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미남
검은색 적당히 핏감 있는 티셔츠, 일자로 떨어지는 청바지, 플랫 한 구두, 아무렇게나 올린 머리, 신경 쓴듯한 피부, 메이크업에 거의 하지 않은 색조 화장, 반짝이는 입술만이 이번 만남의 궁금함을 삼키며 오후 3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약간 권태롭기도, 아무런 기대나 감흥이 없는 말 그대로 무념무상의 상태였지만 역설적이게도, 1분 1초마다 새어 나오는 도파민에 취해있었다.
이윽고 그가 맞은편 커튼을 치고 들어섰다. 훤칠한 키, 길쭉한 핏에서 느껴지는 모델포스, 작은 얼굴에 알차게 들어가 있는 강한 이목구비, 거뭇한 피부와 은근하게 어울리는 스탠더드 한 갈색 코르텐셔츠, 깔끔한 슬랙스, 뽐내지 않은 흰 운동화,
한 마디로 당신은 테토틱한 꽃 미남.
안녕하세요?
나는 생각보다 꽃미남에 강하다.
어렸을 적부터 자존심이 강했던 나는 꽃미남을 쳐다보거나 얼굴이 빨개지면 마치 내가 퍽이나 자기들을 좋아한다고 생각할까 봐 더욱 자존심을 부리며 일부러 쳐다보지 않거나 동경하지 않는 반동형성적인 행동을 해왔다. 스스로 꽃미남에 무덤덤한 훈련(?)을 해왔던 터라 이 정도쯤은 나름 견딜만한 과제였던 것이다!
덤덤한 나의 인사에 그는 얼굴이 새빨개져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가 3초 정도 정적으로 응수해 주었을 때 나는 그것이 그의 대답임을 알아차렸다.
그리곤 그의 속마음을 알아차렸다.
자, 지금부터 나오는 모든 인물의 이름은 철저히 익명에 붙이도록 하겠다. 나는 가명을 '사슴'으로 쓰겠다.
사슴: "사진에서 보던 것과 마찬가지로 잘생기셨네요. 사슴이라고 합니다."
늑대: "안녕하세요. 늑대입니다."
사슴: "오시는 길이 멀지는 않으셨나요?"
늑대: "아 괜찮았어요.(편도 3시간 거리) 근데 오는 길에 공사를 해가지고..."
대화는 생각보다 매끄러웠다. 우리는 서로 상이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서로의 직업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았다. 한 시간의 짧은 대화였지만 충분한 양질의 대화가 오고 갔고 나는 내심 '다음 애프터가 오겠구나' 확신이 차올랐다. 그리고,
사슴: "어머 벌써 4시가 넘었네요. 가족 행사가 있으시다 하지 않으셨어요?"
늑대: "아, 아쉽네요, 벌써..."
사슴: "그러게요. 가보셔야 할 듯한데요."
늑대: "네... 아..."
사슴: "정말 즐거웠어요 늑대님. 몰랐던 부분도 알게 되고."
늑대: "네. 저도.. 그리고"
사슴: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