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시장

비교군

by 박유월


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나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 수긍하였다.

너무 빠르게 이어진 이별의 맺음에 켜켜이 쌓인 마음을 지른 나조차도 간담이 서늘해졌지만, 이것은 우리의 예정된 결말이었으리라.




그렇게 우리는 이별했다.




내지르면 조금 편해질 줄 알았다. 그 당시 나는 내가 그를 사랑하기보다는 인내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더욱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며 선명해지는 한 줄의 문장이 있었다.




사람을 감당할 여력이 부족한 거지.

사랑이 부족한 게 아닌데.




몇 달을 고민 끝에 조금 더 그에게 적합하게 맞추어 갈 마음의 채비를 하고 연락을 두드려보았을 때, 재회의 과정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하나, 어떤 연애는 재회의 끝자락에서도 될 성 부르지를 못한다.




그는 다른 여자를 물고 있었.

후에 그 사실을 알았을 때 가슴에 깊은 구멍이 패이는 통증을 느꼈다.




그렇게 나는 결혼시장의 서막에 들어섰다.

이보다 몇 년 전, 나는 지금의 글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길고 긴 서사들로 좋은 '엄마', 좋은 '아내'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그렸다. 이 구름 같지만 간절했던 꿈은 그와의 종결로 인한 미약한 감정과 어설프게 엉겨 붙어버려 최초의 내 마음과는 대조되는, 그러나 선명한 목표 같은 게 되어버렸다.




나는 헤엄치듯 결혼시장 입구로 들어섰다.





손톱에 투명매니큐어 칠하시죠?



시장에 들어선 후 첫 상대는 의사였다. 나는 의사라는 상대의 타이틀에 저미어지듯 만남에 기대를 가져보았지만, 위의 대목에도 알 수 있듯 그는 내면의 소통이나 진솔한 만남에는 관심이 없었다. 결국 관두는 쪽은 나였으니, 이것이 물고가 되어 그 이후 소개팅이나 자연스러운 만남 등 다양한 직업군의 상대를 끊임없이 만났다.




마신 커피 수를 세기가 길다.

경찰관, 소방관, 디자이너, 연구원, 회사원, IT개발자, 공무원, 학원부원장, 카페사장, 엔지니어, 공항직원, 옷가게사장 등..




상대를 선택하는 데에 있어 나는 지나간 '그'를 철저히 <비교군>으로 두었다.





그것이 외적 요건이든, 경제력이든, 성격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그를 비교군으로 두어서 그에 견줄 수만 있다면 난 나은 선택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어느 날 그가 나란 존재를 찾아보았을 때 내가 당신만큼, 아니 어쩌면 더 강하고 멋진 상대와 완전하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내 찻잔 속 그들도 나 역시 그러지듯이 안목의 심판대에 올랐다.




그들과 차를 마시거나 단순히 만남과 작별을 하면서 미안한 일도, 미안함 받을 일도 있었다.

내가 못되어서, 그들이 나빠서가 아니었다.




그들도 시장에 나온 사람들이었다.




커피잔에 올려진 채 품평을 받고 결혼시장에서 이리저리 차이니 그들 역시 잔뜩 사린 채 나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으리라. 나 역시 시장에서 선택당하기도, 팽당하기도, 혹은 이도저도 아닌 찔러보기도 여러 차례 겪다 보니 그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지레 겁을 먹거나 김이 식는 감정을 느끼곤 했다. 돌이켜보면 참 질리기도 질린 커피잔들이었다.




순수했던 나의 꿈은 '그'라는 그림자를 따라다니며 결혼시장이라는 블루오션에서 표류하다 사계절을 보내오고 있었다. 2023년 해 마무리가 되어서야 마음을 온전히 내려놓으며 스스로에게 자문하였다.




나의 꿈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왜 나는 그 사람의 그림자를 밟으며 내 꿈을 좇고 있는 것일까?



이미 흘러간 그 자리의 구멍을 그 사람의 그림자로 비롯한 다른 무언가로 메꾸려 한 나의 불찰이었다는 걸 이제야 깨닫고 만 것이다. 그를 알고, 그와 사귀고 그를 내 마음속에서 완연하게 내보낸 지 일 년이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결혼시장에서 자유로운 바다로-






우리는 모두 다시 반짝거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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