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완벽주의자가 게을러지는 과정_불안한 완벽주의자

by 오인환

중학교 시절, 미술 선생님은 내 그림을 반 전체에 보여주셨다.

"아주 감각있는 그림이야. 소질이 다분해. 이쪽으로 나가도 성공하겠어."

그림은 4B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옅게 물을 섞은 수채화였다. 붓으로 노란 물감과 물을 섞어 한번 정도 칠한 뒤였다. 대상은 참외, 바나나 따위다. 그림이 명확히 기억나는 이유는 미술 선생님께 받은 칭찬 때문이 아니다. 그 그림이 C+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몇 분 뒤, 엄청난 칭찬이 이어졌다. 미술 선생님은 내 그림이 왜 감각있는 그림인지 설명했다. 사적인 칭찬도 함께 이어졌다. 이후 그림은 도로 돌아왔다. 민망하기 그지없는 칭찬을 듣고 그림을 바라봤다. 방금 전까지 생각없이 칠한 물감 따위에 그렇게 심오한 의미가 있었다는 사실을 당사자인 나도 몰랐다. 미술 선생님의 칭찬과 기대에 부응하고자 했다. 다만 더 진행을 했다가는 선생님이 감동을 무너뜨릴 것만 같았다. 나는 나머지 시간을 그리는 척만하고 그 미완성 된 작품을 제출했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던가.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칭찬은 되려 성장을 멈추는 구실이 되기도 한다. 보통 '완벽주의자'는 굉장히 부지런할 것 같다고 착각한다. 다만 게으른 쪽이 더 완벽주의자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완벽하지 않기에 시작을 두려워 하는 것이다. 완벽주의는 보통 '시작'을 지연하거나, '선택장애'를 낳는다.

도착까지 모든 신호가 '파란불'이 되면 출발하겠다는 마음. 혹은 선택을 하지 않으면 '오답을 고르지 않는다'는 마음. 그것이 완벽주의자에게 있다. 고로 실패할 행동이라면 아예 하지 않는 오류를 낳는다. 다시말해 틀리는 것이 두려워, 문제를 풀지 않는 것과 같다.

가장 좋아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일단 시작하고 나중에 완성하라' 대체적으로 불완전함을 견디지 못하면 시작을 하지 못한다. 실수투성이 초보의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마음이 발전을 더디게 한다. 세상에 완벽이란 없다. 따지고 보면 그렇다. 자연상에는 100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순도 99%라는 말을 자주 접한다. 산업적으로 이용되는 가스의 순도에는 five-nine 혹은 nine-nine이라는 말이 있다. 99.999% 혹은 99.9999999% 처럼 극도로 정제된 순도 기술로도 100%을 달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도체에 사용되는 가수의 순도는 9가 무려 11개나 들어가는 eleven-nine이 사용된다. 세상에 없는 것을 달성하려고 하니 불필요한 에너지가 소모된다. 순도 1%에서 2%로 올리는 것은 쉽다. 다만 99%에서 100%로 올리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어쩌면 1에서 99까지 올리는 편이 더 낫다고 할수도 있다. 그것이 100이 됐다고 차원 다른 결과물이 되는 것도 아니다. 아주 극히 적은 경우가 아니라면 대개 99면 충분하다. 90도 충분하다. 때에 따라서 50도 충분한 경우가 있다. 우도할계(牛刀割鷄)라는 말이 있다. 닭을 잡는 데에 소 잡는 칼을 쓸 필요없다는 뜻이다. 완벽을 추구하는 것은 닭을 잡기 위해 소잡는 칼을 사용하는 일이다.

'제논의 역설'이라는 말이 있다. 수학에서 '극한값'을 설명하기 위해 종종 사용되는 예시다. 내용은 이렇다. 아킬레스와 거북이가 달리기 경기를 한다고 해보자. 거북이는 아킬레스보다 50m 앞에서 출발한다고 해보자. 이 경기는 과연 누가 이기게 될까. '제논의 역설'에서 아킬레스는 거북이를 영원히 추월할 수 없다.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추월하기 위해서는 일단 거북이와 간격을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 절반을 따라 잡았다고 해도 25m는 아직 남아 있다. 다시 그 25m를 추월하기 위해서는 다시 25m의 절반을 따라잡아야 한다. 하지만 또 12.5m가 남는다. 이후 다시 그 절반인 6.25m를 추월하면 3.125m가 남는다. 이렇게 공간을 절반씩 나누는 행위를 영원히 반복하면 아킬레스는 영원히 거북이를 이길 수 없다. 이는 '무한'과 '극한'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다. 흔히 1에서 2까지 수와 1에서 100만까지의 수 중 어떤 곳에 수가 더 많은지 묻는다면 후자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알 수 없다. 숫자를 무한으로 쪼개면 어느쪽에 숫자가 많은지 알 수 없다. 결국 '완벽'이란 이처럼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는 아킬레스의 거북이 같은 존재다.

완벽주의에는 두 가지가 있다. 적응적 완벽주의와 부적응적 완벽주의다. 적응적 완벽주의는 성취와 목표의 과정을 즐긴다. 부적응적 완벽주의는 결과와 기준에 엄격한 편이다. 고로 실패에 대해 두려워 하고 자기비판에 취약하다. 고로 적응적 완벽주의는 높은 생산성을 띄고 그것에 대한 보상고 충족감을 얻으며 성장한다. 이는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반면 부적응적 완벽주의는 결과에 치중한다. 자신만의 높은 기준에 의해 신경쇠약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사소한 일에 집착하고 강박적이고 회의적인 사고방식과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 완벽주의자들에게 자신은 언제나 미완전한 존재다. 자기 존중의 문제를 맞는다. 자신에 대한 불만은 자기 비하로 이어진다. 인간은 애초에 불완전한 존재다. 그것을 인지하지 않으면 실망과 스트레스는 끊임없이 따라다닌다. 스트레스는 보통 근육을 경직시키고 혈액순환에 장애를 가져온다. 식물과 동물은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독을 만들고 상대를 죽이거나, 자신이 맛없는 고기 임을 증명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그 독소는 스스로에게 쌓여 결국 자신을 죽게 만든다. 현재 먹이사슬 최상위에 있는 인간은 포식자에게 노출되는 일은 없지만, 극도의 공포나 불안감은 포식자를 만났을 때와 같이, 우리 신체 내부에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스스로 독소를 만들어 낸다. 결국 결점과 한계를 이해하고 용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완벽주의는 겉으로 보기에 꽤 철저하고 완벽한 노력형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게을러지고 선택을 망설이는 방식으로 변화하기도 한다. 고로 어느정도 내려놓고 미완성의 자세를 인정하는 것이 삶을 대하는 편하고 쉬운 자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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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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