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 1,300만 원의 무게와 생존의 기술
[하루를 셋으로 쪼갠 6개월의 사투]
스물한 살의 나는 독기가 바짝 올라 있었다. 뉴욕의 강한 에너지와 일본의 섬세한 감각을 경험한 뒤,
내 머릿속엔 단 하나의 목표만 남았다.
‘다시, 해외로 나가자.’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내가 가진 돈과 집안 형편으로는 미국은 애초에 선택지조차 아니었다.
그래서 방법을 찾았다. 포기하는 대신,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찾는 쪽을 선택했다. 그게 ‘워킹홀리데이’였다.
목표가 정해지자 내 하루는 기계처럼 셋으로 쪼개졌다.
오전 7시 ~ 낮 12시: 낙지볶음집
오후 1시 ~ 오후 6시: 카페
오후 8시 ~ 새벽 2시: 포장마차
일주일 내내 단 하루도 쉬지 않았던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거의 '광기'에 가까웠다. 친구를 만날 시간 따위는 사치였다. 새벽녘 퇴근길에 잠깐 얼굴을 보는 게 전부였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6개월, 내 손으로 1,000만 원을 모았다. 여기에 감사하게도 아버지 친구분이 “경험에 보태라”며 건네주신 30만 엔까지 더해, 나는 총 1,300만 원을 들고 비행기에 올랐다.
그 돈은 단순한 자금이 아니었다. 망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였다.
나는 어디를 가든 변수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래서 더 준비해야 했다. 그게, 타국에서 내가 나를 책임지는 방식이었다.
일이랑 언어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고, 반대로 무슨 일이 터질 수도 있다.
나는 항상 둘 다 생각했다. 준비가 끝났을 때, 이상하게 겁이 사라졌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망해도 괜찮아졌기 때문이었다. 그때 알았다. 나는 안정적인 사람이 아니라, 안정장치를 만들어두는 사람이라는 걸.
출발 당일, 특별한 감정은 없었다. 설렘도 두려움도 아니었다. 그냥 하나였다.
‘가보면 알겠지.’
그걸로 충분했다.
[일본어 0점, 주방이라는 전쟁터에 던져지다]
오사카에 도착했을 때 내 일본어 실력은 제로에 가까웠다.
하지만 제대로 부딪쳐야 생존 본능이 깨어날 것 같아 일부러 한인 타운을 피했다.
번역기를 돌려가며 맨몸으로 부딪친 끝에 들어간 이자카야 ‘쿠시카츠 잇도쿠’는 내게 거대한
‘생존 훈련장’이었다.
전화 면접 때는 노트북 화면 가득 번역기를 띄워놨다. 침대 위에서 무릎을 꿇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찌어찌 합격해 들어간 주방은 말 그대로 전쟁터였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오피스 빌딩 속 주방은 매일 런치 전쟁을 치러야 했다.
쇼가야키, 치킨난반, 도테동, 야끼소바... 일본인들이 사랑하는 일상의 맛들을 정신없이 만들어내며 그들의 식문화를 온몸으로 흡수했다. 그때 익힌 음식들은 지금도 내 손에서 가장 자주, 다시 만들어진다.
특히 오사카의 자부심인 쿠시카츠를 만들며 배운
'한 끝의 디테일'은 놀라웠다.
꼬치에 재료를 꽂아 튀겨내는 단순한 방식이었지만, 그 안에는 가게의 맛을 좌우하는 튀김옷의 비결과, 반죽에 간 참마를 넣어 바삭함을 유지하는 배합률 같은 것들이 숨어 있었다.
스타일리스트를 꿈꿨던 내가 처음으로 가위 대신 칼을 잡고 식재료를 만지기 시작한 그곳에서, 나는 조리의 작은 차이들이 어떻게 맛을 바꾸는지 하나씩 눈으로 익혀갔다.
하지만 그곳은 전형적인 ‘블랙 기업’이었다. 내가 외국인이고 시스템을 잘 모른다는 점을 이용해, 오전 런치를 시키고 중간에 3~4시간이라는 휴게 시간을 끼워 넣은 뒤 다시 저녁 타임을 뛰게 했다. 사실상 하루 종일 가게에 묶여 있어야 하는 그 시간이 처음엔 너무나 아깝고 싫었다.
그러나 나는 그 불합리한 틈새마저 내 것으로 만들기로 했다. 그 기묘한 휴게 시간마다 나는 메뉴판을 펼쳤다. 당시엔 QR 주문도 없던 시절이라 손님이 말하는 메뉴를 핸드북 단말기에서 한자로 찾아 찍어야 했기 때문이다. 쿠시카츠는 야채부터 생선, 육류까지 재료의 종류가 방대했고 한자는 낯설기만 했다. 많이 혼났고 자주 틀렸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단어 하나, 한자 하나를 눈에 익히며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흥미로운 건, 오직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외웠던 그 식재료들이 훗날 요리학교에 갔을 때 가장 든든한 밑천이 되어주었다는 사실이다. 남들이 처음 보는 재료 이름 앞에서 머뭇거릴 때, 나는 이미 오사카의 치열한 주방에서 몸으로 익힌 수십 가지 재료를 아무렇지 않게 꺼내 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