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눈을 떠보니 영국 총리의 몸으로 바퀴벌레가 깨어난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닮은 도입부다. 소설은 '역방향주의'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총리가 된 바퀴벌레는 이 '역방향주의'를 밀어 붙인다.
역방향주의는 이렇다. 돈의 흐름이 반대로 가는 것이다. 종업원들은 일을하면 노동의 댓가로 기업에 돈을 지불한다.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되려 지불한다. 쇼핑을 하면 물건 값을 소매가로 받는다. 현금 비축은 금지가 되고 은행에 돈을 맡기면 높은 마이너스 이자가 붙는다. 임대인은 임차인에게 돈을 주기 위해 제품을 끊임 없이 구매해야 한다. 정부는 노동자들에게 세금을 주기 위해 원자력 발전소를 인수하고 우주 탐사를 확대한다. 돈의 흐름이 거꾸로 흐른다. 이런 돈의 흐름의 끝에는 '소비활성'과 '완전 고용'이 있다. 이런 허무맹랑한 개념을 읽다가, 문뜩 멈춘다.
'어! 잠깐만. 그럴 수도 있나.'
되도 않는 개념에 살짝 설득 당하고 '피식'한 뒤, 다시 읽는다. 이처럼 경제의 흐름을 뒤집으면 문제가 발생한다. 바로 이웃 국가와의 관계다. 독일, 프랑스 심지어 중국과의 관계다.
이 소설에서 '역방향주의'는 꽤 구미가 당기는 일일지 모른다. 노동을 하면 돈을 주고 쇼핑을 하면 되려 돈을 받는다니. 그럴싸한 '파퓰리즘'이다. 결국 '노동'보다 '소비'가 주가 되는 세상을 이 소설은 비꼰다. 현대 사회는 소비가 지배하는 시대다. 소비가 경제 부양의 큰 축이 되면서 사회는 '노동'보다 '소비'를 부축인다. 현대 자본주의가 현대인에게 '소비'를 장려하며 진행하다보니 결국은 사람들은 '빚'에 허덕인다. 현존하는 경제 개념을 완전히 뒤집은 이 개념은 허무 맹랑할 것 같지만 나름의 논리를 갖고 있다. 때로 일부는 현대 자본주의를 닮기도 했다.
얼핏 '그럴 수도 있나' 했던 건 그 표면적 설득력 때문이다. 돈이 거꾸로 돌면 아무도 일을 하지 않을 것 같지만 현금 비축이 불법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일을 한다. 결국 정말 소비를 자본주의 축으로 두는 것이다. 이런 역방향주의는 시장에 끊임없이 통화가 공급되며 금방 화폐가치가 떨어지게 할 것이다. 다만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강력한 수출이다. 강력한 수츨을 통해 파운드화를 이웃 국가에 무더기로 보내면 화폐는 다시 안정화된다. 빈곤한 다수의 여론을 이용한 파퓰리즘을 풍자한 이 소설은 2020년 1월 31일 영국이 유럽 연합에서 탈퇴한 브레시트(Brexit)를 떠올리게 했다.
2016년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나에게도 잊지 못할 사건 중 하나다. 영국에 살지도 않으면서 어째서 그렇게 강한 인상이 남았나.
브렉시트 전, 미국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였다. 개인적으로 그 시기까지 세상은 나름의 상식 선에서 움직였다. 세상은 '세계화'와 '민주화'라는 공통의 '선'을 지향하는 듯 보였고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질서가 주류였던 시기다. '브렉시트'라는 말이 유행하기 전, 유럽은 '그렉시트(Grexit)'라는 개념을 끊임없이 노출하고 있었다. 그리스의 경상수지 적자로 인해 유럽에서 내보내자는 이야기였다. 그렉시트에 대한 유럽의 자세는 납득 가능했다. 경제적 득실에 따라 발생한 현상이었다. 그러나 2016년 영국의 유로 탈퇴 국민 투표는 달랐다. 유로존을 이탈할 이유가 그리스 만큼 명확한 명분이 없는 상태에서 오로지 '내부 정치적 이유'로 시행한 국민 투표다. 이전까지 세계는 나름의 상식선에서 흘러갔다.
영국의 '브렉시트' 선언은 그저 해프닝일 뿐이며, 자충수가 될 것이 뻔한 그 정치적 행동을 할 없다고 여겼다. 당시 나는 브렉시트와 전혀 상관 없는 국내 '피혁회사'의 주식을 갖고 있었다. 적잖은 비중을 그 안정적인 회사에 투자하고 있던 나에게도 '브렉시트'는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한편으로 불안하지만 그래도 세상은 내 상식선에서 움직일 것이라고 여겼다.
어두워진 밤 '브렉시트' 국민투표에 대한 개표방송을 온라인으로 시청하고 있었다. 끝까지 그럴리 없다는 확신을 했지만 개표방송 마지막에 코스피 상당수의 주식이 하방으로 내리 꽃는 모습을 지켜봤다. 브렉시트와 전혀 연관없는 '피혁회사'의 주식은 그중에서도 아주 무섭게 내리 꽂았다.
'이런 말도 안되는 고립주의를 영국 국민 다수가 생각한다고?'
황당과 믿을 수 없음이 교차했다. 그러나 브렉시트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었다. 이후 비슷한 사건이 몇몇 있었다. 2017년 버락 오바마의 재임 기간이 끝났고 '트럼프'와 '힐러리'의 대선이 진행됐다. 다수의 전문가들 뿐만 아니라 나 또한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출마는 해프닝이라고 여겼다.
불법이민자를 추방하고 미국 중심의 고립주의,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과 중국을 향한 무역 전쟁. 당시 허무맹랑하다고 여겨지는 공약들을 보고 방송에 전문가로 나온 패널들고 웃었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재밌긴 하겠네' 정도 수준으로 넘어갔던 일이 결국 실제로 벌어졌다. 미국은 고립주의를 택했고 상상도 해 본 적 없는 미중 무역 전쟁은 실제로 있었다. 세상이 거꾸로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던 말이 '뉴노멀의 시대'다. '기존의 표준'이 사라지고 새로운 '표준'이 자리잡은 시대라는 말이다. 사람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독단적인 결정이 해프닝으로 끝날 것이라 여겼지만 실제로 탈세계화는 현실이 됐다. 누가 득이 되는지 알 수 없는 무역전쟁이 벌어졌다. 비로소 '파퓰리즘'의 시대가 열렸다. 국익에 관련 없이 정치인들은 유권자의 입맛대로 정치를 했다. 국민 감정에 따라 정책이 움직이는 시대가 열리자, 탈세계화는 더 가속화됐다. 비로소 파퓰리즘에 반하는 '엘리트주의'를 지향하는 부류도 생겼다. 이런 세계적 흐름에 '중국'과 '러시아'와 같은 독재 국가에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을 가졌다. 민주주의가 결국 '파퓰리즘'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며 러시아와 중국이 자신들의 입지를 더 굳건하게 했다. 주요국 간의 '전쟁'과 '갈등'이라는 말이 나의 시대에 어울리지 않다는 사실을 당연한 사실로 알고 지내던 과거는 사라지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주요국들은 간,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받는다. 그것은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이 소설은 카프카의 '변신'을 닮은 소설이지만 그 도입부를 제외하고 내용은 전혀 다른 반식으로 흘러간다. 카프카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불분명하게 오가며 현실 상황에서의 문제를 글로써 나타낸다. 과학기술, 사회문제, 인간 심리적 갈등에 대해 비현실적인 소재와 현실적인 문제를 적당히 섞어 표현하는 것이 이언 매큐언 작가와 '카프카'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겠다. 1948년 런던에서 태어난 이언 매큐언 작가는 전쟁 직후, 미국이 주도하는 질서의 세계에서 '브렉시트'를 목격한 지식인이다. 그가 목도한 영국의 정치적 흐름은 역방향주의, 고립주의였다. 바퀴벌레 총리가 만들어낸 역방향주의로 인해 인간의 삶이 어두워지고 고통스러워지면 본래 자신의 본체였던 바퀴벌레는 더욱 번성할 수 있게 된다. 맹목적인 파퓰리즘과 애국주의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가볍고 얇은 소설을 통해 묵직하게 담았다.
카프카의 소설을 최근에 읽고 비슷한 소재라 구매를 했다. 개인적으로 가볍게 읽기 위해 얇은 책을 구매했는데 의외로 가볍게 읽을 수 있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