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티칭(teaching)말고 코칭(coachin

by 오인환

책은 2차원이다. '선'이다. 말도 2차원이다. '선'이다. 좌에서 우로 정보가 나열된다. 줄줄이 늘어나는 정보들을 보면 인간은 대체로 피곤함을 느낀다. 인간 대부분에게 '문해력'이 없는 이유다. 문해력이란 2차원으로 된 정보를 3차원으로 변환하는 작업이다.

대략 400만년 전 '오스트랄로 피테쿠스'가 두발 보행을 했단다. 최초의 화석인류다. 이후 3,994,000년 동안 인류는 '문자'없이 살았다. 이후 나온 문자라고 해도 고작 '쐐기문자'로 거의 회계를 기록하는데 사용한 것이 전부다.

인간 뇌의 진화과정을 보며 글을 읽는 인간이 '똑똑하다'라고 할 수 없다고 확신이 든다. 그러나 책을 읽는 인간에 대한 현대인들의 인상은 몹시 좋다. 책의 기본이라고 하는 '글'은 아주 불친절한 정보 저장 매체다. 이유는 단순하다. 인간은 6000년을 반올림한 400만년 동안 공간 기억하도록 진화했다. 인간의 기억은 3차원을 저장하도록 진화했지 2차원을 저장하도록 진화하지 않았다. 그런데 글과 말은 2차원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공부법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공부법은 간단하다. 2차원 '선'으로 된 정보를 '3차원'으로 바꿔 이해하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암기해야 할 내용이 있으면 커다란 전지에 외워야 할 정보를 '마인드맵'으로 그렸다. 그것은 아주 효과적이다.

책이나 교과서 목차를 살피면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제목, 대주제, 소주제, 키워드. 그리고 목적

대체로 이렇다. 제목은 전체를 아우른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제목은 크게 이야기한다. 이후로 커다란 대주제가 나눠진다. 대주제 하위로 소주제들이 이어진다. 소주제 이후로 키워드가 나온다. 대체로 사람들은 책을 피면 그것을 좌에서 우로 이해한다. 그것은 잘못됐다.


커다란 전지 가운데 제목을 적어보자. 제목은 4~5개의 대주제 가지를 친다. 4개의 가지에 4~5개의 소주제 가지를 친다. 각 소주제 가지에 하나의 키워드들을 적는다. 그렇게 그림으로 그리고 나서 가장 상위에 '목적'을 쓴다. 왜 그것을 알아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그것을 그리고 나면 어두운 공간이 환하게 밝아진다. 공부 시작 전에 맵 전체가 밝아진다.

'black sheep wall'

이것은 스타크래프트의 치트키 중 하나로 맵의 시야 전체를 밝힌다. 맵 전체를 밝혔다고 반드시 게임에서 이기는 것은 아니지만 어두웠던 화면이 훤하게 비춰지면 아주 수월하게 게임에 임할 수 있다.

어두운 화면에서 한치 앞 정도를 살피며 임하는 것보다 전략적으로 우수하다. 이로써 1차원적인 게임의 화면을 3차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보이지 않던 것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진다.

스타크래프트는 내가 초등학교 6학년 쯤 나왔던 것 같다. 이후 스타크래프트는 국민 스포츠처럼 됐다. 잘 하는 사람과 못 하는 사람이 구분됐다. 게임에 시간을 많이 투자한 이들은 게임을 잘했고 적게 투자한 이들은 실력이 형편 없었다. 그 뒤로 수년이 지났고 언젠가부터 '빌드오더'라는 것이 등장했다.

'일꾼'이 8마리가 되면 '배럭'이라는 것을 짓고, 9마리가 되면 서플라이 디팟을 짓고...

이런 식이다. 이런 빌드오더는 아주 촘촘하게 짜져 있었다. 결국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과 격차가 급격하게 줄었다. 단순한 빌드오더를 배우기만 하면 누구든 중급자 이상의 실력을 가질 수 있었다. 다만 모두가 빌드오더를 적용하고 있어도 역시 실력 차이가 등장했다. 빌드오더를 적용하면 중급자까지는 쉽게 올라 갈 수 있어도 그 이상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적잖은 연습이 필요하다. 이것이 학습과 닮았다. 가르치는 것은 빌드오다다. 그것을 얻었다고 실력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빌드오더 정도를 주는 것이 '가르치는 자'의 역할이다. 모두가 중급자가 되면 다시 분야는 상향 평준화가 된다. 그때는 '빌드오더'는 기본일 뿐이다.


'티칭'의 teach는 고대 게르만어 어족의 영향을 받았다. 이 단어의 최초 어원은 '보여주다', '설득하다', '선언하다'와 같다. 즉, 이는 주는 쪽의 일방적인 행위다. 배우는 쪽에서는 역시 수동적으로 받아 드릴 수 밖에 없다.

'코칭'의 coach는 사륜마차를 가리키는 코치에서 비롯됐다. 목적지까지 사람을 운반하는 일이다. 이것은 주는 쪽과 받는 쪽이 함께 같은 방향으로 움지기며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도록 인도한다는 의미로 바뀌었다.

'쪽집게 선생님'은 이제 존재하지 못한다.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분석한 인공지능의 정보가 더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 층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얼마 전까지는 '지리를 잘 아는 사람'은 꽤 능력자였다. 특히 택시를 운전하는 이들 중 지리에 빠삭한 이들은 더 빠르고 효과적인 경로를 찾아낼 수 있었다. 경로를 빠르게 찾고 지리를 잘 아는 것은 '본질적 능력'이 아니다. 그것은 '네비게이션'의 탄생으로 사라졌다. 기계가 생기면 직업군의 능력은 평준화 된다. 이번에는 '교육쪽'이다.

한창 '가르치는 기술'이 중요하던 시기, '쪽집게 강사'라는 말이 유행했다. 가르치는 기술이 중요하던 시기에 잘 가르치는 선생님을 찾아 학생과 학부모는 따라다녔다. 이제 가르치는 기술은 중요치 않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가르치는 강사들의 강의는 '유튜브'에서 공짜로 찾을 수 있다. 결국 본질은 '가르치는 것'에서 벗어났다. 네비게이션이 나왔다고 택시 기사라는 직업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네비게이션이 나오자, 택시 기사라는 직업의 능력에 평준화가 이뤄졌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교육산업은 저출산으로 인해 큰 위기에 놓여 있다고 한다. 다만 생각해보면 이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저출산으로 인구가 줄어 큰 위기에 놓여지지 않은 산업군은 어디에 있을까. 인구절벽으로 위기에 놓였기 때문에 교육산업의 전망이 어두운 것은 아니다. 교육은 결국 정보 전달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간의 관리다. 가르쳐 주는 것 없어도 아이돌 공연장은 사람이 바글거린다. 결국 교육 또 다르지 않다. 능력의 유무가 아니라 '매력'의 유무가 결국 교육업을 결정할 것이라 생각한다. 학생은 친족이 아닌 어른을 만날 기회가 적지 않다. 꽤 매력있는 스토리텔링이 있는 스승을 스스로 찾아 다닐 것이다. 또한 스스로의 방향을 잘 이끌어줄 '코치'를 찾아 다닐지 모른다. 사실 학습은 스스로 하는 것이다. 누가 가르쳤다고 잘 잘하고 못하는 성격이 아니다. 대체로 배움은 일이고 연습이 99의 싸움이다. 결국 만남을 지속하고 싶은 '매력있는 강사'가 인기 강사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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