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읽을책] 모르면 모른다고 답하는 것_왜 자기객관화가

by 오인환

있는 그대로.

말은 쉬운데 어렵다. 관계, 위치, 상황, 자존심, 지위, 시기.

그런 것들 때문에 쉽지 않다. 과소평가도 하면 안되지만 과대평가도 하면 안된다. 실패에 좌절하고 있을 때, 친구가 말했다.

"네가 언제부터 그랬는데?"

친구는 나의 치부를 안다. 중학교 시절, 고등학교 시절을 안다. 승승장구를 하다가 꼬꾸라졌을 때, 친구는 말했다.

"네가 원래 갖고 있던 게 뭔데?"

그랬다.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건 없었다. 중간 어느 지점을 떼어다가 잠시 스치고 지나간 것을 보고 자신의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가장 절정이었던 어떤 순간을 기본값으로 잡고 보면 인생 대부분이 후회 덩어리다.

성장이라는 것이 완벽하게 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 같지만 아니다. 오르락 내리락 한다. 오를 때는 약간 더 오르고, 내릴 때는 조금 덜 내리는 정도만 유지해도 추세는 우상향이다.

참 별거 없는 경험과 스펙으로 이 정도 온 것은 어쩌면 다행이다. 그것은 감사할 일이지. 좌절하거나 후회할 일이 아니다.


20대에 개인과외를 했던 적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남자 아이였다. 아이에게 가르친 과목은 영어다. 학생은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확실히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이 꺼내든 문제집은 모의고사 모음집이었다. 물었던 학생의 평균 점수는 30점이었다. 문제집을 가만 살펴보다가 물었다.

"여기에 적혀 있는 supply가 무슨 뜻이야?"

학생은 대답하지 못했다. 다시 물었다.

"그럼 여기에 있는 offer는?"

학생은 대답하지 못했다. 다음 날, 학생을 만났을 때, 나는 '중학교 영단어장'을 챙겨 갔다.

학생의 반응은 격정적으로 싫어했다. 고등학교 2학년이 '중학교 영단어장'을 암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중학생 단어랑 고등학생 단어가 무슨 상관이야? 모르면 봐야지."

학생은 극구 거절했다. 자신은 고등부 수업을 듣고 싶은 거지, 중학생들이 하는 것은 할 수 없다고 했다. 얼마 뒤, 어머니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그 아이를 다시 보지는 못했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나이에 맞는 과정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었을까.


가끔 그런 압박을 받을 때가 있다.

나이 서른 쯤이면 알고 있어야 하는 것들.

남자면 알아야 하는 것들.

해외 거주 기간이 10년 쯤 됐으면 알아야 하는 것들.

그런 것들은 이른 시기에는 자만하다가 적정 시기가 지나기 시작하면 조급해진다. 그리고 당연히 했어야 할 시기를 넘어서면 거짓을 내뱉게 된다. 자만과 조급 그리고 거짓. 그것은 순서다.


20대 초반, 해외 취업 후 한국으로 귀국했던 적 있다. 감사하게도 해외에서 취업했을 때 조건은 매우 좋았다. 서울에서 일자리를 구하는데 이력서에는 이전 직장 연봉을 기입하도록 되어 있었다. 계산해 봤더니 한국에서는 결코 받을 수 없는 금액이다. 받았던 금액보다 훨씬 적게 적고 제출했다. 면접에서 면접관은 말했다.

"이렇게 받고 일하셨는데, 이 돈 받고 일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그마저도 한국 기준에서 너무 높았던 모양이었다. 그 기억은 꽤 강렬했다. 20대 초반에 결코 할 수 없는 조건으로 계약했던 그 시기, 나는 분명 남들보다 앞서고 있다고 착각했다. 그러나 20대 초반은 중반, 후반, 서른이 됐다. 서른도 초반, 중반, 후반에 닿는다. 그때는 꽤 이른 시기의 성공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더 나은 사람은 발에 채인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했다.


다사다난했다.

핑계도 될 수 있다. 그러나 어쨌건 중요한 건 지금이다. 또래가 이룰만한 것들을 굵직하게 이뤄내는 시기, 남들보다 몇 걸음 뒤로 물러나 있었다. 그것을 감추고 때로는 아닌 척 했다. 자만, 조급 그 단계는 아득하니 넘었다. 지금은 어쩌면 거짓의 단계의 초입에 머물고 있는 것 같다.

"네가 살면 얼마나 살았다고!"

"네가 알면 얼마나 안다고!"

일부 어른들의 오류를 지적하면 혹은 논리적으로 굴복 당할 때, 잘 모르는 것, 무능한 것을 들켰을 때, 일부 어른들은 버럭하고 소리를 지르신다. 지위로 그것을 감추고 분위기와 상황을 바꿔 버리면 논리와 능력의 부재는 일단 가려진다. 무지를 방치하면 벌어지는 일들.


"앞으로 비트코인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누군가의 질문에 중국 최고 부자 마윈은 대답했다.

"모릅니다."

뭐든 척척 대답할 것 같은 상황에서 마윈은 모른다고 답했다. 그것이 내 눈에 너무 멋있게 보였다. 모르면 모른다고 답하고 알면 안다고 답하는 것. 그것은 굉장히 쉬운 일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가장 어려운 일로 변모한다.

20230703%EF%BC%BF131304.jpg?type=w580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인문] 공감지각능력과 공간지각능력_유현준의 인문 건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