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 경계선

끝과 시작 사이에서

by 하얀 오목눈이

수술실 앞.


차가운 공기가

복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벽에 기대 선 사람들.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숙인 사람들.


그 누구도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닫힌 문 앞에서


빨간 불이 켜진 수술실 문.


그 앞에

어머니가 서 계셨다.


손을 모은 채

가만히.


입술은 계속 떨리고 있었다.


“괜찮을 거야…”


작게 중얼거리셨다.


하지만

그 말은


누군가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하는 말에 가까웠다.


기다림


시간이

이상하게 흘렀다.


1분이

10분처럼 느껴졌다.


누군가는

시계를 계속 확인했고


누군가는

눈을 감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동료들도

하나둘 도착했다.


민수도 있었다.


그는 벽에 기대 서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손이

꽉 쥐어져 있었다.


문이 열리다


“철컥.”


수술실 문이 열렸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의사가 나왔다.


마스크를 내리며

잠시 숨을 고르는 모습.


그 짧은 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한마디


“환자 보호자분…”


어머니가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왔다.


“네… 네…”


의사는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고비는 넘겼습니다.”


그 말에

주변에서 작은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 다음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공기가

다시 무거워졌다.


절망


“현재 상태로는…

의식 회복 가능성이 매우 낮습니다.”


“…가망이 없다고 보셔야 합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그 말은

끝까지 듣지 못했다.


무너지는 소리


“아니야…!”


어머니의 목소리가

복도를 찢었다.


그 자리에

주저앉으셨다.


“우리 애야…

우리 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계속 고개를 저으셨다.


동료들의 눈물


민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떨어뜨렸다.


다른 동료들도

하나둘 울음을 터뜨렸다.


누군가는

입을 막았고


누군가는

벽을 향해 돌아섰다.


그 누구도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때


복도 끝에서

누군가 걸어왔다.


천천히.


조용하게.


하지만


그 존재는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가해자


그 남자였다.


사고를 낸

그 사람.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병원 복도를 걸어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민수의 표정이

굳었다.


폭발


“야.”


민수가

그를 향해 걸어갔다.


다른 동료들도

따라갔다.


“너 지금 뭐하러 왔냐.”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순간


“퍽!”


멱살이 잡혔다.


“이게 사람이야?!”


민수의 손이

그의 옷을 꽉 쥐고 있었다.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여길 와?!”


다른 동료들도

분노를 터뜨렸다.


“미쳤냐?!”


“너 때문에…!”


억눌린 분노


남자는

입을 열었다.


“…일단 놓으세요.”


그 말이

불을 붙였다.


“뭐?”


“지금 그게 할 말이야?!”


민수의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병원 직원들이

급히 달려왔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간신히

사람들이 떨어졌다.


하지만


분노는

전혀 가라앉지 않았다.


다른 한편


그 시각.


나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눈을 뜨다


천천히

눈을 떴다.


빛이 들어왔다.


부드러운 빛이었다.


눈이

아프지 않았다.


낯선 풍경


눈앞에는


끝없이 펼쳐진

노란 꽃밭이 있었다.


바람이

천천히 불고 있었다.


꽃들이

살짝 흔들렸다.


햇빛이

따뜻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고요함


소리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너무 조용해서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아까까지의

차가운 비와


시끄러운 소리들은


전부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소녀


하얀색 원피스.


밀짚모자.


햇빛에 비쳐

더 밝게 보이는 피부.


작은 체구.


그녀는

등을 보인 채

서 있었다.


한 걸음


나는

천천히 걸었다.


몸이

가벼웠다.


아까처럼

아프지도 않았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꽃 사이를 지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멈춘 순간


그녀는

가만히 서 있었다.


마치


내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경계


나는

그 자리에서 멈췄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여긴 어디야?”


내 목소리는

이상하게도


또렷하게 들렸다.


소녀는

아직 돌아보지 않았다.


바람이 불었다.


노란 꽃들이

다시 한 번 흔들렸다.


그리고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는 알 수 있었다.


이곳이


단순한 꿈이 아니라는 것을.

작가의 이전글32화 - 꺼져가는 의식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