래를 널고 있었다.
나는 옆에 가서
젖은 빨래를 하나씩 건넸다.
“이거요.”
“응.”
잠깐 아무 말 없이
같이 일을 했다.
바람이 살짝 불어
빨래가 흔들렸다.
나는 마당을 둘러봤다.
어릴 때부터 보던 풍경이었다.
작은 화분들.
담장 옆에 있는 나무.
그리고 오래된 평상.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여전히 같은 모습이었다.
잠시 뒤
나는 말했다.
“엄마.”
“저 잠깐 나갔다 올게요.”
어머니가 물었다.
“어디 가?”
나는 웃었다.
“그냥 동네 좀 걸어보려고요.”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멀리는 가지 마.”
“네.”
나는 슬리퍼를 신고
천천히 골목길로 걸어 나갔다.
골목은 여전히 조용했다.
낡은 담벼락과
익숙한 길.
나는 천천히 걸었다.
어릴 때
친구들이랑 뛰어다니던 길이었다.
몇 분 정도 걸었을까.
저 앞에
작은 문방구가 보였다.
낡은 간판.
유리문.
어릴 때
자주 오던 곳이었다.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문을 열었다.
딸랑—
문 위 종이
작게 울렸다.
안에서는
텔레비전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카운터 뒤에 앉아 있던
주인 아저씨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잠깐 눈을 좁혔다.
“어?”
나는 웃었다.
“…안녕하세요.”
아저씨가 자리에서
몸을 조금 앞으로 숙였다.
“혹시…”
잠깐 나를 보더니
표정이 밝아졌다.
“야!”
“너 ○○ 아니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저씨가 크게 웃었다.
“아니 이게 얼마 만이야!”
“언제 왔어?”
나는 카운터 앞에 섰다.
“오늘 왔어요.”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잘 계시지?”
“네.”
아저씨는 말했다.
“어릴 때 맨날 여기 와서 과자 사 먹던 거 기억난다.”
나는 웃었다.
“…그랬죠.”
아저씨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때 맨날 사 가던 거 있잖아.”
“초콜릿 쿠키.”
나는 웃었다.
“아직도 있어요?”
아저씨가 뒤쪽을 가리켰다.
“당연하지.”
나는 과자 진열대를 봤다.
정말 있었다.
초콜릿 쿠키봉.
어릴 때 자주 먹던 그 과자였다.
나는 하나를 집었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사이다 한 병도 꺼냈다.
카운터에 올려놓자
아저씨가 웃었다.
“여전하네.”
“먹는 것도 똑같아.”
나는 조금 웃었다.
“그런가요.”
아저씨는 계산하면서 말했다.
“회사 다닌다며?”
나는 놀라서 물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아저씨는 웃었다.
“동네에 소문 다 나.”
나는 조금 쑥스럽게 웃었다.
“그냥 창고 일해요.”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열심히 살아라.”
나는 말했다.
“네.”
과자와 사이다를 들고
문방구를 나왔다.
딸랑—
종소리가 다시 울렸다.
나는 천천히
집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다른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호수 쪽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었다.
어릴 때
자주 다니던 길이었다.
길 옆에는
풀이 자라고 있었다.
바람이 살짝 불었다.
나는 천천히 걸었다.
멀리서
호수가 보였다.
잔잔한 물결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나는 잠깐
걸음을 멈췄다.
그때였다.
길 옆 풀 사이에
작은 꽃 하나가 보였다.
하얀 꽃.
노란 가운데.
데이지였다.
나는 그 앞에
천천히 앉았다.
그리고 잠깐 바라봤다.
작고
예쁜 꽃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줄기를 잡았다.
툭.
꽃 한 송이를
조심히 꺾었다.
손바닥 위에 올려보니
작지만 예뻤다.
나는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천천히
집으로 걸어갔다.
대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평상에 앉아 있었다.
나는 다가갔다.
“엄마.”
어머니가 고개를 들었다.
“왔어?”
나는 손을 내밀었다.
“이거요.”
어머니가 물었다.
“뭔데?”
나는 웃으며 말했다.
“꽃이에요.”
어머니는
조금 놀란 표정으로 꽃을 봤다.
“어디서 났어?”
“오는 길에요.”
나는 조심스럽게
어머니 귀 옆 머리에 꽃을 꽂아 드렸다.
어머니는 잠깐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웃었다.
“아이고…”
“엄마가 무슨 꽃이냐.”
나는 웃었다.
“잘 어울려요.”
어머니는 손으로
꽃을 살짝 만졌다.
그리고 말했다.
“그래도 예쁘네.”
마당에는
조용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나는 평상 옆에 앉았다.
어머니 옆에서
사이다를 하나 열었다.
치익—
탄산 소리가 났다.
나는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생각했다.
창고에서 보내던
힘들었던 시간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모든 것들이
잠시 멀리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좋다.”
어머니가 물었다.
“뭐가?”
나는 웃었다.
“그냥요.”
마당 위로
해가 천천히 기울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는
조용하고
따뜻하게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