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이 있다고 기뻐할 필요도, 나쁜 일이 있다고 슬퍼할 필요도 없다. 그저 담담하게 인생의 파도에 몸을 맡기며 그 출렁임을 즐기면 된다.
-앞으로 더 잘될거야 中
절대라는 말은 잘 쓰지 않는다. 다만 절대 실패 없는 선택을 하는 법이 있다. 간단하다. 이 방법은 결코 실패하거나 지지 않다. 여러 방법 중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이야기를 시작하면 이렇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는 축구를 잘했다. 앞으로 굴러온 공을 걷어차기 급급했던 나와 달랐다. 그는 원하는 곳으로 공을 보냈다. 찬 공은 거의 백발백중이었다. 공은 원하는 방향으로 무조건 떨어졌다. 주변인들도 실력을 인정했다. 그 능력이 부러웠다.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원하는 곳으로 공을 차?"
친구는 대답했다. 그 대답이 엄청난 깨달음을 주었다.
"원하는 곳에 차는 게 아니라 걷어차고, 의도한 바라고 으스대면 돼."
그렇다. 그는 의도를 실현하는 능력을 갖춘게 아니라, 결과를 해석하는 방식이 달랐다. 이후 나의 축구 실력은 늘지 않았다. 다만 다른 분야에서 꽤 효과를 냈다.
좋은 선택과 나쁜 선택이 있다. 그것은 거짓이다. 좋은 선택과 나쁜 선택은 없다. 선택에 대한 평가는 고정적이지 않다. 오르고 내리는 파도를 보고 있다고 해보자. 출렁이는 파도를 보며 '오른다'라고 말을 하면 50%는 맞다. 반대로 50%는 틀리다. 다만 1초를 기다리면 내리던 파도는 다시 오른다. 결국 시간을 두고 보면 50%였던 확률은 100%로 오른다.
파도는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한다. 거기에 대고 '오른다' 하면 절반 맞다. 다시 말하지만 틀렸다해도 잠시 후 맞는다. 결국 시간차이일 뿐 언제나 맞다. 17세기 네덜란드는 봉건제 국가였다. 지방분권은 중산층의 경제 참여를 이끌었다. 그들이 경제에 대거 참여하자 자본이 축적됐다. 네덜란드는 이로써 세계 최초의 상업체제 국가가 됐다. 그리고 세계 패권국으로 만들었다. 봉건제는 아이러니하게도 네덜란드를 패망하게 했다. 중앙 집권하지 않은 권력은 자신들의 지역적 이익만 추구했다. 결국 이는 국가 전체 발전에 제동을 주었다. 이런 지역적 이익은 대규모 산업을 육성하는데 제한적인 요인이 됐다. 반면 영국은 중앙집권 국가였다. 규모 있는 산업이나 전쟁 동원 등이 국가 주도하에 이루어졌다. 18세기에 들어와서 네덜란드는 영국과 대립을 하고 얼마 뒤 그 지위를 잃었다. 봉건제냐, 중앙집권이냐는 역사에서 꾸준히 반복했다. 15세기 프랑스에서는 중앙집권을 통해 강력하고 커다란 대규모 국가를 탄생하는데 기여했다. 그러나 17세기에는 다시 봉건제가 부활했고 18세기에는 다시 중앙집권화가 주도했다. 미국의 역사를 보면 이와 비슷하다. 미국 건국 초기에는 작은 정부를 주장하는 자유주의 이념이 강했다. 이는 1787년에 제정된 미국 헌법에 반영되었다. 미국은 중앙집권화를 제한하고 국가의 권한을 지방으로 위임했다. 이는 미국의 건국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다 1930년대에 대공황이 일어나며 미국정부는 큰정부를 주장하게 된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딜 정책을 통해 국가가 경제 회복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게 했다. 다시 1980년에는 작은 정부가 들어섰다. 다시 자유시장경제를 중요시 생각하며 작은 정부를 지향했다. 우리도 다르지 않다. 이는 어떤 것이 맞고 틀리다의 성향이 아니다.
'인생지사 새옹지마'. 좋은 일과 나쁜 일은 번가른다. 한 노인이 말을 잃어버린다면 나쁜 일이다. 다만 잃어버린 말이 다른 말을 끌고 오니 좋은 일이 된다. 다시 그 말을 타다가 아들이 다리를 다치니 나쁜 일이다. 그러나 다리를 다치니 아들은 전쟁에 징병되지 않는다. 그러니 좋은 일이다. 그럼 말을 잃어 버렸던 최초의 일은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알 수없다. 선택도 그렇다. 맞추는 것은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아무거나 선택하고 무조건 만족하면 된다. 짜장면이냐, 짬뽕이냐를 고민하고 답을 내릴 필요가 없다. 고민은 균형이 아주 적절할 때 생긴다. 고로 고민이 된다면 무엇을 선택해도 탁월하다.다만 선택을 망설이는 이들은 대게 '후회'를 걱정한다. 후회는 '뒤에 뉘우침'이라는 의미다.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갖는 감정이다. 만족이란 언제나 가능하다. '만족'이란 충분하고 넉넉하다는 의미다. 사람의 욕심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애초은 '이상'을 추구한다. 끊임없이 나으 것을 원하고 나아가길 바란다. 고로 '만족'은 자연적으로 일어날 수 없다. 고로 모든 것에 만족하지 못하거나, 모든 것에 만족하거나, 두 종류 밖에 없다. 후회하는 이들의 경우는 어떤 걸 선택해도 후회한다. 후회하지 않는 이들은 어떤 걸 선택해도 후회하지 않는다.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선택을 하면 만족하고, 어떤 선택을 하면 만족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무엇을 선택해도 만족할 수 있는 사람과 무엇을 선택해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만 존재할 뿐이다. 이는 결과를 받아드리는 자세일 뿐이다. 백발백중의 명사수가 되기 위해서는 과녁을 향해 활을 쏘는 방법도 있지만 내가 쏜 화살에 과녁을 그려 넣는 경우도 있다. 고로 선택은 아무거나 하라. 그리고 무엇이든 만족할 수 있는 마인드를 키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