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개인은 어떻게 역사를 바꾸는가_한일 근대인물

by 오인환

1765년 10월 7일, '김낙순'은 태어났다. 그의 고조부는 부친에 이어 영의정을 지낸 '김창집'으로 집안은 대대로 명문가였다. 그 역시 스물에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참의, 이조판서 등의 관직 생활을 한다. 그는 외모와 능력이 출중하고 왕의 신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장이 뛰어나고 죽화도 잘 그렸다. 공평하고 정직한 성품을 가진 탓에 서인과 남인 양쪽에 신망이 높은 사람이었다.

어느날 정조는 신하들과 대화를 하다가 '김낙순'의 훌륭함을 알게 된다. 정조는 김낙순도 선조들같이 훌륭한 인물이 되라는 의미에서 이름을 하나 하사한다. 그렇게 낙순은 '낙순'이 아니라 '조순'으로 개명된다. 김조순은 이후로도 정조와 돈독한 관계를 갖게 된다.

1800년, 정조는 세자빈을 간택하기 위해 후보자 명단을 받았다. 그 때, 명단 안에 김조순의 딸이 없는 것을 확인한다. 그리고 '김조순'에게 말하여, 딸의 이름 또한 써서 올리도록 제안한다. 그렇게 김조순의 딸은 세자빈 후보자 명단에 올라가게 된다.

정조가 죽기 전, 그는 세자와 김조순을 불렀다. 그리고 세자에게 말했다.

'김조순의 보필을 받으면 결코 잘못된 길로 인도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 김조순은 항상 낮은 자세로 처신하곤 했다. 정조가 죽은 뒤에도 다르지 않았다. 김조순의 사람들 보고, 정순왕후는 김조순의 딸을 왕비로 간택하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그의 딸이 조선의 왕비가 된다. 그로써 김조순도 '부원군'의 작호를 받게 됐다.

이 때, 왕의 나이 11살, 순조의 장인이 된 김조순은 정순왕후가 죽고 실권자가 된다. 그러나 1832년 66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그는 고도로 절제된 처신을 했다. 자신에게 주어지는 관직을 모두 사직하고, 설령 관직에 임명된다 하더라도, 그날로 사직 상소를 올려 곧 사직 하곤 했다. 이처럼 자신을 낮추고 철저하게 명예욕을 절제했던 김조순은 아이러니하게도 조선 멸망의 시작점이라 보여지기도 한다.

그의 가문은 이후로 승승장구한다. 그의 장남인 김유근은 이후 병조판서와 이조판서를 지낸다. 여동생인 왕비에게 정치적 지원을 했고 인사권을 가졌다. 그가 가진 인사권으로 그는 집안 사람들을 주요 관직에 등용하기 시작했다. 왕비의 남동생인 김좌근은 늦은 나이인 마흔 두 살에나 문과에 급제한다. 그러나 4년 만에 이조판서까지 초고속 승진한다. 이는 조선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다.

왕비를 중심으로 오빠와 남동생은 이처럼 조선의 실권자가 된다. 이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키웠는데, 그 가문이 '안동 김씨'다. 안동 김씨는 11살 순조, 8살 헌종, 18살 철종, 12살 고종 등. 어린 왕들을 재위 시키며 세도정치를 이어간다. 그 가문의 성장이 곧, 조선 멸망의 초입이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김조순'은 왕의 총애를 받던 충신이자 공명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세도정치의 문을 연 인물로써 언급되기도 한다. 한 인물의 성품은 그 인물을 출세케한다. 한 인물이 출세하면 그 가문은 성장한다.한 가문이 성장하면 되려 때로는 망국의 씨앗이 된다. '좋다'와 '나쁘다'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은 역사에서 언제나 등장한다.

반대쪽에서는 비슷하지만 다른 일이 있었다. 1837년 일본 에도에서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태어났다. 12세기부터 일본은 막부체제에 의해 운영됐다. 쇼군이라고 불리는 무인들이 통치권을 가지고 있던 것이다. 이렇게 600년이나 지속된 막부 정치는 19세기 '도쿠가와 요시노부'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1867년,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천황에게 통치권을 넘겨주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요시노부는 사직하게 된다. 그리고 막부는 폐지된다. 일본의 정치는 이후 '메이지 신 정부'로 넘어간다. 메이지 정부는 과거 국가모델을 폐지하고 근대국가를 모델로 개혁한다.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선택이 막부를 폐지하고 신체제를 시작하는 시작점이 된 것이다.

이에 대해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에야스는 일본을 통치하기 위해 막부를 열었고, 나는 막부를 없애기 위해 쇼군이 되었다."

'39인의 치열한 삶은 어떻게 양국의 운명을 갈랐나'. 박경민 작가의 '한일 근대 인물 기행'의 표지에 이와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보다 절묘하게 이 책을 설명할 문구가 떠오르지 않는다. 흔히 역사는 흐름이라고 말한다. '흐름'이라는 단어에 빠져 들면, 그 속에 담긴 '개인'의 이야기는 가려지곤 한다. 역사는 형태없이 흐름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 안에는 무수하게 많은 개인의 흥망성쇠가 담겨져 있다. 때로는 누군가의 흥이 결과적으로 망이 되고 누군가의 성이 결과적으로 쇠가 되기도 한다. 이것을 들여다 볼 때, '새옹지마'는 인생사에만 쓰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단어 같다.

어떤 개인이 성공하고 어떤 개인이 실패를 했느냐, 어떤 집안이 성공을 하고, 어떤 집안이 실패를 했느냐. 문명 발전 단계의 격차는 이처럼 작은 선택과 결과들로 만들어졌다. 조금씩 쌓이고 모여 역사가 됐다. '선'과 '악', '좋음'과 '나쁨'이 아니라 연속되는 사건과 현상의 결과들이다. 이 책은 역사를 흐름이 아니라, 서른 아홉의 개인의 이야기로 서술한다. 갑신정변의 실패는 그 집안의 비극을 어떻게 만들었는가. 정변 실패로 연결된 수많은 개인들이 자살하거나 죽는다. 이런 개인의 비극과 개인의 희극은 때로 역사가 된다. 다만 그 곁가지로 설명되는 개인의 희비들을 모두 쳐내고 나니, 흐름이라는 형태만 남는다. 강이 흐르기 때문에 물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물이 움직이니 강이 흐르는 것이다. 역사는 어떻게 흐르는가. 가만히 살펴보니 개인의 운명이 국가의 운명을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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