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특별한 어른이 되야 하는 이유_제주 북앤북스

by 오인환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면 안된다. 가난한 사람도 도우면 안된다. 도움은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불쌍하다'는 감정은 착각이다. '빈곤포르노'라는 말이 있다. 동정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가난한 사람들의 상황을 이용하는 일이다. 흔히 개발도상국을 보며 연민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여기에 연민을 느껴서는 안된다. 대한민국 국민소득의 7분의 1도 되지 않는 과테말라는 초대형 싱크홀이 자주 발생하고 지진 피해도 잦다. 화산활동이 활발하고 정글이 아주 많은 곳이다. 이곳은 범죄조직이 매우 많아서 살인율 또한 높은 편이다. 노동자의 50%는 농업에 종사하는 곳으로 중남미에서도 국가 경쟁력이 최하위 수준이다. 국민은 아주 가난하여 교육수준도 낮다. 아프리카 가봉의 절반 정도의 소득을 갖고 있다. 과테말라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39위로 54위 일본, 59위의 한국보다 훨씬 행복한 나라다. 한국은 10만명당 한해 26명이 자살한다. 반면 과테말라의 자살률은 10만명당 6명만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대한민국의 모든 사망자를 스무 명이라고 하면 그중 한 명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당최 대한민국이 과테말라를 불쌍하다고 말하기 힘들다. '불쌍하다'는 기준과 '가난'하다는 기준은 대체로 자신이다. 아주 주관적인 개념이다. 이런 개념이라면 빌게이츠나 워렌버핏이 보기에 인류 80억 5500만명은 모두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들이다. 불쌍하다는 감정. 그 얼마나 오만하고 편협한 감정일까. 넓게 보면 이는 다른 이들보다 자신들이 우월하다고 느끼는 '선민의식'을 닮았다. 상대보다 낫다는 선민사상은 그 의도는 좋지만 역사에서 결과가 좋지 못하다. 대체적으로 '침략주의'를 만들었고, '제국주의'를 만들었다. 상대를 근대화 시켜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주겠다는 자의식 과잉은 상대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방적인 도움을 주고 싶어 견딜 수 없는 정신상태를 보인다.



동물원에 뛰놀고 있는 어린 동물을 잡아서 울타리에 강제 보호하거나 가난한 국가를 계몽시켜주기 위해 개항하여 강제로 근대화를 시키거나, 무지한 백성과 국민의 안전을 위해 독재를 선택하는 '엘리트주의'도 마찬가지다. 일방통행적 의기심이다. 세상에 불쌍한 사람은 없다. 가난한 사람도 없다. 그런 상대적인 우열을 나눠 강제 '선행'을 베푸는 일은 극단적으로 말해 '미친 짓'이다.


집에서 1분 거리에 '제주 북앤북스' 서점이 있다. 아이에게 가르침을 주는 대신, 책을 읽는 습관을 들여주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다. 나에게 묻지말고 스스로 찾으라는 가르침이 가장 중요하다.


전 세계 600억 마리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닭'은 결국 인간에 의해 가장 번식한 조류가 됐다. 지구상에 있는 조류 중 70%가 닭이다. 인간은 결국 종의 번식을 도왔다. 고로 닭은 인간에게 감사해야 할까. 그렇지 않다. 명분과 이유는 언제나 만들기에 달라진다. 도움은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에게 가면 안된다. 도움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가야 한다. 대체로 자녀를 키우는 방식도 비슷하다.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았을 때는 도와 주어선 안된다. 대게 옷에 흘리고 먹는 아이를 보면 부모는 물티슈를 꺼내 아이의 입과 옷을 닦아 버린다. 추운 겨울 얇은 옷을 입은 아이에게 억지로 외투를 걸친다. 너무 더운 여름 긴 옷을 입겠다는 아이에게 강제로 반팔을 입힌다. 이것은 아이를 위하는 일 같아 보이지만 철저하게 자기 의지를 관철하는 일이다. 기어이 자신이 그 목적을 이루는 일이다. 아이가 더우면 옷을 벗고 추우면 옷을 입게 두는 것이 맞다. 물어보면 알려주고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맞다. 다만 군대를 동원하여 강제로 계몽시키겠다는 식민주의처럼 아이에게 강제 선행을 베풀어서는 안된다.


기본적으로 '선민의식'은 종교적인 의미로 쓰인다. 특정 민족이 신에게 선택 받았다는 식으로 그들만의 우월함을 명분화한다. 실제로 일부 선교사들은 공격적인 포교 활동으로 일부 사회의 구조를 변화하고자 한다. 이들의 의도는 선하다. 그러나 이들은 해당국가의 '개종금지법'까지 어겨가며 선교활도을 한다. 이들이 보기에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불평등한 차별과 가난은 안쓰러울 것이다. 이런 류의 선행은 대체로 '갈등'을 유발한다.



특별한 어른이 되는 것은 몹시 중요하다. 나이가 들면서 스스로 느껴지는 변화가 있다. 묻지 않아도 알려주고 싶은 마음. 아마 나보다 어른들이 그랬고. 나보다 어린 이들이 그럴 것이다. 불 보듯 뻔한 일을 모르쇠 살아가는 이들을 보면 입이 간질 거려 견딜 수 없다.


"그렇게 하면 안돼."


"이렇게 해야 돼."


"나 때는 말이야."


"내가 너 나이 때에는."


"니가 어려서 잘 모르나 본데."


"기분 나쁘게 듣지는 말고."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


"이런 말까지는 안하려고 했는데."


입이 간질거린다. 깨닫지 못하는 이를 깨닫게 하기 위해 간질거리는 입을 참지 못하고 튼다. 그렇다고 상대가 달라지진 않는다. 한 번, 두 번, 몇 번을 반복하면 이후부터는 상대를 위한다는 '선한 의도'는 증발한다.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무시하네?' 자존심의 싸움이 된다. 그때부터는 상대를 굴복시켜야 한다는 강한 의식이 들어간다. 몇차례 좋은 말로 해봐도 변하지 않는 상대를 보며 기어코 그 고집을 꺾어 버리겠다는 악다구니가 된다.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지금보다 더 어른이 되면, 어른이 흔한 세상이 올 것이다. 위로 넓은 역피라미드 인구 구조에서 나는 가장 많은 인구 계층이 될테다. 그때가 되면 몇 없는 '젊은이'를 붙잡고 계몽시키고자 하는 입이 나풀거리는 '어른들' 투성이 일 것이다. 내가 하지 않아도 아이 하나당 어른 열은 붙어서 나불거리는 세상이 올 것이다. 그때 합세하여 나도 그 나불거림에 보태어야 하는 것이 옳은가. 수요 공급에서 희소한 것이 가치있다. 이미 흔한 쪽에서 희소한 사람이 되자. 입을 닫고 있는 편이 옳을 것이다.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는 말이 있다. 대체적으로 자신의 입도 통제하지 못하고, 심지어 알고 있는 지식도, 읽어 둔 책도 없는 성공치 못한 어른이 나불거리는 실패한 정답따위는 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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