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외로움도 배워야 한다_외로움 수업

by 오인환


배우면 수월해 진다. 그러나 사람들은 독학을 고집한다. 외로움도 그렇다. 혼자 극복하는 타성에 젖어 그것이 비정상적이고 일시적이라는 착각을 한다. 외로움은 일시적인 현상도, 비정상적인 감정도 아니다. 인정하자. 누구나 외로워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간다고 한다. 고로 함께 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불안해 한다. 다들 괜찮아 보이는데, 나만 이런 감정이 드나 싶다. '외롭다. 공허하다. 쓸쓸하다. 의지하고 싶다.' 등. 인간 감정의 디폴트값이 '외로움'이기 때문에 인간은 발전했다. 외로움은 누군가를 찾게 했다. 함께 하고자 했다. 문명의 탄생이 경이롭다면서 외로움은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외롭다는 건 고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외로움이 없었다면 야생 동물들처럼 모든 성체가 온전히 자립하고 있을 것이다. 혼자서 모든 일을 척척해 낼 것이다. 다른 동물들처럼 수렵괴 채집을 하며 오늘을 맞이 했을 것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갖고 있다. '의지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는다. 대상은 국가가 되거나, 종교가 되기도 했다. 외로움이 없다는 것은 믿고 싶은 이가 없는 것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누군가를 믿고 싶어 한다. 상대의 이야기에 동화되고, 때로는 상대가 그렇게 해주기를 바란다. 결혼했다하여, 아이가 있다하여, 직장을 다니고 있다하여, 외로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공허한 마음은 채우면 사라질 것 같지만 다른 빈 공간을 늘리기도 한다. 외로움이라는 것은 '극복'과 '해결'의 대상이 아니다. 인정하고 받아드리고 관리해야 하는 대상이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어쩌면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인정하고 관리하는 일이다. 독서는 제 입을 닫고 상대의 이야기를 조용히 경청 하는 일이다. 적게는 2~3시간, 많게는 10시간이 넘게 걸린다. 지금 살펴보니 내 블로그도 쌓인 독후감이 800편 가까이 된다. 한 권 당 다섯 시간만 잡아도 5년간 4,000시간을 책 보는데 사용했다. 여기에 1,500편의 글을 적었다. 길게는 2~3시간, 짧게는 30분 시간을 내어 쓴다. 한 편 당, 한시간만 잡아도 1,500시간 사용했다. 햇수로 5년에 5,500시간을 읽고 쓰는데 썼다. '참 할 일 없나' 싶다. '유난히 외로움을 타나보네' 싶다. 1년 1000시간. 분명한 건, 이 긴 시간동안 나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주변은 조용했다. 동시에 엄청나게 많은 말을 하고, 다양한 사람을 상대했다. 그러나 입을 다물고 있었다. 어찌됐건 내 주변은 적막하고 조용했을 것이다. 조용하고 적막했지만, 수 백 명의 사람과 이야기했고 들었다.



'김민식 PD'의 책을 들었다. 벌써 다섯 권의 저서가 생긴 나는, 누군가의 책을 읽을 때, 이런 생각을 한다. 이 작가도 이 글을 쓸 때, 온전히 혼자였겠구나. 몇 권의 책을 집필하다보니 알게 됐다. 집필하기 위해서 작가는 온전히 혼자여야 한다. 글을 쓸 떼, 입은 다물어야 하고 주변은 적막해야 한다. 작가는 대게 많이 읽는다. 이들은 역시 입을 다물고 주변을 적막하게 둔다. 그런 농도 100%의 적막의 정수가 1인치 책에 쌓인다. 외로움과 적막의 극치가 바로 책이다. 나의 외로움과 고독의 시간은 그들의 그것과 합하게 된다. 사람은 사회적 지위나 상황, 환경에 따라 다른 페르소나를 가진다. 어떤 사람이라도, 어떤 자리에서 만나느냐, 어떤 위치에서 만나느냐, 어느 시간에 만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사회적 페르소나를 완전히 내려놓고. 오롯하게 스스로가 되는 시간은 유일하게 혼자 있는 시간이다. 글은 그것을 담는다. 평소 나는 농담을 좋아한다. 가볍고 어리숙한 사람이다. 다만 글에서 나를 만나면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에게 '소비성 나'를 소모하고 혼자 에너지를 충전하면서 생각해보면 그것이 전부 진짜 나와 다르다고 생각할 때가 생긴다.



글로 첫인상을 알게 되면, 실물에서 느낌이 다른 경우가 있다. 아마 나도 그런 부류의 인간이지 않을까 싶다. 대부분은 글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잘 정돈된 글에 비해 긴장해 있거나, 부담을 느끼고 있거나, 어딘가에 신경을 쓰고 있다. 여러 방해되는 감정은 페르소나 뒤에 숨게 한다. 사람을 온전히 알기 위해서 고로 만남은 적절한 방식이 아니다. 그가 남긴 글과 책을 읽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모습을 읽는다. 책 좋아 하는 사람들이 타인에 대한 이해가 많은 이유가 어쩌면 겉에서 보여지는 행동이 극일부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온전한 나와 마주하는 시간에 대해 '김민식 PD'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어딘가 내 이야기를 읽는 것 같다. 나이와 체면, 지위 모든 것을 제외하고 오롯하게 혼자 있을 때의 모습이 닮았다. 이것은 사실 반가운 부분이다. 서로 착용하고 있는 페르소나를 벗어 보면 같은 민낮을 하고 있다는 의미니까.


외로움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어딘가 좀 모자른 듯 해도, 따지고 보면 세상은 다 외로운 사람들에 의해 굴러갔다. 보와 댐을 짓고 토목공사를 하려면 많은 인간이 힘을 합하고 사회적인 활동을 해야 했지만, 상대성 이론을 쓰거나, 프린키피아를 쓰거나, 훈민정음을 쓰거나 할 때, 이들은 모두 아주 고요하고 적막한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자, 이제 외로운 것이 조금 모자라거나 불쌍한 것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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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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