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른 호르몬을 분비한다. 호르몬이라는 것이 온도와 밝기에 따라 분비량이 변화하느라 아침, 점심, 저녁 사람은 각기 다른 생체 리듬을 갖는다. 아침에 드는 생각과 저녁에 드는 생각이 다르다. 아침이면 사람의 이성은 차가워 졌다가, 밤이되면 뜨거워지는 탓에 저녁의 행동을 아침에 후회하는 일이 적잖다. 사람의 생체리듬이 이처럼 워낙 변화무쌍한 탓에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아침에 볼 때와 저녁에 볼 때는 완전히 다르다.
아침에 공포영화를 보면 차갑게 식은 이성은 그것에 몰입하지 못한다. 저녁에 계발서를 읽으면 뜨거워진 감성은 그것에 몰입하지 못한다. 고로 아침에 읽던 책을 저녁까지 같은 감정으로 읽는다는 것은 어렵다.
하물며 그저 시각 정보를 직관적으로 전달해주는 영상 매체도 이럴지인데, 능동적인 해석이 필요한 활자 매체는 오죽할까.
진득하니 한 책을 완독하고 다른 책으로 넘어가는 것은 고로 적당한 때가 아니면 반드시 정답은 아니다. 사람의 흡수력은 스펀지와 같다. 가장 메마른 상태일 때, 가장 빠르고 많은 것을 흡수할 수 있다. 메마르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갈구하는 상태일 때를 말한다. 고로 적정한 시기, 적정한 장소에 적정한 책을 읽는다면 그 흡수력은 같은 책을 읽어도 남다르다 할 수 있다. 아침에는 자기계발서를 읽는다. 하루에 열정을 지펴 줄 장작을 몇 단어 장착하고 시작한다. 인간의 호르몬 분비는 유통기한을 갖고 있다. 도파민이건, 세르토닌이건 한 번 분출하고 나면 서서히 그 농도가 줄어든다. 고로 작심 하루짜리 뗄감 한 단어를 매일 아침마다 집어 넣고 시작한다.
점심에는 나눠 읽을 수 있는 것들을 챙겨 나간다. '시집'이나 단원 별로 짧게 쪼개진 계발서, 가벼운 인문서적을 가지고 다니며 읽는다. 반드시 필요한 '청소', '운전', '걷기' 등의 시간에는 오디오북을 활용한다. 오디오북을 선정할 때는 최대한 가벼운 것을 선정한다. 오디오북을 듣다가 놓치면 안되는 부분을 만나게 되면, 잠시 멈춰서 그것을 노트해야 하는데, 될 수 있으면 메모도 필요 없을 정도의 가벼운 것들을 선택한다. 시기성을 갖고 있고 유행 혹은 베스트셀러 등을 선택하는데 이유는 소장하기에는 아쉽고 읽지 않기에는 더 아쉽기 때문이다. 오디오북을 듣다가 괜찮다 싶으면 냉큼 서점으로 가서 종이책으로 구매한다. 혹은 종이책으로 있는 책 중 가독성이 떨어지는 책들은 '오디오북'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혼자 읽어서 절때로 이해도 안되고 어렵다고 느껴지면 일단 오디오북으로 진도를 나가서 흥미를 유발한 뒤에 종이책으로 넘어간다.
책을 읽을 때는 날개 부분에 있는 작가 소개를 가장 먼저 본다. 어떤 누가 썼는지를 알고 읽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작가의 성향을 미리 알고 읽으면 책을 읽는 내내, 단순히 정보만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와 대화하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어떤 작가가 썼는지에 따라 책의 맛은 달라진다. '슬픈 조선'이라는 근대 역사를 다룬 소설은 아주 상세하고 객관적인 기술이 되어 있다. 그저 읽어도 놀라울 그 책의 작가는 놀랍게도 '가타오 쓰기오'라는 일본 작가의 글이다. 일본작가가 일본인들을 위해 집필한 이 책이 한국에 소개된 것, 그 뿐만 아니라 꽤 객관적이고 상세한 묘사가 놀랍다. 책을 읽는 도중 몇 번이나 돌아가는 페이지는 역시 '작가 소개'다. 읽다가 몇 번이나 작가 소개란으로 넘어가서 누구의 글인지 확인한다. 그런 과정이 있다보면 다음 지나가다가 만나게 되는 작가의 이름에 그의 전 작품이 떠오르고 다음 책을 집을 지, 말지를 쉽게 정할 수 있게 한다.
작가 소개를 보고 난 뒤는 목차를 본다. 군에 있을 때, 선임이 이렇게 시켰다고 해보자.
"삽으로 땅을 파"
맹목적으로 일단 진행하는 것과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 알고 하는 것은 천지 차이다. 맹목적으로 하게 될 때, 중요한 것은 '목적'이 없다. 사람은 '목적'이 있을 때, 창의적이게 된다. 어떻게 하면 더 빠르고 쉽게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그 고민을 하게 하는 것은 '목적'이다. 목적은 쉽게 말하면 '길라잡이'다.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상세한 가이드 라인이 잡혀 있어야 하며 전체를 환하게 밝혀주는 환한 지도는 '목차'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는다고 해보자.
'사피엔스'의 첫 문장은 '별로 중요치 않은 동물'이다. 이어 '약 140억 년 전, 빅뱅이라는 사건이 일어나 물질과 에너지,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게 되었다.'이다.
다짜고짜 제목은 '사피엔스'이고 첫문장은 '별로 중요치 않은 동물'이다. 이어 다음 키워드가 '빅뱅'이면 이 글의 주제는 무엇이고 어떤 방향으로 갈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목차를 보면 대략 어떻게 진행하려 하는지 그 방향과 길을 알 수 있다.
사피엔스는 '인지혁명' , '농업혁명', '인류통합', '과학혁명'이라는 큰 주제 아래 하위 소주제가 이어지며 '사피엔스'라는 동물이 어떻게 현대까지 왔는지 설명한다. 이렇게 커다란 숲을 보게 되면, 아무리 어려운 책이라고 해도, 아무리 어려운 어휘가 나온다고 해도 가벼운 마음으로 넘길 수 있다. 커다란 항해를 하는 선박은 작은 파도를 신경쓰지 않는다. 그것은 어려운 책을 쉽게 시작할 수 있게 하고 벽돌의 장벽을 별것 아닌 것 처럼 넘기게 도와준다.
글자가 읽히지 않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해당 책을 고르기 전에 비슷한 주제의 영상이나 글을 몇 번 접하는 것이 좋고 읽기 전에 어떤 방식으로 전개 될지 스스로 기대가 된다는 자기 최면을 거는 것도 좋다. 나의 경우, 가장 오랫동안 책이 기억나게 하는 이유는 '기억하지 말아야지'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것과 '이 책을 소재로 글을 쓸 때, 어떤 식으로 쓰면 좋을까'라는 두 가지를 고민한다. 책의 내용을 요약하려고 하지 않고 나의 생각을 담고자 한다.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한 문장이 나오면 잽싸게 사진을 찍고 간단한 메모 한 줄 남긴다. 그 한 줄은 독후감을 시작하는 첫문장이 되는 경우가 많다. 첫문장을 시작하면 두 번 째 문장부터는 매우 쉽다. 고로 책은 '소재'가 되어 완전히 다른 생각을 이끌어 나오게 한다. 현재 읽고 있는 책을 소재로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을 갖고 읽는 것은 집중력을 높이고 사색의 시간을 깊게 하며 읽는 속도를 빠르게 한다. 고로 그저 읽기 위해 읽는 것이 아니라 쓰기 위해 읽고, 읽기 위해 쓰는 것이 좋다.
요즘 유튜브가 대세가 된 시대다. 그래서 글보다는 영상매체가 중요하다고 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가만히 보면 영상매체를 보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은 영상매체를 보는 사람에게 유리한 것이 아니라, 그 매체를 만드는 사람에게 유리하다. 뭐든 공급자가 되려면 '글'을 읽어야 한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