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침팬지를 간식과 공간으로 훈련한 실험이 있었다. 1973년 뉴욕 콜롬비아 대학의 허버트 테라스 교수의 실험이다. 그는 평범한 침팬지를 수학 문제를 풀고 인간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침팬지로 훈련시켰다. 훈련방식은 간단하다. 배고픈 침팬지를 한 공간에 넣는다. 공간의 가운데 선을 긋는다. 침팬지가 우연히 선을 넘으면 배식구에서 사과조각이 떨어진다. 침팬지는 그 공간을 학습했다. 침팬지의 학습이 끝나자 실험자들은 공간을 바꾼다. 선 대신에 커다란 버튼을 설치했다. 마찬가지로 우연히 커다란 버튼을 누른 침팬지는 사과를 얻었다. 비슷한 과정을 몇 차례하며 실험자들이 했던 것은 침팬지의 공간을 바꾸는 일이었다. 단계별로 학습 난이도는 올라갔다. 이후 침팬지는 간단한 수학문제를 풀고 인간과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한 천재 침팬지고 길러졌다. 인간은 항상 공간으로부터 학습했다. 영국의 정치가 윈스턴 처칠은 말했다.
"사람이 건물을 만들고 그 건물이 사람을 만든다."
건축은 단순히 구조물을 쌓고 세우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삶을 만드는 것이고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받는 일이다. 건축물을 짓는 행위는 '시'를 짓거나, '밥'을 짓는 것 처럼 재료를 들어 구조체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거기에는 당연히 건축 자재도 들어가지만 짓는 이의 철학과 의미가 함께들어간다. 시나 밥과 같이 그것은 짓는 자체 보다는 상대를 위해 대접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결국 상대에 대한 공감인지 능력이 공간인지 능력보다 중요한 일이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을 바꾸는데 아주 중요한 두 가지가 있다. '옷'과 '공간'이다. 영국 속담에는 '옷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공간도 마찬가지다. 처칠의 말처럼 공간도 사람을 만든다. 조선시대 임금은 정3품 이상의 고위관리와 조정회의를 했다. 이때 임금은 가장 진한 적색 곤룡포를 입었고 그 중심에 앉아 있었다. 당연히 그의 자리는 입식의자 위에 앉았다. 정3품의 당상관들은 임금의 좌와 우에 좌식으로 앉아 조금 밝은 적색 의복을 입었다. 또한 임금을 측면으로만 대할 수 있었다. 임금은 위에서 아래로 신하들 전체를 정면으로 내려다 봤지만 신하들은 임금을 바라 볼 수 없었다. 의복과 더불어 공간은 사람에게 권위를 부여하거나 하지 않기도 한다. 실제 2.7미터 천장고에서 공부한 학생보다 3미터 천장고에서 공부한 학생의 창의력이 두 배나 높게 나왔다는 미네소타 대학의 연구 결과가 있다. 공간이 중요한 이유 그것이 물리적 공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정신적인 공간에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말이 있다. 비슷한 말로 '맹모삼천지교'도 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지고 맹자의 어머니는 아이의 환경이 교육에 끼치는 영향으로 인해 이사를 다녔다.
사피엔스에게 공간은 몹시 중요하다. 인류의 요람인 아프리카를 벗어나 모든 대륙으로 인류가 뻗어 나간 것은 인간이 '공간'에 대한 욕망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에게 살기 적합한 공간을 찾아 능동적으로 다녔다. 기후변화로 밀림을 잃은 원숭이가 초원의 포식자를 경계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허리를 펴고 앞발을 들어 먼 공간을 바라보는 일이었다. 허리가 펴진 원숭이들은 두 팔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직립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후면 근육이 강화해야 했고 후면 근육이 강화되면서 같은 거리를 이동하는데 2족보행을 하게 됐다. 2족보행은 4족 보행에 비해 어너지 소모가 25%밖에 되지 않는다. 인간이 지구력이 늘어나면서 이동할 수 있는 공간은 넓어졌다. 이 과정에서 체온이 빠르게 올라가는 것을 방지하고자 직사광선에 노출되는 머리를 제외한 전신의 털이 얇아졌고 가늘어졌다. 전신 '살갗'이 노출된 상태가 됐다. 인간에게 의복과 공간은 그런 의미에서 사라져 버린 보호막과 같은 것이다. 인간의 필수품이 되버린 '의'와 '주'는 그렇게 자신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됐다. 그러나 현대의 대한민국은 똑같은 공간에서 획일화 된 삶을 산다. 대규모로 지어진 아파트에서 모든 사람이 같은 시간에 같은 위치에서 볼일을 보고 같은 시간에 같은 위치에 있는 식탁에 앉아 있으며,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서 잠을 잔다. 거주 공간의 역할이 개성을 잃고 단순히 거주 역할만을 하게 되자, 사람들은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는 방식으로 '차'나 '인스타그램' 등을 사용한다. 공간이 인간 개인과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그뿐만 아니다.
일본 교토에 있는 '사무라이 마을'을 보면 주택 담장으로 만들어진 골목길이 미로처럼 되어 있다. 이는 외부 침입자로부터 보호하려는 목적도 있겠지만 좁은 공간에 대한 일본인들의 공간활용 방식이기도 하다. 섬나라의 경우 공간에 대한 제약이 있다. 고로 이동 시간은 적게 들지만 공간은 항상 부족했다. 이를 위해 조경과 건축 디자인을 복잡하게 구성하는 것다. 오밀조밀한 공간은 일본인들의 정서에도 영향을 끼친다. 실제 일본인들은 작은 공간에 오밀조밀한 구성을 한다. 일본의 '신주쿠역'을 보면 알 수 있다. 일본의 신주쿠역은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역 중 하나다. 초보 여행자들이 가끔 이곳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일본 전자나, 자동차 산업 역시 대체적으로 작은 공간에 다양한 기능을 집어 넣는 제조업으로 성정하기도 했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은 2017년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에 등재 됐다. 이 건축물은 특이하게도 미술관 내부 소장품이 아니라, 건물 자체로 문화유산에 등재됐다. 건축물의 내부는 다른 미술관처럼 찾기 힘든 미로형 내부가 아니라 달팽이 모양과 같이 나선형 구조의 경사로가 있다. 관람자들은 이방과 저방을 오가며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경사로를 따라 가면서 미술 작품을 감상한다. 이 장소는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명소에 꼽히곤 한다. 이 디자인을 생각한 이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라는 건축거장으로 르 코르뷔지에와 미스 반 데어 로에와 함께 3대 건축 대장으로 꼽힌다. 건물 내부에서 미술을 감상하는 이들에 대한 깊은 고민이 건물 곳곳에 묻어 있다.
유현준 교수의 인문 건축 기행을 보면 꼭 세계여행을 다녀 온 기분이다. 그의 다른 도서들도 마찬가지지만 이 책 역시 단순히 구조물에 대한 소개가 아니라, 그 내면에 담고 있는 다양한 인문학적 이야기가 숨어져 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