킷사텐: 고립의 미학

제4장 - 멈춰 있는 시간, 흐트러지지 않는 하루

by 홍다정

[예고 없이 무너졌고, 그때 문 하나가 열렸다 —

코메다 커피]

사건은 갑자기 터졌다. 퇴근길 지하철 계단에서 크게 넘어졌다. 발등 골절. 최소 두 달은 쉬어야 했다.

그런데도 처음엔 담담했다. 이런 변수를 대비해 돈을 모아두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나를 안심시키진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월세와 공과금, 생활비는 계속 빠져나갔다.

숨만 쉬어도 돈이 줄어드는 느낌이었다. 모아둔 돈이 있어도 버티는 시간이 길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일본은 월급이 다음 달에 들어온다. 일을 시작해도 바로 돈이 생기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두 달이면 될 줄 알았던 시간이, 결국 세 달을 버텨야 하는 문제가 됐다.

그래서 더 불안했다. 나는 쉬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계속 쫓아왔다. 그 와중에 나는 블로그를 통해 세상과 다시 연결됐다. 패션을 기록하던 공간은 ‘워킹홀리데이 생존기’로 바뀌었고,

그곳에서 이어진 인연이 나를 ‘코메다 커피(Komeda’s Coffee)’로 데려갔다.


그리고 어느 날, 코메다에서 일하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상하게도, 그제야 숨이 조금 편해졌다.



(출처:코메다커피 홈페이지)

일본의 전통적인 킷사텐 문화를 대표하는 그곳에서 나는 전혀 다른 세계를 마주했다.

화려함은 없었다. 대신, 두툼하게 구워낸 토스트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진한 커피, 그리고 빨간 벨벳 의자가 주는 투박하고 정겨운 온기.

그 단순한 조합이 이상하게 마음을 붙잡았다.


그 순간, 내 안의 '오타쿠적 기질'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이런 세계가 있었구나."

그건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다. 나는 이미, 이 공간을 이해할 때까지 놓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순간, 알았다. 이건 '취향'이 아니라,

내가 끝까지 파고들게 될 세계라는 걸.


일을 할수록 더 궁금해졌다.


일본에는 이런 공간이 존재하는지,

사람들은 이곳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보내는지,

이 단순한 토스트와 커피가 사람을 붙잡아두는지.


단순히 ‘맛있다’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찾아보기 시작했다. 킷사텐이라는 문화가 어디서 시작됐고, 왜 지금까지 살아남았는지를.




[킷사텐: 시간을 고정시키는 안락한 고립]


킷사텐은 단순히 커피를 파는 공간이 아니었다. 그 시작부터 이미 하나의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알게 된 건, 킷사텐이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1930년대 일본에서 ‘카페’가 유흥과 접객의 공간으로 바뀌자, 일부는 오직 커피와 조용한 분위기를

지키기 위해 이름 앞에 ‘순수할 순(純)’ 자를 붙였다. 이른바 ‘준킷사(純喫茶)’의 시작이다.

이건 단순히 이름을 바꾼 것이 아니라,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었다.


그렇기에 킷사텐은 무언가를 더하기보다는,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방식으로 만들어져 왔다.

어두운 목재 가구, 낮은 조도, 벨벳 의자, 사이폰이나 핸드드립 같은 추출 방식, 그리고 단순하지만 계속 반복되는 메뉴들.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변하지 않는 시간’ 킷사텐은 빠르게 변하는 바깥과는 조금 떨어진 채, 시간을 그대로 붙잡아두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커피를 전문적으로 아는 건 아니지만, 이 공간을 보면서 한 가지는 분명하게 느껴졌다.

카페와 킷사텐의 차이는 ‘어떻게 추출하느냐’보다, ‘어떤 시간을 만들어내느냐’에 더 가까운 것 같았다.


에스프레소 머신은 빠르게 압력을 가해 짧은 시간 안에 결과를 만들어내는 방식이라면,

핸드드립은 물이 떨어지는 속도를 기다리는 방식이고, 사이폰은 눈앞에서 과정을 보여주며 천천히 완성되는 방식이다.

속도보다 과정에 가까운 방식. 그래서인지 킷사텐에서는 커피를 만든다기보다, 하나의 시간을 만들어내는 느낌이 더 강했다. 어디를 가도 커다란 머신은 보이지 않았고, 그 대신 손으로 내리는 과정이 공간의 중심에 있었다.


그 모습이 낯설기보다는, 이상하게 더 정겹게 느껴졌다.

일본의 킷사텐은 생각보다 훨씬 다양했다.

그 다양한 공간들 안에는 각자 나름의 규칙과 분위기가 분명히 존재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느낀 기준으로 킷사를 정리해 보기 시작했다.

단순히 나누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왜 이 공간에 마음이 가는지, 어떤 분위기에 반응하는지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나는 그제야 조금씩 알게 됐다.

내가 왜 이 공간에 이렇게까지 끌렸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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