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들고 다니는 사람의 하루
나는 가방에 항상 책 한 권을 넣고 다닌다.
어디를 가든,
얼마나 바쁘든,
그건 거의 변하지 않는 습관이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무거운 짐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 책은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작은 공간이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시간,
잠깐의 휴식 시간,
혹은 아무것도 하기 싫은 순간.
그럴 때 나는
자연스럽게 책을 꺼낸다.
책장을 넘기는 그 짧은 시간 속에서
나는 현실에서 잠시 벗어난다.
생각해보면
나는 꽤 오래전부터
책을 좋아했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도 좋았지만
나는 종종 혼자 책을 읽는 시간을 더 좋아했다.
쉬는 시간에도,
점심시간에도,
가끔은 수업이 끝난 뒤에도.
조용한 자리에서
책을 펼쳐놓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시간이 좋았다.
그때의 나는
책을 읽는 게 아니라,
그 세계를 ‘살아가고’ 있었다.
힘들었던 날이면
나는 더 자주 책을 찾았다.
현실에서는 해결되지 않는 감정들이
책 속에서는 이상하게도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책 속의 인물이
나 대신 울어주고,
나 대신 선택해주고,
나 대신 앞으로 나아가 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나도 저 인물처럼 살아보고 싶다.’
그 감정은
단순한 동경을 넘어서
나의 일부가 되었다.
처음부터 어려운 책을 읽었던 건 아니다.
나는 만화책부터 시작했다.
그림과 함께 이야기가 펼쳐지는 그 형식은
나에게 가장 쉽게 다가왔다.
한 권, 두 권,
계속 읽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글이 더 많은 책에도 손을 뻗고 있었다.
소설을 읽기 시작했고,
그다음에는 시집도 읽기 시작했다.
짧은 문장 속에 담긴 감정,
길게 이어지는 이야기 속의 흐름.
각각의 책은
다른 방식으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다양한 책을 읽게 되었고,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그 이후로는
책을 사는 것도 자연스러워졌다.
서점에 가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책을 고르는 시간,
책장을 넘겨보는 순간,
그리고 결국 한 권을 선택하는 그 과정까지.
그 모든 것이
나에게는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그렇게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 책은
어느새 꽤 많아졌다.
그리고 지금.
나는 400권이 넘는 책을 가지고 있다.
처음 그 숫자를 확인했을 때
나도 조금 놀랐다.
‘이걸 다 내가 읽은 거라고?’
물론 모든 책을 완벽하게 읽은 건 아니지만,
그 하나하나에는
내가 선택했던 이유가 담겨 있었다.
가끔은
내 방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 정도면 작은 도서관 아닌가?’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을 보면
마치 작은 부스를 하나 차려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건 단순한 ‘양’의 문제가 아니다.
그 책들은
내가 살아온 시간의 기록이기도 하다.
어떤 책은
힘들 때 읽었던 기억이 있고,
어떤 책은
기분이 좋을 때 샀던 기억이 있다.
어떤 책은
끝까지 읽지 못했지만
그때의 내가 어떤 상태였는지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나는
책을 버리지 못한다.
그건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내 일부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는
책을 들고 다닌다.
누군가는
요즘 시대에 굳이 책을 들고 다니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책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책은 나에게
지식이기도 하고,
위로이기도 하고,
그리고 또 하나의 세계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책은 나를 더 나답게 만들어준다.
앞으로도 나는
책을 계속 읽을 것이다.
아마 더 많은 책을 사게 될 것이고,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가 쓴 책도
그 책장 한 칸을 차지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날이 오면,
나는 아마
가장 오래 그 책 앞에 서 있을 것이다.
그리고 조용히 말할 것 같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