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율법학자들의 가르침을 모은 탈무드에는 이런 말이 있다.
"다물 줄 모르는 입은 닫지 않은 집 문과 같다."
열려있는 집 문은 속을 훤히 내비추며 온갖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상태다. 무엇이든 들고 나가길 희망하는 것이고 속을 다 비추니 누구든 들어 왔다 나간다. 그것이 손님이건 도둑이건 말이다.
"미련한 자의 입은 멸의 원인이고, 입술은 영혼의 그물이 된다."
유인원에게 없지만 인간에게 있는 것이 있다. 입술이다. 입술은 빨갛게 얇은 혈관을 내보인다. 연약한 내부 표피가 밖으로 드러나 있다. 유인원에게 발달하지 않은 얇은 표피가 유독 인간에게만 있는 것은 속을 뒤집어 밖으로 까보이려는 인간의 욕망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아이러니하게 입술은 입을 다물게 한다. 입술은 입을 오므리게 하여 침묵하게 한다. 입술은 본능과 진화의 치열한 흔적이다.
"입으로 망하는 이는 많다. 다만 귀로 망하는 이는 없다."
그렇다. 입으로 망하는 이는 많지만, 귀로 망하는 이는 없다. 눈과 귀가 두 개인 이유는 많이 보고 들으라는 의미란다. 상투적이지만 꽤 효과적인 설득법이다. 마찬가지로 눈과 귀는 좌와 우에 하나씩 있다. 균형적이게 듣고 봐야 한다. 입은 하나다. 들어오는 굴은 네 문으로 열려있다. 나가는 문은 하나로 균형 잡혀 있어야 한다. 눈과 귀가 좌와 우에서 들어온 정보를 마음속에서 적절하게 섞었다가 중심 하나의 문으로 나가야 한다. 이때 '영혼의 그물', 입술에 걸러질 것은 걸러져야 한다.
동양에도 비슷한 말들이 있다. 삼인성호(三人成虎).
셋이 모여 없는 호랑이를 만들어 낸다는 '삼인성호'는 사람의 입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보여준다. 사람들이 호랑이를 피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그것이 호랑이라서가 아니다. 호랑이가 두렵기 때문이다. 고로 사람은 '호랑이'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피하는 것이다. 세 사람이 만들어낸 '가상'의 호랑이는 '호랑이'가 아니라 '두려움'이다. 세 사람은 실존하는 호랑이를 만들어 낼 수는 없지만 그 두려움을 만들어 낼 수 있음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실제 호랑이의 등장과 같은 위협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어느 책에서 봤다. 독서의 중요성 중 최고는 입을 다물게 한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입은 다물어진다. 독서인은 조용하고 침착한 것이 아니다. 읽기 위해서는 조용한 곳을 찾는 것이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평온한 곳에 둔다. 침착하고 조용한 환경에 들어간다. 이들의 심리는 저절로 평온해 진다. 시끄러운 곳, 번잡한 곳, 우울과 험담, 심장 박동을 빠르게 뛰게 하고 호흡을 거칠게 하는 그런 곳에서는 글이 읽어지지 않는다. 독서인은 글을 읽기 위해 그런 곳을 멀리하게 된다. 스스로 역시 입을 다문다. 어쩌면 그것이 독서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한다. 책 좋아하는 사람을 보는 사회의 시선도 장점이다. 사실 게임이나 독서나 기호의 문제다. 성공하기 위해 책을 읽는 이들이 있다고 하지만 성공한 이들 중 다수가 책을 좋아했다는 것이지, 책을 읽었다고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역대 미국대통령 46명 중 44명이 개신교 신자다. 내가 개신교 신자가 된다고 해서 미국 대통령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연관관계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원인과 결과가 되는 인과관계는 되지 못한다.
누군가는 한식을 좋아하고 누군가는 양식을 좋아한다. 그것은 취향의 문제다. 다만 사회적 인식은 이 둘을 다르게 본다. 많은 책을 읽었다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보는 것이다. 다만 책은 그저 시간을 보내는 방법 중 하나다. 그닥 특별한 일은 아니다. 매일 올리는 포스팅에 가끔 달리는 댓글이 있다.
"정말 책 많이 읽으시네요. 참 대단하세요."
다만 의아한 것이 있다. 내가 내세우고 싶어한다면, 다독했다는 것이 아니라, 책과 함께 사색하고 그것을 내 생각과 융합하여 글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독'에 초점을 둔다. 자신도 책을 읽어야겠다는 의무감을 갖는다. 사색의 시간이 있다면 책이 아니라 영화를 보더라도 같은 무게의 변화를 얻을 수 있다. 다만 책이 환경을 조금더 차분하게 하고 편의하다는 장점이 있다. 책은 그저 읽으면 되는 일이다. 가만히 앉아서 활자를 보면 그뿐이다. 그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다. 확신한다. 누구나 스마트폰을 들고 비슷한 정도의 정보를 머릿속에 집어 넣고 있다.
단순이 문해력을 높인다는 이야기말고 책이 주는 풍요로움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기본적으로 책은 단순히 아이템이지만 환경을 바꾼다. 가령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술은 그 자체로 나쁘지 않다. 실제로 독서보다 술이 스트레스 해소에 더 큰 도움이 되는 걸로 알려져 있다. 숙취에 대한 고통을 포함해서도 술이 주는 인간의 쾌락은 독서보다 뛰어나다. 그 아이템 자체로 비교한다면 독서는 술보다 뒤쳐진다. 다만 그 아이템이 갖고 있는 속성이 어떤 방식으로 삶의 환경을 바꾸는지 살펴보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조용한 곳을 찾는다. 입을 다물고 귀를 닫는다. 분산되어 있는 오감을 시각으로 집중시킨다. 이들이 찾는 장소는 조용하다. 자신 스스로를 그런 장소로 보내는 일은 몹시 중요하다. 인간의 삶을 움직이는 가장 큰 영역은 '무의식'이다. 인생의 대부분을 관장하는 무의식을 어떤 식으로 길들이는지가 중요하다. 술은 기본적으로 '입'으로 오감을 집중시킨다. 술을 먹으면 말이 많아진다. 고로 술은 술 좋아하는 사람들을 찾고 그곳은 말이 많고 시끄러운 장소가 된다. 술은 그 자체로 스트레스 해소에 탁월한 효과를 주지만 범죄에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책은 다르다. 책은 스스로를 고립시킬 정도로 가둬 두지만, 실제로 가장 다양한 사람과 대화하는 행위다. 술 좋아하는 사람은 '술집'으로 가고, 책 좋아하는 사람은 '서점'으로 간다. 장소는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을 모은다. 누가 뭐래도 서점과 술집 중 범죄나 사건에 연류되는 사람의 비율은 서점 쪽이 적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책은 대체로 더 대단한 사람을 만나는 경험을 선사한다. '작가'에게 갖는 가장 큰 오해 중 하나는 그들이 '가난하다'는 인식이다. 실제로 '작가'의 범주를 어디까지 두는지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미국 통계 조사에서 '작가'는 대개 연소득이 높고 자산이 많았다. 아마 이유는 '본업작가'가 아닌, '책을 쓴 이들'을 규정해서 그럴 것이다. 실제로 읽는 책의 저자를 살펴보면 전문직이거나 성공한 사업가, 교수, 정치인, 인기인 들이 많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더 바쁘지만 꾸준하게 책을 읽고 심지어 글을 써서 출판도 한다. 무언가를 배우고 알려주려는 능동적인 자세를 가진 이들이 대체로 부유한 편이 많다. 고로 책은 부유한 이들의 생각과 노하우가 쌓여 있다. 물론 단순 노동직이이거나 일용직 근무하시는 전업주부, 일반 근로자들이 책을 읽거나 쓰는 경우가 없다는 일반화는 아니다. 다만 확률적인 부분이 꽤 차이가 난다. 도박과 술중독에 빠져 있거나 감당하지 못해 빚에 허덕이는 경우보다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여유 있는 쪽이 책을 읽거나 쓸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자기 상황에 빠져 들면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눈에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이때 책은 여유 있는 자의 여유있는 시간에 사색임으로 분명 그들을 닮게 한다. 최근 만난 일곱 명의 평균이 '자신'이라고 하던가. 책을 통해 만난 이를 포함하여 내가 최근에 만나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의 평균이 바로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