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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소설로도 완전한_스즈메의 문단속

by 오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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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면서 감성이 변한 탓일까. 어릴 때에는 만화영화를 좋아했는데 좀처럼 보기 어렵다. 20대에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수 차례 돌려봤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았다. 그 속에서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다시 그것을 재해석 하는 재미는 같은 작품을 수십, 수백 번 보게 했다. 그러고 보니 20대 중후반에는 영화에 푹 빠져 살았다. 지금도 영화는 내 여가를 책임진다. 남들과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같은 영화를 여러번 돌려보며 나름의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그런 것들에 푹 빠져 지낸 시간이 길다. 그 긴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자면, 같은 것을 여러 각도로 생각해 보려는 습관일지 모른다. 만화는 영화와 다른 부분이 있다. 쉽게 말하면 장면의 모든 부분의 의도된 연출이라는 점이다. 영화의 경우, 모든 것은 연출이 아니다. 우연하게 발생한 바람, 배우의 머리카락 흘림, 지나가는 배역 등이 복합적으로 다양한 우연을 만든다. 다만 만화는 하나 하나가 모두 작가의 의도에 배제되지 않는다. 심지어 주인공의 머릿카락 하나까지, 작가가 의도해야만 움직인다. 작가의 의도는 '영화'보다 '만화'에 더 많이 담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이렇게 정형화된 의도는 때로 갑갑함을 줄 때도 있다. 해석의 주체가 '작가'가 아니라 '독자'라는 점에서 '열린 해석'은 때로 그 작품을 더욱 재밌게 하는 순기능을 한다. 언젠가 이런 만화와 영화의 장점과 단점이 서로 단점과 장점이 되어 무엇을 멀어지게 만들고 무엇을 가까워지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만화에 빠져 산 것은 얼마 전인 것 같은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이제는 이 둘에서 더 발전하여 연극처럼 직접 해석자가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는 것에 매력이 느껴진다. 존 케이지의 4'33""는 아마 가장 유명한 쉼표로만 이루어진 음악일 것이다. 이 음악은 존 케이지가 1952년에 작곡한 작품으로 연주자는 악기를 연주하지 않고 4분 33초 동안 무기력하게 앉아 있기만 한다. 이 음악에 참여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청중이다. 청중의 숨소리, 발소리 등 환경 소리를 포착하는 것에 중점이 있다. 실시간으로 과거의 것을 재연한다는 설정은 현대와 과거를 동시에 존재하게 하는 시간여행을 간접경험하게 한다. 그렇다고 연극이나 뮤지컬을 자주 보러 다니는 것은 아니다. 기껏 해봐야 아이와 함께, 혹은 간혹 기회가 됐을 때 몇 번 정도 보는 것이 전부다. 어쨌건 OTT나 극장에서 개봉하는 애니메이션 작품에 선뜻 끌리지 않고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사색을 즐기던 과거의 여유가 사라진 탓도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주변에서는 '그거 봤어?'로 알게 된 작품을 만났다. 바로 서점에서다. 이미 사람들은 전부 애니메이션으로 봤다는 작품이다. 당시에는 끌리지 않아 보지 못한 작품이지만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 자꾸 노출되니, 결국 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자주 방문하는 서점에서 몇 차례 같은 책을 들었다 놨다. 아무래도 한참 바쁜 시기라 무언가 하나를 보면 오래 걸리는 '독서'의 특징상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러다 윌라 오디오북에서 한 작품을 알게 됐다.



소설로 접한 '스즈메의 문단속'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평은 이렇다. 갑작스러운 전개, 너무 빠른 감정 변화. 그 진도를 따라가기에 나는 오롯하게 애니메이션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표현을 애니메이션은 어떻게 구현했을까.' 하는 궁금증이다. 그만큼 소설로 이미 완전했다. 다만 처음 만난 사람과 급격하게 사랑에 빠지는 일과 그 감상에 쉽게 젖어 들어가는 것을 볼 때, 8시간의 오디오북에서도 느껴지는 당황감이 2시간 러닝 타임의 애니메이션에서는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이런 류의 애니메이션 중에 가장 인생에 깊은 것은 '시간을 달리는 소녀'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유학 시절에 처음 접했는데 그 분위기가 좋아서 꽤 여러번 본 기억이 있다. 개인적으로 '일본' 소설을 좋아한다. 간결한 문체와 직관적인 표현이 마음에 든다. 이 소설을 처음 접하고 난 뒤부터 '신제주 북앤북스'에 들려 일본 소설 몇 편을 더 빌렸다. 예전에 한참 좋아했던 일본소설이 었는데 이런 저런 여유가 없어서 소설을 많이 보고 있진 못하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워낙 다이나믹한 상황에서 본 책이라, 정확하게 집중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사실 애니메이션으로 다시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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