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백신과 신약의 뒷 이야기_분자 조각가들

by 오인환

1950년 중반 서독에서 '탈리도마이드'라는 항경련제가 시판됐다. 이 경련제는 아이러니 하게도 경련을 멈추는 효과가 강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을 발견한다. 이 약을 복용한 사람들이 쉽게 잠에 드는 것이다. 1957년 10월 이로써 서독에서는 '탈리도마이드'를 '콘테르간(Contergan)'이라는 이름의 수면제로 시판한다. 이 약은 수면 효과가 강력했다. 또한 기존 수면제와 다르게 과다복용하여 자살로 사용되는 일도 없었다. 동물실험에서도 안정성이 검증됐고 쥐를 대상으로한 실험에서도 특별한 부작용이 없었다. '탈리도마이드'는 다른 효과도 있었다. 다른 수면제와 같이 진정 효과도 강력했다. 이후 약은 진정제로도 사용된다. 임산부에게 사용하여 입덧을 완화하는 용도로 쓰였다. 이 약은 독일 의약품 순위에서 아스피린에 이어 2위에 오르는 약으로 성장했다. 이후 이 약은 전세계로 뻗어나가 글로벌한 의약품이 될 예정이었다.

제약 회사들은 천 명분의 약을 시제품 명목으로 나눠주었다. 의사의 대부분은 이에 만족했다. 미국에서는 1957년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이 약을 복용하였고 영국에서는 '독일'에서 쓰인다는 약이라는 이유로 특별히 추가 심사 없이, 이 약을 승인했다. 이때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신임 심사관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프랜시스 켈리'다. 그녀는 박사 학위를 받고 식약처에서 신약 승인 심사를 담당했다. 이미 독일과 영국 등의 다른 나라에서 승인된 물질을 심사하는 일은 비교적 쉬운 일이었다. 선임 심사관들은 '신입'인 그녀에게 조금 더 편한 업무를 주기 위해, 이처럼 이미 검증된 물질의 심사를 맡겼다. 그러나 이 의욕 맣은 46세 신입 심사관은 안전성을 이유로 승인을 보류한다. 당연히 승인될 것으로 여기던 물질이 승인보류되자 의사와 수업 업체는 약을 승인해 달라고 불만을 쏟았다. 켈리의 이런 까다로움에 동료나 선임 심사관들도 한 마디씩 했다. 그러나 그녀는 줄 곧 안정성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탈리로이드는 1년간 여섯 번이나 승인 보류 된다. 켈리의 융통성 없는 심사 조건에 모두가 답답해 하던 찰라 호주에서 논문이 나온다.

탈리도마이드가 기형아 출산과 연관이 있다는 논문이다. 이후 사례를 조사해 보니 탈리도마이드를 복용한 임산부는 사산이나 유산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출산된 아이의 경우에도 팔과 다리가 제대로 발달하지 않는 기형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후 1962년 전세계에서 탈리도마이드가 금지 된다. 이미 40여 개국에서 1만 2천여 명의 기형아가 나온 뒤였다. 그해 켈리는 존.F.케네디 대통령으로 부터 표창을 받았다. 당시 탈리도마이드 아이의 40%는 1년 내에 다시 사망했으며 살아남은 이들도 지금까지 고통을 겪고 있다. 의약품이라는 것이 얼마나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다.

이야기를 조금더 뒤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의약품이 인간의 역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를 알 수 있다. 과거 유럽에서는 아프리카의 노예를 아메리카 식민지로 데려갔다. 처음 유럽인들은 아프리카 깊은 곳까지 들어가지는 못했다. 이유는 이렇다. '말라리아' 덕분이다. 유럽인들은 아프리카 대륙 깊이 들어가면 심한 고열에 시달리고 급기야 사망하기도 했다. 다만 1820년 퀴닌이 분리 되면서 인류의 역사가 바뀐다. 퀴닌이 말라리아에 대한 치료효과를 보이면서 유럽인들은 아프리카 대륙 깊은 곳까지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이후 영국과 프랑스는 아프리카를 종단, 횡단하며 식민지를 양산하기 시작한다. 인류의 역사가 제국주의로 흘라가는 시점이다. 그동안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깊은 곳까지 침투하지 못하던 하나의 장벽이 무너진 것이다. 이후 유럽이 아프리카를 종횡하며 만들어낸 국경선 덕분에 지금 현재도 수많은 아프리카인들이 내전과 종교적 갈등으로 사망하고 있다. 의약품이라는 것이 인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정확한 사례다.

타이레놀부터 코로나19 백신까지 이런 의약품들은 이처럼 우리 주변에 쉽게 접할 수 있으면서도 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곤 했다. 생명을 살리고 기적을 창조하는 분자 단위의 예술은 때로 더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고 잘못 사용되기도 했다. 그만큼 분자를 다루는 이들의 영향력이 '핵폭탄'만큼 강력하다는 반증이다. 분자를 다루는 것은 단순히 의약품 분야에서만 우리에게 영향을 끼쳤던 것은 아니다. 앞서 말한 '퀴닌'을 합성하던 젊은 청년인 '퍼킨'은 퀴닌을 합성하다가 우연하게 검은 침전물이 플라스크에 형성되는 것을 발견한다. 플라스크를 깨끗이 씻기 위해 그는 그 불순물에 알코올을 집어 넣고 흔든다. 그러자 그 침전물은 알코과 섞이며 보라색을 띄게 된다. 보라색은 인간의 볼 수 있는 가시광선의 끝에 있는 색이다. 파장이 짧아 대체로 인간의 정신을 고양하고 신경을 차분하게 해주는 효과도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보라색은 예저부터 왕실과 최상위 계층만 사용할 수 있을 만큼 값비싼 색깔이었는데 이유는 이 보라색을 얻기 위해서 뿔고둥이나 달팽이가 엄청나게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색은 자연에서 얻기 쉽지 않았다. 다만 화학적으로 만들어진 '보라색'을 발견한 '퍼킨'은 이후 이 물질을 정제하고 염료회사를 차리기로 한다. 이후 친구와 형을 설득하여 집 앞에 있는 헛간에서 창업을 시도한다. 이후 이 물질에 '모베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모베인으로 만든 모직물은 천연염료보다 아름다웠고 값은 더 저렴했다. 이후 '바이엘, 회흐스트, 바스프 등의 회사도 함께 설립되며 지금까지도 꽤 규모 있는 거대 화학회사이자 제약회사로 남아 있다. 현대 화학 기업의 출발의 대부분이 염료회사였던 이유다. 이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인간의 발견, 특히 신약과 의약품에서의 발견은 '자연'에서 오거나, '우연하게'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세렌디피티'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는 '오린 준비 끝에 찾아온 행운'이라는 의미로 의약품과 화학품에 적합한 이름이기도 하다. 물론 우연하게 혹은 자연으로부터 모방하여 만들어지는 경우가 상당수지만 대체로 이들은 그것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준비가 필요하다. 어쩌면 기적이라는 것이 이처럼 꾸준한 준비 끝에 찾아오는 행운과 같은 것이 아닌지 '분자'의 세계를 보며 느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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