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 썰듯 경계를 베어버릴 수 없는 것이 있다. 경계 없는 모호함에 가장 잘 어울리는 감각. '후각'이다. 향기에는 경계가 없다. 어디서부터 어떤 향인지, 시작점은 어디고 끝점은 어딘지, 기록하기도 힘들고 보여주기도 힘들고 표현하기는 더 더욱 힘들다. 그런 특징이 인간의 감정을 닮았다. 글이나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의 모호함을 전달하기에는 '향'이 적절하다. 어쩌면 '향'을 닮은 것이 '꽃말'이다. 꽃은 단순히 그것이 담고 있는 '꽃말' 외에 맛, 향, 그것의 역사, 효능 등 다양한 것을 함께 전달한다. 쌍둥이 아이들의 이름에는 '율'자를 사용했다. '율'은 '율마나무'에서 따왔다. 율마나무는 성실함과 침착함이다. 율마는 키우기 까다로운 나무다. 한번 마르기 시작하면 살려내기 어렵지만 성장에 탄력이 붙으면 끝도 없이 자란다. 율마나무는 스칠 때마다 상큼한 향과 피톤치드를 내뿜고 주변을 정화한다. 아이에게 바라는 모습을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율마나무' 하나로 꽤 많은 정의를 할 수 있다. 율마는 작은 화분으로 실내에서 키우다가 성장이 어느정도 되면 정원으로 옮겨 심을 수 있다. 야외로 나간 나무는 실내에서 모습이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성장하여 정원 중에서도 가장 큰 나무로 자라난다. 이처럼 꽃과 나무에는 각자 그 성향을 닮은 꽃말이 있다.
제주에서 자주 보이는 '수국'도 참 매력있는 꽃이다. 예전 제주도에서 수국은 '도체비꽃'이라고 불렀다.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어린 시절 수국을 보면 이름 때문에 무서워 도망 다녔다고 하신다. '도체비'라는 말은 '도깨비'의 제주식 방언이다. 도체비꽃은 토양의 ph에 따라 색을 바꾼다. 수국 꽃의 색깔은 수시로 변하는데 그것을 꺾어다가 심으면 이전 색이 아닌 다른 색으로 피는 희한한 꽃이다. 이 꽃의 별명이 '변화하는 장미'인 이유다. 수국은 일본 정원이나 절에서도 널리 재배됐다. 수국은 대부분 독성이 있고 청산가리 성분으로 알려진 시안화물을 소량 함유하고 있다. 이 밖에도 꽃은 약으로도 쓰이고 독으로도 쓰인다. 양귀비라는 꽃도 그 이야기가 참 재밌다. 양귀비는 꽃이 피기 전까지는 고개글 숙이고 있다가 개화하면 줄기가 꼿꼿하게 선다. 이는 당나라 귀비 양 씨에서 따왔다. 경국지색, 나라를 망하게 할 만큼 미친 미모의 상징인 양귀비는 당나라 6대 왕 헌종의 마음을 끌어드렸고 헌종은 양귀비를 만난 뒤부터 국정을 소홀히 하여 백성과 나라를 위험에 빠뜨렸다. 그 중독성으로 양귀비라는 꽃은 여러가지 마약의 원료로 사용된다. 양귀비꽃에는 향기가 없다는 단점이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귀비 양 씨에게서는 겨드랑이에서 심각한 암내가 풍겼다고 한다. 이 양귀비에서 추출한 물질을 가지고 만드는 것이 '아편'이다. 실제 중국은 '당'나라 시기뿐만 아니라 '청'나라도 '양귀비'에 의해 국가가 파탄에 이르는 독특한 역사를 갖는다. 이 아편을 정제하고 새롭게 추출하여 '모르핀'이라는 마약을 만들고 다시 모르핀을 아세틸화하여 만든 것이 '헤로인'이다.
경국지색하면 떠오르는 다른 인물이 있다. '클레오파트라'다. 클레오파트라는 장미를 무척 좋아했다. 장미는 전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꽃이기도 하지만 가장 오래된 꽃 중 하나다. 미국 콜로라도주의 플로리전트 화석지대에서 최소 3,500만년 이상된 장미를 확인할 수 있단다. 그 뿐만 아니라 장미는 5000년 전 메소포타미아 쐐기 문자에서도 그 기록이 발견됐다고 하니 이 꽃이 인간과 함께한 역사가 꽤 길다고 할 수 있다. 장미유는 화장품이나 향수에 들어간다. 다만 그 생산 비용이 많이 드는 재료다. 장미유 28g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약 6만 송이의 장미가 필요하다. 클레오파트라는 연인인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를 위해 지중해 실시아를 방문해 며칠동안 축제를 열었다. 그녀가 이곳을 방문한지 4일째 되는날 그녀는 현대 가치로 125만 달러에 해당하는 장미를 구입한다. 구입한 장미를 깊이가 45cm인 복도의 바닥에 카펫으로 깔아 사용했다. 그녀는 그 밖에도 장미를 워낙 좋아했는데 장미 향수를 사용하고 장미 목욕을 하기도 했다. 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매료하는 장미는 그 매력 많큼이나 꽃말도 다양하다. 활짝 핀 분홍색 장미는 약혼을, 반쯤 핀 분홍색 장미는 사랑을, 분홍 장미 봉오리는 찬탄을, 붉은 장미는 깊은 겸손을 의미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붉은 장미가 의미하는 '겸손'과 다르게 역사에서 장미는 '사치'를 위해 사용되곤 했다. 로마의 폭군 네로황제는 평소 장미로 채워진 베개를 쓰고 연회장은 장미로 도배를 했다. 장미향 분수, 장미 수영장, 장미 술, 음료, 푸딩 등 장미를 이용한 사치를 즐겼다.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에는 카네이션을, 장례식장에는 국화를, 졸업식에는 프리지아와 작약을 선물한다. 유현준 교수의 말에 따르면 인간의 과시는 '생필품'에서 멀어질수록 뛰어나다고 한다. 과거 유럽의 귀족들은 정원에 잔디를 심어두곤 했는데 그 이유는 먹고 사는 것에 전혀 연관 없는 작물을 기르고 유지하는데 비용을 지불할 만큼 그 부와 여유를 과시하고자 했기 때문이란다. 꽃은 영원하지 않다. 과거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을 보더라도 인간이 '생필품'과 전혀 연관 없는 무언가에 비용을 지불할수록 그것이 더 가치 있다고 느끼는 모양이다. 그 만큼 꽃은 먹고 사는 이외의 무언가를 충족시키는 역할을 우리 삶에서 해왔으며 고로 삶의 중요한 순간과 장면에는 언제나 꽃이 함께 하고 있다.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해왔던 여러 꽃들의 의미와 상징을 함께 보며 다양한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