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님은 앉아서 글이나 쓰니까 쉽죠."
그녀는 말했다. 남편이 2년 째, 해외로 출장을 갔다고 했다. 수 년 째, 독박 육아를 하고 있다고 했다.
'독박육아? 그런 걸 독박육아라고 부르나'
그렇게 생각했다.
"저도 아이 혼자 키웁니다."
그렇게 답했다, 그녀는 다시 말했다.
"저희 애는 둘이에요. 작가 님이 둘 키워보면 정신 없을 거에요."
"저도 쌍둥이 입니다."
그러자 그녀가 다시 말했다.
"저희 애들은 학원도 안 보내요. 학교 끝나면 집에만 있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답했다.
"저도 가정보육 합니다."
그녀는 살림하랴, 육아하랴, 책 한 장 읽을 시간이 없다고 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더욱 말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말에 공감해 줄 수도 있었으나, 공감하지 않았다. '아'와 '어'에는 차이가 있었다. 누군가는 시간 남아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할 일 없어서 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보여진다는 것이 씁쓸했다. 자신이 언제나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내뱉는 모든 창의적인 변명에 모두 답할 수는 없다.
'시간이 없다.', '여력이 없다.', '살림과 육아 하느라 힘들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너무 늦다.', 혹은 '너무 지치다', '너무 힘들다.'
그럴 수도 있다. 사람마다 상황이 다르고, 현실적 차이도 존재한다. 그러나 자신이 못하는 이유와 '상대'가 해내는 이유가 완전히 반대 이유로 작동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세상에는 '그러므로 하는 이들'도 있다. 나의 치부를 보일 필요까진 없었다. 그러나 그랬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블로그, 인스타, 유튜브를 운영했다. 5권의 책을 집필했다. 강연을 다니고, 강의도 했다. 나는 전업작가가 아니다. 전업작가를 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나의 명함은 굉장히 다양하다. 고로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고 명확하게 답할 수 없다. 주7일 일하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먹었던 그릇을 씻어 넣거나, 공간에 청소기를 돌리는 일도 특별한 것이 아니다. 아이의 옷을 세탁하거나, 아이가 먹은 음식을 치우는 것은 억울한 일이 아니다. 당연히 할 일이다. 특별히 힘든 일도 아니다. 거기에 의미를 어떻게 부여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생겨날 뿐이다.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설날, 추석 그런 것도 그냥 여느 날과 같은 날이다. 거기에 억울함의 의미를 부여하면 억울한 삶이 되고 아무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아무 날도 아니다. 1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에게 일요일이 어디에 있었으며, 생일과 크리스마스는 어디에 있었던가. 그것은 원래부터 있던 것이 아니다. 그것에 그것의 관념을 넣으니 그렇게 느껴질 뿐이다.
그 말에 따르면, 독박 육아와 독박 살림, 독박 돈벌이를 하고 있다.
가만 생각해보면, 인생은 원래 혼자다. 거기에 '독박'이라는 표현이 왜 필요한가. 내 아이를 내가 키우는 것에 '독박'이라는 말을 쓰고 싶진 않다. 원래 책임은 둘로 나눈다고 해서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아이에게 가장 좋은 교육은 모범이다. 어떤 목표를 달성할 때, 그것을 극복해야 할 변명이 주렁 주렁 달릴수록 목표는 멀어져 간다. 아이가 성공하길 원하면 부모가 먼저 성공해야 한다. 아이가 책을 읽기 원하면 부모가 먼저 책을 읽어야 한다. 아이가 독립하길 원하면 부모가 독립적이어야 한다.
아이의 책을 읽어주고, 아이의 뒷치닥거리를 하느라, 나만의 시간이 없다고 불평하는 것은 모순이다. 그 또한 자신의 시간이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게임이나 TV시청을 하지 않는다. 그 시간보다 아이와 의미 없는 수다를 떠는 시간이 훨씬 길다. 그것은 아이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 또한 나의 삶의 일부이며, 그것을 제외한 나만의 시간이 없다고 억울해 할 필요도 없다. 어떻게 보면 참 재미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비교대상이 없어 그런지, 그닥 불편하지도 않다.
일주일에 쉬는 날은 없다. 하루에 쉬는 시간도 없다. 그래도 '번아웃'은 없다. 이유는 이렇다. 원래 그런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쉼'이라는 것은 모순적이다. 일을 하면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쉬는 시간'에는 '쉬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가. '쉼'이라는 것은 자신의 진행 방향이 고달플때 갖는 것이다. 나에게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고달픈 일'이 아니다. 행복한 일이다. 원래 삶은 '쉼'을 닮았다. 나에겐 하루 하루가 쉼이다. 누군가가 게임 캐릭터를 키우는 것 처럼, 스스로 아이와 자신을 키울 뿐이다. 누군가 사이버 캐릭터를 키우며 쉼을 하듯, 나도 그렇게 쉼을 한다. 이 얼마나 즐겁고 유익한 게임인가. 나는 오늘도 오늘의 퀘스트와 경험치를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