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얇은 분량, 높은 수위, 강한 폭력_뱀에게 피

by 오인환

잠이 오지 않는 밤. 가볍게 읽을 책을 골랐다. 밤 11시. 결말을 보고 잘 수 있는 책. 기준은 두께. 서점에서 100 페이지 겨우 넘는 몇 권을 집었다. 내용은 상관 없다. 속도감. 몰입감이 있으면 좋겠다. 두 권은 '이언 매큐언'의 '바퀴벌레', '가네하라 히토미'의 '뱀에게 피어싱'이다. 바퀴벌레는 얇지만 묵직했다. 두 번 째 책.

'뱀에게 피어싱'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 제목. 사전 정보 없이 책을 들었다. 그래서 그랬나. 꽤 충격적이다. 짧아 후루룩 읽히긴 한다. 소재는 문신과 피어싱. 기본적으로 수위는 아주 높다. 살인, 자해는 물론이고 성적인 내용도 아주 노골적이다. 자극적이다.

소설은 난데없이 '스필릿텅'으로 시작한다. 피어싱의 일종으로 혀 끝이 뱀처럼 갈라지는 모양이다. '스필릿텅'에 매력을 가진 '루이'라는 여성. 그녀를 '스필릿텅'의 매력으로 안내한 '아마'라는 남자. 문신전문가 '시바'의 이야기다. 묘사는 사디스트와 마조히스트가 다수다. 준비없이 마주한 자극성에 흠짓 놀랐다. 대략 30 페이지 정도 넘어서고 이해했다. '이런 류의 책이구나'

예전 '365일'이라는 책을 읽었을 때도 그랬다. 책을 읽다가 펴놓을 수 없는 상황이 주가 되는 상황. 꽤 보수적인 성격이라 자신있게 내용을 알았다면 서점에서 자신있게 집어오진 못했을 것 같다. 어쨌건 어쨌건 영화를 보더라도 자극적인 영화를 못 보는 편은 아니다. 19금 딱지를 붙이고 나오는 것들이 주는 여과없는 매력이 분명있다. 불편하다는 시선도 많지만 그렇진 않았다.

자극적인 소재와 적나라한 표현이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줄수도 있겠지만 이 소설은 아쿠타가와 상 심사과정 중 심사위원 열 중 아홉이 추천하여 가장 높은 점수를 받기도 했다.

중학교 때인가. 초등학교 때인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일본 영화를 본 적 있다. 예전에는 '토요일'이 휴일이 아니었다. 토요일은 일찍 끝나는 날일 뿐이었다. 이런 날, 선생님의 재량으로 '비디오' 빌려보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때 반 친구 중 재밌다고 빌려온 비디오가 하나 있었다. 그 비디오를 전 학년이 교실에서 봤다. 그 때 받은 충격은 엄청났다. 당시 봤던 비디오는 '배틀로얄'이라는 영화다.

우리나라는 '심의'가 높은 편이었다. 수위가 높다 싶으면 19금 딱지 붙일 기회도 없이 방영되지 못했다. 성인마저 때로는 보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다. 다만 '배틀로얄'은 나의 '상식선'을 가볍게 넘었다. '일본 감성'이라는 기준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는 주인공으로 '연약한 여성'이 설정된다. 건장한 남성과 까불거리는 인물이 통쾌하게 죽는다. 다들 죽임을 당하더라도 '주인공 여성'은 끝까지 살아 남는다. 그것은 일종의 '공식'이다.

정확치 않지만 배틀로얄은 그러지 않았다. 약육강식만 존재했다. 약하고 불필요하면 가차없이 죽인다. 배우의 이미지나 관객의 기대 같은 것은 철저하게 배제됐다. 목이 잘려 나가거나 망치로 두들겨 맞는 장면도 여지없다.

'무서운 영화추천'이라는 검색을 통해 '일본 영화'를 찾은 적 있다. 댓글은 보지 않았다. 댓글을 보면 기대감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당시 우연하게 본 댓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괜히 봤다. 일본애들은 도대체 왜 이런 걸 만드는 걸까.'

왠만한 공포 영화는 무섭지 않은 나의 기대감은 극도로 높아졌다. 방을 어둡게 했고 컴퓨터 스피커를 잔뜩 올렸다. 아이스크림을 앞에 끼고 재생버튼을 눌렀다.

영화가 시작했다. 10분 정도가 지났을까. 소리를 조금씩 줄였다. 얼마 뒤에는 다시 소리를 줄였다. 결국 이어폰을 착용했다. 형용할 수준이 아니다. 잔혹함이 지나치다시피했다. 영화는 영화와 성인물의 중간쯤 됐다. 입맛이 떨어졌다. 꺼냈던 아이스크림을 도로 냉동실로 집어 넣었다. 헛구역질 나서 더이상 볼 수 없었다. 비위가 나름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볼 수 가 없었다. '고어물'이라는 단어를 그때 처음 접했다. 공포와 상관없이 비위가 강해야 했다.

때로 그것이 솔직하다 여길 때도 있다. 대외적으로 쉬쉬하지만 다들 알면서 말하지 않는 것이 있다.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감, 인간관계, 구조적인 배경으로 '혼자'만 알고 있는 사적 폭력성 같은 것이 있다. 그것을 외부에서 확인했을 때 얻는 동질감도 있을 것이다. '루이'와 '아마'는 이름도 나이도 모르고 동거를 한다. 대기업에서 주관하는 파티에 참석하는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하고 있던 피어싱을 모두 빼고 '단아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을 '기업'에서 선호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입속에는 '스필릿텅'을 준비하는 '피어싱'이 숨겨져 있다. 입을 벌리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그것을 꾹 닫아 보이지 않는다. 남들의 눈에 평범해 보이는 것을 선택하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무엇을 숨겨둔다. 사회가 강제로 '마스크'를 쓰게 했을 때, 다수는 불평을 했지만 어느 순간 벗으라고 해도 벗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마스크 뒤로 숨길 수 있는 표정이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내면을 감추기 위해 얼굴 근육을 움직이는 일에 피로감을 느꼈던 이들은 조금더 편하기 위해 마스크를 벗지 않는다. 소설은 굉장히 얇지만 다양한 부분에서 생각해 볼 거리가 많았다. 본 소설은 '스네이크 앤 이어링'이라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다는데 소설과 내용이 같다고 알고 있다. 소설이 영화로도 나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수요가 충분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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