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안 하는 이유는 못하기 때문이고, 못하는 이유

by 오인환

'부자되는책 읽기'를 출간했을 때, 도서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11쪽,

돈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인간의 행복은 돈과 관련이 없다는 말은 아무리 옳다 하더라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이 없으면 모든 게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돈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은 거짓이다.

오죽하면 당시 서점을 서성이다 책을 집어든 누군가가 도서에 적힌 메일로 장문의 글을 써서 보냈을까. 메일의 요지는 '돈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

돌이켜 보건데 돈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표현이 다소 과했다. 정정하자면 이렇다. '돈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 다만 확률은 극히 적어진다.'

이스라엘 태생의 미국 경제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커너멀 대니얼(Kahneman Daniel)에 따르면 소득과 부의 상관관계는 어느 기점으로 늘지 않는다. 소득과 행복의 상관관계 그래프가 있다. 소득이 행복에 크게 영향을 끼치 않는다는 근거로 자주 사용된다. 그래프를 보건데 소득은 행복에 영향을 끼치다가 어느 순간부터 급격하게 줄어든다.

소득과 행복은 상관관계가 없다고 그래프는 말한다. 다만 상관관계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구간은 대략 7만불에서 8만불 사이다. 이는 한화로 계산했을때, 연봉 9,000만원에서 1억원 사이다. 그렇다. 소득은 행복과 크게 상관없다. 9,000에서 1억원 이후부터는 그렇다는 말이다. 심지어 이하 소득까지는 의미 있는 정도의 상관관계가 있다. 되려 줄어드는 격차보다 올라가는 격차가 훨씬 가파르다. 고로 행복함과 별개로 일단 부유해지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돈이 있으면 반드시 행복하다는 것은 아니다. 돈이 없다고 반드시 불행한 것도 아니다. 돈과 행복은 비교할 수 없다. 이는 '파란옷'과 '피자'의 상관관계 같은 것이다. 파란옷을 입은 사람일수록 피자를 먹을 확률이 높을까. 알 수 없다. 그럴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오래전, 화장이 진한 여학생을 가르쳤던 기억이 있다. 화장이 진했고 치마는 짧았다. 책보다 거울과 스마트폰을 많이 보는 편이었다. 여학생은 꿈이 있다고 말했다. 꿈은 공부를 잘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꿈을 이루면 행복할 것이고 만족할 거라고 했다. 꿈이 높지 않으니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다. 서울대나 의대를 들어갈 것이 아니니, 적당히 해도 괜찮다고 했다. 학생의 그런 확고한 꿈을 나는 하나의 질문으로 무너뜨렸다.

"만약, 어디든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다면 의대 갈래? 거기 갈래?"

"의대요." 학생은 답했다.

꿈은 쉽게 갔다버려졌다. 대부분의 꿈이라는 것이 그렇게 부질 없다. 어린 손흥민 선수에게 선수냐, 의사냐를 물었다면 아마 주저없이 선수를 택했을 것이다. 그런게 꿈이다.

꿈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대부분 진정 원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능력에서 겨우 가능할 최대치일 뿐이다. 그건은 꿈이 아니라 게으른 욕심일 뿐이다. 더 움직이지 않는 이유로만 사용되고 바로 버려진다. 유혹에 흔들리지 않도록 굳건하게 해주는 꿈을 아무데나 갔다 붙이니 차리라 없는게 낫다.

세상에는 안 하는 것과 못하는 것이 있다. 대부분 못하는 것을 안한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다.

안 하는 이유는 못하기 때문이고, 못하는 이유는 안하기 때문이다.

공부를 못하는 이유는 공부를 안하기 때문이고, 공부를 안하는 이유는 달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는 안하기 때문이고, 삶이 달라지지 않는 이유는 달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파트 경비를 하거나 공원을 청소하는 등 성적과 관련 없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그것을 하고 싶다고 해서 성적이 반드시 나빠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꿈이 성적과 관련 없다고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꿈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농사'를 권하셨다. 유학갔다 왔는데 농사를 짓기 아깝다고 말씀드리자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농사 짓는 이 중에는 유학파가 있으면 안되느냐'

얼마 뒤, TV에서 대한민국 최고 명문대를 졸업한 이가 나왔다. 그는 농사 짓고 있었다. 그것이 제대로 된 철학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현재 능력에서 할 수 있는 최고치에 도달하는 것이 꿈이 아니라, 능력을 최고로 끌어 올리고 자신의 꿈을 선택하는 일 말이다. 그것이 진짜 자기 꿈에 대한 예의다. 그 명문대를 졸업한 그 농사꾼은 농사 짓는 이들의 평균을 들어 올렸다.

싸워서 이길 수 있음에도 져주는 것과 이길 수 없어서 지는 것은 다르다. 져주는 것은 겸손이고 지는 것은 비굴이다. 져주는 것은 능동이고 지는 것은 수동이다. 져주는 것은 주체적고 지는 것은 복속적이다.

자신의 능력에서 겨우 닿을 법한 최고치를 목표로 삼을 것이 아니라, 누구도 넘볼수 없는 차이인 초격차를 만들어 놓고 넉넉하게 그곳에 들어가 업계 평균을 올리는 것이 꿈을 제대로 이루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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