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 걸렸다.
그동안 한 편의 에세이 같은 인생을 촤르르르 넘겨볼 수 있을 만큼 살아왔건만
사실 나는, 내 인 생을 한 장, 한 장, 꾹 꾹 글자로 눌러 담아 빼곡한 장편 소설로
연재해 왔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돋을 때쯤 그 일이 일어났다.
쳇바퀴처럼 도는 소개팅, 커피 잔에 품평하든 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나의 가치,
지겨운 애프터, 턱 끝까지 목매듯 쫒는 미래-나는 가정을 그리고 싶었다. 허나 이후엔 가정을 만들려는 이유까지 망각하며 목적만을 쫓아 의무적인 만남을 가졌다-들로
지쳐갈 때 즈음, 나는 더 이상의 소모를 중단하기로 선언했다.
난 결혼시장에서 철저히 실패했어. 이 길은 내가 찾는 길이 아니야. 그만할 거야.
상상이상의 우울감이 덮쳐왔다.
마치 내가 실패자가 되어 영원히 내가 원하는 그림은 그리지 못할 것만 같았다. 지치는 것과 별개로 실패자가 된 기분은 그림자가 되어 직장에서도 자택에서도 눈을 떠서도, 자기 전까지 따라다녔다. 생각해 보면 나의 2023년도는 온통 결혼시장에만 몰두해 있었다.(이유는 차후에 설명하겠다)
기분이 아주 조금 나아졌을 때 학교에 방학이 찾아왔다.
숨통이 조금 트여서 개인시간이 생긴 게 좋았다.
거울을 보고 나 자신에게 웃어 보였다. 너도 고생이 많지? 히히,,
조금 웃어준 것뿐인데 그 틈이 나에게 작은 믿음을 주었다.
아주 작은 믿음
그리고 그저 내가 행복할 것이라는 작은 믿음을 근거로, 나는 행했다.
무엇을 행했냐고?
그냥 놀았다!
내가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따뜻한 말을 건네고 선물을 주거나 밥을 사주었다.
같이 감동의 말을 나누며 울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며 드라이브를 다니기도 하였다.
앞날에 있어서 겁이 날 때에는 좋아하는 책을 들고 가 카페에서 읽거나 필사를 했다.
삼십 대 초반의 조금은 주름 진 내 얼굴을 조바심 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었다.
매일 일기를 쓰며 나 자신을 다독여주었다.
상처 투성이인 내 인생을, 오합지졸인 내 인생을 받아들이고 사랑해 주었다.
그냥 지내고 있을 때 아는 분에게서 연락이 왔다.
사람 한 번 만나보지 않을 거냐고.
나는 지난해에 질리도록 소개팅에 절여있었기 때문에 감흥도 없었던 지라
정말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런데, 말이다.
오히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으니 겁이 나지 않았다.
'그냥 사진이나 받아볼까?'
그래서 나는 행동했을까?
2023. 3. 봄. 꽃다운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