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다 읽진 않았다. 대략 4천 권 쯤되나. 모르겠다. 아이 나이와 비슷한 7년 쯤 된 것 같다. 책을 한 권, 두 권 쌓게 된 시기가.
일기장, 상장, 책을 포함하여 어머니는 모두 갔다버리셨다. 야속할 정도로 깔끔하게 버리셨다. 상을 받고 온 손흥민 선수에게, 손웅정 님이 '들어 올 때, 분리수거 하고 오너라'라고 한 것처럼. 어머니는 깔끔하게 버리신다. 이것 저것 흔적이 있을 법한 것도 모두 버리신다. 안타깝게도 그런 이유로 내 흔적은 하나도 없다. 어머니는 깔끔한 것을 중요히 여기셨다. 사용하지 않으면서 갖고 있는 걸 싫어 하셨다. 책도 그렇다. '재독'도 하지만 대체로 한 번 읽고 나면 관심사가 흘러간다. 같은 작가의 다른 책을 사거나, 같은 주제의 다른 책을 읽어 그렇다.
어머니가 보시기에 쌓아두고 읽지 않는 책은 짐짝이었다. 겨울철 장작 보일러에 잘 타는 땔감일 뿐이었다. 시골집에는 '장작 보일러'를 사용했다. 책은 좋은 땔감이 됐다. 성인이 되서 타지 생활이 길었다. 서울 혹은 해외에서 시간을 보냈다. 뉴질랜드 공항에서 수하물 중량이 넘었던 적 있다. 온갖 옷가지와 생필품을 비롯해 가장 무거운 것은 '책'이었다. 귀국 중, 초과된 수하물에 곤혹스러웠다. 가방을 열고 바로 옆 쓰레기통으로 몽땅 때려 넣었다. 책을 제외한 나머지 짐들을 말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이가 미쳤다고 만류했다. 그러나 무게는 역시 초과됐다. 한참을 갈등하다가 현지에서 구매한 원서만 골랐다. 영어로 된 원서 몇 권을 공항 화장실 칸에 골고루 비치했다. 그리고 귀국했다. 그래도 누군가가 읽겠지. 혹은 가지고 가겠지. 그게 해봐야. 몇권 되지 않는다. 그 버려진, 혹은 무료로 배포된 책은 십수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아쉽다.
한국에서 책을 좋아하는 이를 만나면 꼭 묻는다.
"책 좋아하세요?"
읽는 책과 비슷한 책을 빌려준다. 상대는 고마워하진 않는다. 책이라는 것이 본래 '도서관'에서 무료로 빌려 볼 수 있는 물건이다. 다만, 빌려준 마음은 그렇지 않다. 기분 좋게 주지만,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아끼는 제자나 동료에게 책 몇 권을 빌려준 적 있다.
적잖은 확률로 온전하게 돌려 받지 못한다. 대체로 표지 날개 부분을 책갈피로 사용한다. 읽던 곳을 끼워 놓는다. 때문에 책이 망가진다. 그나마도 돌려주면 다행이다. 넘어간 책은 한달, 두달 뒤에 사라진다. 책이라는 것이 나와 같이 수 일에 읽는 경우는 없다. 대체로 한 달은 가지고 다닌다. 그러다가 잊어버리거나 잃어버린다. 가슴이 시리다. 상대에게 좋은 영감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빌려주고 안달 복달한다. 더 비싼 무언가를 빌려 줄 때는 아무렇지 않다가. 책을 빌려주면 꼭 그렇게 된다.
책은 나에게 '읽는 물건 이상'의 무언가 같다. 기본적으로 '수집품'이기도 하고 '일기'이기도 하며 '생각'이자, '역사' 같은 것이다. 읽다 흘린 커피 자국, 손때, 메모. 그것은 책과 함께 한 흔적이다. 십 수 년 전 어떤 페이지를 읽을 때 마시던 '차'의 흔적, 어린 아이가 그린 낙서의 흔적, 아기의 분유 흔적, 항상 들고 다니던 책가방 속의 먼지 흔적들이다. 역시 그것에 대한 가치는 상대적이다. 이제 함부로 책은 빌려주지 않는다. 선물도 가급적 하지 않는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 '월터 아이작슨'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책을 선물한 적 있다. 7만원 정도 하는 책인데 720페이지가 넘는다. 이 책을 두 권을 14만원에 구매하고 한 권을 친구에게 주었다. 이후 친구는 다 읽은 책을 갖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이유로 '중고 거래'를 했다. 의미는 상대적인 것이다. 가만보면 냄비 받침으로 활용하기 딱 좋고, 빌려 준 사람도 신경쓰지 않을 정도의 물건이라고 여긴다. 도서관에는 공짜로 빌려줘도 보지 않는 사람들이 넘치게 있고, 고작 해봐야 2만원도 하지 않는 푼돈이다. 돈 주고 읽으라고 해도 읽기 싫어하는 것이 '책'이다. 자신이 구매하고도 읽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남이 추천하면 더 읽지 못한다. '읽어 보세요.'하고 받는 책이 많다. 대게 그것을 읽지 못한다. 싫기 때문이 아니라, 읽을 책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스스로 구매한 책도 뒷순번으로 밀리는 마당에 남이 추천한 책이 앞으로 당겨질리 만무하다.
'책 좀 추천해 주세요' 하는 경우가 왕왕있다. 웃으며 말한다.
"'오인환 작가'의 '유대인의 하루는 저녁 6시에 시작된다 '읽으세요."
책 추천이라는 것은 가볍게 물어도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다. 선물 받을 사람의 나이, 취미, 성별, 직업, 성격, 스타일, 관심사, 문해력 등 다양하게 생각할 거리가 많다. 그렇다고 그런 걸 다 따져 물을 수도 없다. 힘들다 말하면 "아무거나 제일 재밌었던 책 추천해 주세요"라고 묻는다.
그렇다면 대답한다. 내가 재밌게 읽었던 책은 '정인성'작가의 '반도체 제국의 미래',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해리 클리프'의 '다정한 물리학',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다. 그것을 추천하면 대체로 '그런거 말고는 없나요'라고 답변이 온다. 고로 그냥 내 책을 추천하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조던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이라는 책에서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너무 종교적이고 비슷한 이야기가 많다는 점 때문이었다. 다만 이 책을 인생책으로 꼽는 이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금도 이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 그것이 적합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고, 그것이 적합한 시기와 그렇지 않은 시기가 있다. 그것을 정확하게 맞추는 일은 스스로에게도, 다른 누군가에게도 쉽지 않다. 이런 이유로 다른 이들 처럼 책에 점수를 매기거나, 좋다 혹은 나쁘다의 평을 하지 않으려 한다.
책 리뷰를 꾸준하게 올리고 다독하다보니 다수의 사람들은 내가 '속독'하거나 '읽지 않고 리뷰'를 쓴다고 여기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속독은 하지 않는다. 오롯하게 보통사람처럼 글을 읽는다. 머리 말리면서.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자기 직전에. 속독하는 책도 있지만, 대체로 8시간은 걸리는 것 같다. 여러 권을 상황과 시기마다 다르게 읽는 병렬독서다. 읽지 않고 리뷰하는 경우는 단연코 없다. 이유는 단순하다. 다른 사람에게 책 홍보를 해주기 위해 읽는 것이 아니다. 2만원 짜리 책 홍보해주려고 8시간을 읽고 1시간을 쓰는 멍청이는 아니다. 이것은 개인 소장용이다. 소장용 리뷰를 굳이 거짓으로 하진 않는다. 그간 쌓아 놓은 데이터베이스에 신뢰를 잃고 싶지 않다.
가끔 쪽지나 댓글로 내 독서 습관을 지적하는 경우가 있다. '다독'이 나쁘다는 것이다. '한 권' 이라도 제대로 읽어야 한다고 지적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나는 앞으로도 그냥 다독할 예정이다. 이유는 이렇다. 나는 밥을 '맛'으로 먹는 사람이다. '건강'하기 위해 먹고 있지 않다. 세상에는 맛있는 음식이 너무 많다. '건강'을 위해 '의무적'으로 건강식을 찾는 것이 아니다. 그저 맛있는 것을 찾아 먹는다. 음식을 즐긴다는 것은 맛을 음미하고 다양한 것을 경험하는 것이다. '똑똑해지고 싶거나, 혹은 깨달음 혹은 지식을 쌓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다.
그냥 재밌어서 읽을 뿐이다. 다만 그뿐이다.
고로 내 독서 스타일을 지적하는 것은 사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