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전쟁, 프랑스 종교전쟁, 30년 전쟁 등 역사적으로 전쟁과 분쟁은 종교를 표면상의 이유로 갖는다. 세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흐름을 바꿔 놓은 사건들도 보면 대체로 종교적인 이유다.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개종 선언을 하면서 인류 역사는 아주 빠른 속도로 변화했다. 세계사에서 종교는 이처럼 엄청난 영향력을 가졌지만 중국, 일본, 한국에서는 '종교전쟁' 혹은 '분쟁'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지리를 보면 동양은 아래로 태평양과 인도양을 갖고 있다. 서양은 아래로 아프리카 대륙을 갖고 있다. 태양광이 지구를 가장 가깝게 내리쬐는 부근은 적도다. 적도 부근은 복사열을 가장 많이 받는다. 동양 대기는 고로 습하고 수증기를 많이 함유한다. 서양의 대기는 아프리카로 건조 기후에 영향을 받는다. 아프리카 북부는 강수량 보다 증발량이 많으며 일교차가 심하다.
1그램당 밀의 열량은 3.5~4.0칼로리, 쌀의 열량은 3.5~3.7칼로리다. 일반적으로 열량의 차이가 크지 않다. 다만 1헥타르 당 수확량을 비교하면 다르다. 1헥타르당 밀은 820kg가 생산되는 반면 쌀은 1헥타르 당 1440kg가 생산된다. 농업 방식의 차이도 있다. 쌀과 밀의 가장 큰 차이는 '이어짓기'다. 쌀의 경우 이어짓기가 가능하다. 반면 밀의 경우 새로운 경작을 위해 농지를 갈아 앞어야 한다. 종자대비 수확량도 다르다. 종자 1kg을 뿌리면 밀은 10배를 수확할 수 있다. 같은 무게의 종자를 뿌렸을 때 쌀은 120배를 수확할 수 있다. 결국 같은 면적에서 쌀은 압도적으로 생산성이 높다. 다만 문제가 있다. 강수량이다. 연간 강수량이 1000mm가 넘으면 벼농사가 가능하다. 다만 그 이하일 경우 벼농사가 어렵다. 고로 이하의 지역에서는 밀농사가 유리하다.
여기서 차이가 발생한다. 벼농사는 물이 어느 정도 고여 있는 논에서 자란다. 고로 관개 물대기는 벼농사의 필수요소다. 적절한 물이 꾸준하게 공급되기 위해서는 땅에 물길을 만드는 작업을 해야한다. 여기에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만들어진 물길 주변에는 사람이 살아간다. 벼농사는 앞서 말한 것 처럼 이어짓기가 가능하다. 한해 이모작, 삼모작이 가능하여 경우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수확량을 반복적으로 얻는다. 이 지역에서는 당연히 운반을 위해 '인간'과 '소'가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집단을 형성하면 적잖은 수확량을 보장 받는다. 최초의 쌀농사는 '중국'이 아니라 '한반도'다. 한반도에서 쌀농사가 이루어진 것은 대략 2만년 전 정도 된다. 집단에서 이탈된 이들은 대체로 굶어 죽거나 영양상태가 좋지 못했기에 자연선택적으로 걸러진다. 집단생활에 최적화 된 이들이 자연선택적으로 후손에 유전자를 전이 했음으로 결국 동양은 '관계형성'이 대체로 고대부터 형성됐다. 친족관계의 여성을 부르는 말이 서양에서는 'aunt' 하나인 반면 한국에서는 고모, 이모, 숙모 등으로 분류된다. 이들을 이어주는 가장 큰 매개는 '피'다. 고로 낳고 길러준 이가 아니더라도 '어머님', '아버님', '할아버지'라는 호칭이 보편화되고 같은 핏줄이 아닌 이들에게 '누나', '오빠' 등의 호칭이 일반화된다.
서양은 다르다. 밀농사의 경우 자연 강우에만 의존하면 된다. 혼자서도 관리가 가능하다. 수확량이 폭발적이지 않기 때문에 타인의 노동력이 필요치 않다. 누군가에게 '인간'에 비해 '소'는 크게 중요치 않다. 소를 신성하게 여기는 '쌀농사' 지역에 비해 '밀농사'지역에서 '소'는 노동력이 아니다. 다만 쌀에 비해 영양가가 낮은 이유로 이들은 소를 통해 우유와 고기를 얻었다. 건조한 기후탓에 밀은 대체로 가루화 하여 장기간 보관할 수 있었다. 밀가루는 우유와 적당히 섞어 불에 구우면 먼 거리로 이동이 가능하여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었다. 먼거리를 이동하여 전쟁을 치루기 위해서 '동양'의 경우, 농지로부터 '보급'이 필수적이다. 서양의 경우 언제든지 먼 거리를 이동하여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전쟁 수행이 용이했다. 당태종이 고구려 침공을 위해 동원했다는 200만의 군사중 100만은 보급병으로 추산된다. 다만 유럽인은 보급없이 바다에서 수 개월을 항해하면서도 생명유지가 가능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단체 생활을 하던 동양은 고대부터 빠르게 중앙집권 국가체제를 형성했다. 서양은 다르다. 서양은 동양과 유사한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를 수립해 본적이 없다. 타인을 결집하기 위해서 연결성 없는 다수를 하나로 연결할 매개체가 있어야 한다. 대체로 동양은 이것이 필요없었다. '먹고 사는 문제'가 결집을 이미 해결했기 때문이다. 서양은 다르다. 서양인들을 결집하기 위해, 공통적인 믿음이 필요했다. 공통적인 믿음은 '하나'라는 결집을 가능하게 한다. 그것이 '콘스탄티누스의 개종'이다.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어떤 의미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엄청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애초에 로마는 외래신을 받아들이기도하고 독자적인 신을 만들기도 하는 다신교 국가였다. 콘스탄티누스는 이 거대한 제국의 결집 부족을 봤다. 그는 시간이 흐르며 '동부'가 경제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로마가 워낙 거대한 제국이다보니 점차 제국의 동부과 서부지역의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차이가 벌어진다. 결집이 잘된 동부지역은 도시화가 쉽게 이루어졌으며 무역이 활발하게 진행됐다. 반면 서부지역은 찾은 분쟁과 갈등, 전쟁이 있었다.
그 시기 콘스탄티누스는 동방의 작은 유대인들의 종교를 유심하게 지켜봤다. 기독교다. 그가 기독교로 개종하고 로마가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유대인들만의 작은 종교는 동과 중앙, 서로 빠르게 확산됐다. 애초 유대인들의 토착종교였던 '유대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분화된다. 시기를 서기 1년으로 본다. 유대교가 시작된 중동에서 서기 600년 쯤 '무함마드'가 나타나다. 이것이 이슬람교의 시작이다. 기본적으로 이들은 같은 성경을 기본으로 같은 신을 믿는다. 연필을 두고 일본에서는 '엔삐쯔'라고 부르고 미국에서는 '펜슬'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명명의 차이이지, 하나님과 알라는 같다.
이슬람과 기독교는 같은 뿌리를 갖고 있지만 굉장히 다른 차이가 있다. 이슬람에서 '신'은 하나다. 유일신이다. 이슬람을 창시했다는 '무함마드' 자체도 인간이다. 그는 예언자일 뿐이지, 인은 아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다르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신성'과 '인성'을 둘 다 가졌다고 본다. 이는 이슬람교에서 극도로 경계하는 '다신교 논리'다. 성당과 교회를 가면 그 앞에는 '성모마리아 상' 혹은 '예수 상'이 있다. 이슬람 사원에는 '무하메드 상'이 없다. 이슬람에서 보기에 오롯이 유일신만 숭상하겠다는 믿음을 유럽인들은 저버린 것이다. 이 갈등은 대체로 뿌리가 깊다. 대체적으로 우리의 시선은 '서양'에 맞춰져 있다. 이슬람인들에 대한 '이슬라모포비아'가 우리에게도 만연하다. 테러와 차별, 전쟁 등 좋지 못한 공포심이 있다. 이는 상대 종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생긴다.
프랑스는 대표적인 카톨릭 국가다. 대체적으로 동쪽으로 갈수록 결집에 유리한 유전인자가 남아 있다. 우리가 대체로 공감하지 못하는 것 중 하나는 '반유대주의'도 있다. 우리의 경우 '유대인'에 대한 이미지가 나쁘지 않지만 서양으로 가면 반유대주의는 적잖게 들리는 차별용어다. 이들은 대체로 잘 결집하는 성향이 있다. 현대 민주주의는 분산된 표보다 결집된 표에 유리하다. 민주주의는 고로 프랑스를 이슬람화한다는 설정의 소설이다. 프랑스에서는 꽤 사람들이 공감하는 주제다. 다만 종교가 일상생활과 크게 연결되지 않은 우리에게 '종교 갈등'라는 이야기가 조금 이색적으로 보여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