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냥 상대하지 마라. 디폴트값이 부정적인 사람의 말은 맞장구 치지도 말며 상대하지 마라. 공기 중에 부유하는 입자가 호흡기로 들어와 옮겨대는 에어로졸보다 치명적인 것이 감정이다. 그것은 전염성을 갖고 있으며, 뇌파가 가지고 있는 떨림은 인지적 감정을 전이한다. 자신의 현실이 재앙이라고 여기는 이들은 스스로 만든 논리의 외벽이 단단하다. 이 외벽은 밖으로는 깨지지 않고 안으로만 깨진다. 무슨 일이던 불평불만을 늘어 놓고 자기학대적이며 남을 비방한다. 이들의 불행은 불행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자극성 강한 그것을 입밖으로 털어냄으로써 '도파민'의 쾌락을 얻고자 할 뿐이다. 그들의 쾌락에 희생량이 되지 마라. 그저 자리를 가벼운 마음으로 일어서라.
식용유 한 방울을 정화하기 위해서 맑은 물은 100리터가 필요하다. 상충되는 무언가를 정화시키기 위해 들어가는 노력은1만 배다. 그 노력과 시간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며 무차별적으로 불평을 쏟아내는 이들은 그렇게 살도록 두는 것이 해결책이다.
무책임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신이 아니다. 오염된 것을 모두 정화시킬 수 없다. '고민상담'이라는 이름으로 융단폭격하는 이들의 공통점은 이렇다. 대안을 제시해도 부정할 것이고 호응하면 부정적 동의를 구할 것이다. 이미 정해놓은 답을 두고 상대의 공감만 바랄 뿐이다. 그들이 원하는 공감이란 함께 부정적인 부분으로 옮아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나쁜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나에게 옮겨오면 안되는 것일 뿐이다. 그것은 바이러스와 같다.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나쁜가. 그렇지 않다. 그러나 함께 해준다는 명목으로 나눠 가져갈 필요도 없다. 그 고통을 나눠 가져가면 묻어진 바이러스는 나를 통해 다른 이들을 전이한다. 고통은 이해하지만 그것을 나눌 수는 없다. 감염된 이들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치료보다'격리'가 우선이다.
부정으로 무장한 이들의 논리는 완벽하다. 깰 수 없다. 장군하면 멍군하고 부정적인 부분을 답할 것이다. 그것을 깨려다는 되려 '오만한 인간'이라는 누명을 쓰게 된다. 어느 날 그 뒷담화의 대상이 될 소지가 있다. 상대가 스스로 그것을 깨쳤다 해도 감사함을 기대하긴 어렵다.
자신에 대한 비하 정도가 심한 사람도 상대하지 않는게 좋다. 자존감이 약한 이들은 부정적이다. 세상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가진 이들도 상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타인을 평가 부정적이게 평가하는 이들도 상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미래와 과거에 부정적인 사람도 상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현재를 살지 못하고 과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도 상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현재를 망각하는 이들도 상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것은 이기심이 아니다.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은 '본능'이다. 애초에 부정적인 기운을 옮겨대는 것이 이기심이다. 이기심에는 이기심으로 대하라. 모든 것을 포용하는 것은 신의 몫이지 인간의 몫이 아니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상대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취급하다가 기분이 풀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해지는 이들을 조심하라. 감정 기복이 심한 이들을 상대하면 대체로 에너지 소비가 심하다. 스스로의 세계에 갇혀 고마움을 느끼지도 않는다. 인간은 위기에 쳐하면 시선이 극도로 좁아진다. 그것은 잘못은 아니지만 잘못을 만들기도 한다. 물에 빠진 사람을 도울 때는 그 사람이 저항할 힘이 없어진 뒤에나 돕는 것이다. 숨 한모금 쉬려고 발버둥 치는 이를 구하려 든다면, 간절한 한모금을 위해 구하려는 자의 대가리를 물속으로 쳐박는게 생존 본능이다. 그렇게 상대를 위해 대가리가 물속으로 쳐박히면 상대는 겨우 한숨 정도만 쉴 것이다. 구하려는 자와 물에 빠진 자를 둘 다 죽이는 법이다. 도움은 어설플 때 돕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비로소 완전히 도움을 필요한 결정적인 순간에만 주는 것이다.
남을 욕하는 자리에서는 침묵하라. 모든 것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보고 좋은 점만 내뱉어라. 사람에게는 좋은 면과 나쁜 면을 보고 좋은 면을 내뱉어라.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의 뇌는 긍정과 부정을 구분하지 못한다.
"지금 당장 '코끼리'를 생각하지마라"
그러면 사람들은 코끼리를 떠올린다. 입력된 정보값은 망상활성계를 통해 의식과 무의식의 어느 부분을 떠다니다가 비슷한 상황에 반사적으로 떠오른다. 그것은 반복되고 반복은 학습된다. 뇌는 거짓과 진실을 구별하지 못하며, 긍정과 부정을 구별하지 못한다.
영화 올드보이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모래알이든 바윗덩아리든 물에 앉기는 마찬가지다. 뇌는 큰 것과 작은 것을 구별하지 못한다. 아주 사소한 그것이라도 뇌를 정화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단 한번 혹은 몇번 정도의 조언과 따뜻한 공감은 누구에게나 줄 수 있다. 그러나 매번 매순간 그것을 반복하는 사람에게 그것은 습관이며 생각하는, 살아가는 스타일이다. 그것은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다. 원래 칭찬하는 것보다 뒷담화하는 것이 재밌다. 긍정적으로 보는 것보다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맞을 확률이 높다. 미래를 안도하기보다 걱정하는 편이 훨씬 미래를 준비한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고 과거를 후회하는 일이 교훈을 얻는다는 착각에 빠진다. 스스로 그것을 재밌다고 여기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도파민을 분비하여 자극하고 쾌락을 느끼게 한다. 중독증세를 보인다. 몇번을 조언하고 공감해주고도 상대가 바뀌지 않는다면, 부정적인 기운을 나눠 가져가지 말자.
누구나 불안한 미래와 슬픈 과거를 가지고 있다.
따끔하게 말해주고 싶을 때가 있다.
"징징 거리지마라. 내 얘기를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