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 꺼져가는 의식 속에서

마지막까지 붙잡고 싶었던 것들

by 하얀 오목눈이

비가 내리고 있었다.


차갑게.


조용하게.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나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숨이…


이상했다.


깊게 쉬어지지 않았다.


흐릿해지는 시야


눈을 뜨고 있는 건지

감고 있는 건지


구분이 잘 되지 않았다.


가로등 불빛이

번져 보였다.


노란 빛이

흐릿하게 퍼져 있었다.


차가운 바닥의 감촉이

등을 타고 올라왔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사람 쓰러졌어!”


“구급차 불러!”


멀리서 들리는 것 같았다.


아주 멀리.


물속에서 듣는 것처럼

둔탁하게 들렸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일어나려고 했다.


손을 움직이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입을 열어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저

숨만 희미하게 새어나왔다.


‘여기서 끝인가’


그 생각이

문득 스쳤다.


짧게.


하지만 분명하게.


나는

그 생각을 부정하려 했다.


‘아직…’


‘아직 안 돼.’


떠오르는 얼굴들


그때였다.


이상하게도

여러 장면들이 떠올랐다.


마치

천천히 재생되는 영상처럼.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어머니였다.


어머니


부엌에서

밥을 차려주시던 모습.


“많이 먹어.”


라고 말하시던 목소리.


내가 힘들다고 했을 때

조용히 들어주시던 얼굴.


그리고


병실에서

누워 계시던 모습까지.


그 모든 장면들이

겹쳐졌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엄마…’


동료들


다음으로 떠오른 건


동료들이었다.


힘들 때

옆에서 도와주던 사람들.


“괜찮아?”


라고 물어보던 목소리.


같이 웃고

같이 밥 먹고

같이 버텼던 시간들.


그들의 얼굴이

하나씩 떠올랐다.


민수.


그리고 다른 동료들.


나는 그 이름들을

마음속으로 불러봤다.


친구들


그리고


오래된 친구들.


별것 아닌 일로

웃고 떠들던 시간들.


늦은 밤까지

이야기하던 기억.


“야, 힘들면 말해.”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크게 느껴졌다.


아직 끝낼 수 없었다


나는 그 순간

분명히 느꼈다.


‘아직… 끝낼 수 없다.’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지켜야 할 사람이 있었다.


어머니.


그리고


나를 믿어준 사람들.


의식이 점점 멀어졌다


하지만


몸은 점점

무거워졌다.


눈꺼풀이

천천히 내려왔다.


소리는 더 멀어졌다.


“의식 있어요?!”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소리조차

점점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남은 감각


비가

얼굴에 떨어졌다.


차가웠다.


그 감각만이

마지막으로 또렷했다.


나는 그 차가움을

느끼면서


천천히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조금만…’


‘조금만 더…’


버티고 싶었다.


눈을 뜨고 싶었다.


다시

일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의식은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어둠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완전히 꺼지기 전


마지막으로

떠오른 건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괜찮아.”


그 한마디가


어둠 속에서

조용히 울렸다.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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