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도킨스의 '마법의 비행'을 보면 새가 어떻게 방향을 찾는 지를 설명한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 본능으로 알겠거니 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새는 별자리를 보고 방향을 안단다. 우주나 별, 이런 건 인간 만의 사유물처럼 생각했는데, 철새들도 금성을 보고, 달을 보고, 목성과 토성을 본단다. 그들을 '새 대가리'라고 부르는데, 언어도 글도 없이 별자리를 알아본다는 것이, 그리고 그것을 보고 방향을 안다는 것이 놀라웠다.
뉴질랜드 오클랜드 시내에는 와이테마타 항과 연결되는 하버 브릿지가 있다. 거기를 건넜다. 다리를 건넌 이유는 아르바이트를 위해서 였다. 배고픈 유학생 시절, 알고 지내던 친한 동생과 '정원 정리' 아르바이트를 했다. 정원은 하버 브릿지를 넘어야 했다. 한 번 정리하면 둘이서 100불을 받았다. 빵을 사먹을 돈도 없을 정도로 가난한 유학시절이었다.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하면 주중에 식사만 할 수 있을 정도로 돈이 없었다.
그 주간은 10센트까지 탈탈 털어 식비로 사용했다. 수중에 0원이 남은 날이었다. 빈손으로 버스정류장을 갔다. 그곳에서 함께 일할 동생을 만났다.
"너 얼마 있어?" "나? 8불."
녀석은 갈 때 4불, 올 때 4불하여 정확히 8불만 쥐고 있었다. 녀석의 가난도 당연했다.
"가서 50불을 받으면 5불로 줄께. 4불만 빌려 줘."
그렇게 그는 들고 있는 8불 중, 4불을 넘겨줬다. 버스가 출발했다. 하버 브릿지를 지나가던 것까지 기억 났다. 그 뒤로 기억이 없다. 잠깐 눈을 감고 떴는데, 버스는 주택가를 지나고 있었다.
뉴질랜드의 주택가. 동서남북 똑같은 주택, 똑같은 정원, 똑같은 풍경 뿐이다. 동생을 급하게 깨웠다.
"야! 여기 어디야?"
친한 동생은 눈을 겨우 떴다. 그러곤 주변을 살폈다. 지나왔는지, 도착 전인지 가늠이 되진 않았다. 급한 마음, 놀란 마음에 버스에서 황급히 내렸다. 그냥 타고 있었어야 했다.
어딘지 모를 뉴질랜드 어딘가.
잠 깨고 공기 좋고 볕 좋은 어딘가다. 그때의 막막함. 수중는 한 푼도 없는 막연함. 아르바이트하면 생길 100불도 역시 없다. 개운하게 일어난 걸 봐서, 분명 멀리 온 듯 했다. 그 때 함께 내렸던 동생은 주변을 살피며 위치를 가늠했다.
"알면...? 별 수는 있고?"
그는 방향을 알고 걸어야 한다고 했고, 나는 내키는 대로 걸자고 했다. 내가 맞은 것은 아니지만, 그는 틀렸고 결국 그도 그냥 걷기로 했다. 버스는 아침에 탔는데 해가 지는 풍경을 바라봤다. 대략 10시간은 걷지 않았을까. 그때 느꼈다. 생각보다 인간은 똑똑하지 않구나. 이런 일로 인간을 대표해서 송구하지만 바보 같은 두 유학생은 생각도 대책도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도, 건물도, 특별한 지형도 없었다. 있었다고 별 수도 없었겠지만 말이다. 복사 붙이기 한듯 반복하는 뉴질랜드의 어느 곳, 우리 뿐만 아니라 새들도 있었다.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꽤 적당한 타이밍이 아닌 시기와 공간에 기회를 만나는 것은 그래서 위험하다. 그것을 마주한다고 해도 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경험이 적지 않다. 뉴질랜드에서 무수하게 길을 잃었고, 서울, 싱가포르, 시드니, 태국, 베트남에서도 길을 잃었었다. 그때마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그냥 걷기'다. 방향을 가늠하지 않기. 그냥 걷기. 일단 그냥 무식하게 걷고 본다. 그려면 최소 10시간이 걸리던, 11시간이 걸리던 집에는 도착했다.
여행의 최종 목적지. 어차피 집이다. 여행은 더 멀리가고 더 오래 있을수록 남는 거라고 했다. 과거에는 목숨을 걸고 떠났겠지만 이제는 객사하려고 해도 쉽지 않은 세상이다. 스마트폰도 없고 지도도 없고 아무 것도 없이 집신발 한 켤레와 요기꺼리, 여벌 옷 정도 들고 나갔을 그들에 비하면 꽤 대단한 것들을 들고 여행하는 편이다. 그렇게 걷다보니 깨닫는 것이 있다.
무식하게 걷는 것이 결국 굉장히 현명한 방법이었다는 사실. 지금도 나는 10시간 헤매던 골목과 골목, 구석과 구석을 안다. 두 발로 그 시공간을 통채로 학습한 거다. 목적지를 향해 최단거리로 가는 것 보다 더 많이 알았다. 최단거리로 이동하면 이동거리가 되지만, 더 길고 복잡하게 가면, 그것은 여행이 된다.
남는 건 시간 뿐, 넘치는 건 체력 뿐. 갔던 길을 몇 번을 돌고, 지난 길을 몇 번을 되돌아가도 괜찮다. 여행의 묘미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지, 도착 시간이 아니다. 어쨌건 여행은 시간을 포획해 머리속에 가두고, 체력을 길러 준다. 15년이 지난 이야기다. 15년이 지나고 보니, 3시간을 걸으나, 10시간을 걸었거나 큰 손해가 아닌 것 같다.
인생은 소름끼치도록 길다. 고통스러울 것 같은 순간도 소름끼칠 정도로 찰나다. 손해나 이익도 인생 전체로 보니, 별반 차이가 없다. 태양계 탐사선 보이저 1호가 처음으로 지구를 향해 몸을 틀었을 때, 우리를 향해 보내온 사진은 광활한 검은 배경에 파란 점 하나였다.
해 보니 별 거 없더라. 지나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더라, 그런 것들을 깨달을 수록 그런 자신감이 생긴다.
'앞으로 더 멀리가도 괜찮겠어'
그것은 이동시간이 긴 사람의 깨달음이 아니라, 여행자의 깨달음이다.
결국 가야 할 길이 60억km라면, 5km던 50km던, 무슨 차이가 있으랴.
'메리츠 자산운용'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삼성전자 주식이 6만원이던, 9만원이던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50만원에 팔거라면...'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 말들이 희화화 됐지만, 그 말은 일리있다. 누군가로부터 듣을 것이 아니라 젊은이가 직접 깨달아야한다. 최단거리를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더 멀리 떠나도 사실 별거 없더라'라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