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시대라면, 탈무드가 얼마나 무기력한지 느껴진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에서 사망자는 개전 수일 만에 1만명을 넘었다. 이 중 3분의 1이 어린이다. 도덕 교과서를 암기 했다고 도덕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이론과 실전은 다르다. 결국 '구약'과 '신약', '코란', '토라', '탈무드'는 모두 '중동' 지역에서 나왔다. 구약을 기반으로 유대교, 거기에 신약이 붙으면 기독교, 인질(Injil)이 붙어서 '코란'이다. 세계 3대 종교가 모두 이곳에서 출발했으나 그 뿌리는 점차 뻗어 나간다. 그것이 생물의 진화 과정과 같이 다양해진다.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전쟁을 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결국 '공감' 때문이다. 공감할수록 갈등이 생긴다는 말은 얼핏 모순 같다. 그러나 그러지 않다. 우리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대부분 하나의 뿌리를 갖는다. 그것을 타고 올라가다보면 언젠가 어느 지점에서 만나게 되어 있다. 고로 다르다는 것은 실제로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다르다는 착각은 그것을 다시 하나로 합해야 한다는 착오를 하게 된다. 내부적으로 비슷한 것끼리 뭉친다. 결론적으로 모든 것은 비슷하지만, 분파를 달리한 다른 것끼리 뭉치면 그것은 결국 닮지 않은 것을 미뤄 낸다. 고로 공감할수록 적이 많아진다. 다양성은 생존 전략의 필수 요소다. 다양성을 지키는 것은 생존력을 높힌다. 생물의 진화를 보면 매 시기마다 대멸종기가 발생한다. 이때, 모든 생물이 전부 멸종하는 것이 아니다. 많게는 97%의 지구 생물종이 멸종하더라도 일부는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일부가 다시 환경에 적응하며 번식한다. 만약 모두가 똑같다면 생물의 진화는 거기서 멈췄을 것이다. 분화하고 멸종하고, 소수가 다시 분화하는 이런 과정을 겪었기에 우리는 공룡이 멸종한 자리를 채우며 살아가고 있다. 결국 생물종은 하나에서 분화해 뻗어나간다. 바다를 헤엄치던 물고기가 육지로 올라오고 그것은 양서류가 되고, 파충류가 되고 포유류가 되고 영장류가 되듯. 분화는 하나의 뿌리에서 시작하여 여럿으로 나눠진다. 이스라엘은 유대교지만, 하마스는 이슬람이다.
우주의 형성 과정을 보면 그렇다. 우주에는 서로 끌어당기는 법칙이 있다. 그것은 모든 것에 적용되기에, '뉴턴'은 그것은 '만유인력의 법칙'이라고 불렀다. 끌어 당긴다는 것은 때로 모여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반대로 완전히 멀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것은 서로 밀어낸다는 '전자기력'이나 '척력'과는 다르다. 쉽게 말해 이렇다. 지구의 궤도에는 인력이 발생한다. 이 인력은 주변의 것을 끌어 당긴다. 그것을 중력이라고도 표현한다. 이 중력은 작게는 사과, 크게는 '달'과 같은 위성도 끌어 당긴다. 반대로 목성의 주변에는 '유로파'라는 위성이 있다. 이것은 '목성'의 중력에 끌린다. 쉽게 말해, '달'은 지구에 끌리고, '유로파'는 목성에 끌린다. 한쪽으로 끌어당겨진다는 것은 다른 쪽에서 밀려나고 있는 것과 같다. 고로 유로파는 목성의 외부에서부터 밀려나고 있다. '달' 또한 지구의 외부에서 밀려나고 있다. 즉, 궤도에 있는 것끼리는 끌어 당긴다. 다만, 그것을 벗어나면 모든 것은 그것을 밀어낸다. 그렇다고 유로파와 달이 완전히 다르냐 묻는다면 아니다. 이 둘은 '빅뱅' 초기에 아주 가까웠을 것이다. 그것은 빅뱅 직후 서로 멀어지기 시작하며 분화되다가 비슷한 것, 가까이에 있는 것끼리만 모여진다. 그리고 그것의 모양을 형성한다. 다시말해, 그것은 오롯하게 '그것' 같지만, '그것'은 '이것'과 같은 것이며 우주, 생물, 문화, 사회는 전부 비슷 한 매커니즘으로 번영해 나간다.
유대교는 '아브라함', '모세'와 같은 구약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시작한다. 유대교의 핵심 성경은 '타나크'로 성경의 구약에 해당된다. 이는 토라를 비롯한 여러 구성으로 이뤄져 있다. 유대교는 역시 단일신을 섬긴다. 그리고 그에 맞는 율법과 윤리, 가르침을 갖는다. 다만 이 종교는 여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다. 바울이라는 유대교 법학자가 구약을 중심으로 '예수'라는 인물의 가르침을 설파한다. 예수의 가르침을 기록한 것을 '신약'으로 구분한다. 여기서 갈등의 시작이 발생한다. 바울의 편지 중 일부에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 메시아로 인식한다. 뿐만 아니라 여기서 더 나아가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자 하나님 자신으로 묘사된다.그것이 '삼위일체'라는 기독교 교리로 발전한다. 그러나 반대로 무하매드는 스스로를 '신'으로 설정하지 않는다. 무하매드는 '유일신'를 훼손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성당에는 '마리아'가, '교회'에는 '예수'의 상이 존재한다. 다만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에는 '신의 형상'이 없다. 이슬람에는 '태허'라는 아주 중요한 원칙이 있다. 이는 하나님이 오직 유일하기에 그것을 형상화하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해서 안된다는 원칙이다. 이런 신의 불가시성을 강조하는 원칙은 '코란'에도 기록되어 있다. 코란에는 하나님의 형상과 이미지를 만들지 말라는 명령이 들어간다. 고로 어떤 조각상이나 이미지가 들어갈 수 없다. 이 원칙은 신의 존엄을 의미하고 순수성을 보존하게 한다. 또한 하나님을 묘사하는 형상은 우상 숭배를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창시자인 모하매드 또한 스스로를 그렇게 두었다.
이렇게 서로가 같은 뿌리를 갖고 분파가 달라진다. 고로 이 네 종교는 정통성 문제가 생긴다. 모두가 같은 것으로 시작했으나, 모두가 달라졌으니 개중 하나만 진짜고 나머지는 가짜가 되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모두 같은 성지를 갖는다. 고로 이들에게 영토는 단순히 거주지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모순이 있다. 이 모든 종파를 계속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아브라함을 만난다. 아브라함을 거슬러 올라가면 '테라'라는 그의 부친을 만난다. 그의 부친을 거슬러 올라가면, '나홈'이라는 그의 조부를 만난다. 그를 거슬러 올라가면 '스룩'을 만나고, 다시 거슬러 올라가면 '르엘'을 만난다.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우리는 '오스트랄로 피테쿠스'의 '루시'와 만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어떤 물고기의 뱃속에서 만나고 다시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우리 모두는 '초신성' 혹은 '빅뱅'의 한점에서 만난다. 그것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종교의 뿌리가 '빛이 있으라 하여 빛이 있었다'처럼 '창세기'의 시작점을 갖고 있으니, 우리의 모든 뿌리는 하나에서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