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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작가 아빠는 왜 '한자'를 가르치나_예비초

by 오인환

'각도', '배수', '공배수', '다각형', '직사각형', '대응각', '원주율'

이 단어들은 초등 수학에서 사용하는 단어들이다.

'명사', '부정사', '동사', '전치사', '주어', '대명사, '의문사'

이 단어들은 초등 영어에서 사용하는 단어들이다.

'구석기', '고조선', '채집', '제작', '수렵', '정착'

이 단어들은 초등 역사에서 사용하는 단어들이다.

'속도', '액화' , '기화', '발열', '진핵생물', '내핵', '외핵'. '퇴적암'

이 단어들은 초등 과학에서 사용되는 단어들이다.

단어를 이루고 있는 구성이 이런데, 한자를 쓰지 않고 학습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숫자를 모르고 어떻게 덧셈과 뺄셈을 가르칠 것이며, 단어를 모르고 어떻게 컨텐츠를 가르칠 수 있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한자'다. 한자는 '영어'보다 때로는 '수학'보다 중요하다.

다음은 초등학교 고학년 수학문제 중 일부다.

"정육각형의 각 변을 각각 이등분하여 점을 찍고 두 점을 직선으로 이었을 때, 대변이 평행한 사각형이 넓이가 10.3cm 제곱이라면 전체 정육각형의 넓이는 얼마인가?"

이 수학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육각형', '정육각형', '이등분', '대변', '평행', '사각형', '제곱' 등의 명사를 이해해야 한다. 다짜고짜 더하기, 빼기를 많이 시키면 반드시 '산수'를 벗어난 수학 과목에서 진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어느 시점이 되면, 아이들의 어휘력 수준을 넘어서는 교과 용어들이 과목별로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 모든 용어를 모두 암기하고 대응할 수는 없다.

'순응'이라는 단어를 알았으면 '불순응'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불순응'이란 무슨 뜻일까? '불순응'이라는 말은 '표준 한국어 사전' 상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불응'이라는 말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의 의미를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비호감도'이라는 단어도 존재하지 않는다. '얼만큼 호감이 없는지 정도를 나타내는 단어일 것이다' 정도의 추측은 할 수 있다. 이 정도 추측이 가능한 이유는 우리가 '한자의 음'에 대해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 밖에 우리는 암기한 적 없고, 써본 적 없음에도 대략적으로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가늠할 수 있는 단어들이 있다.

"무과실책임, 위헌심사, 법정대리인, 재산분여, 강제집행, 유기형, 무기형, 자백강박" 등이 그렇다.

의학용어에서도 한자는 역시 많이 사용된다.

"심근경색, 당뇨병, 만성질환, 골절, 면역계"

만약 단어를 만들 때, 이처럼 '한자'를 사용하지 않고 만들 경우 어떻게 우리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망우리, 고니, 나래, 누리, 다래, 별주, 여울, 아리, 얼"

이는 모두 순우리말이지만 되려 '한자어'보다 더 그 뜻을 가늠하기 쉽지 않다. 대체로 '독해력'이란 정확한 뜻을 묻기 보다는 '문장에서 제시하는 아이디어와 주장'을 이해하고 문맥을 파악하는 등의 일이다. 즉, 주제와 중심 생각을 인식하고 추론하는 일이다. 다시말해서 '아주 정확한 이해력'보다는 대략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문맥을 찾는 일이 더 중요하다.

이는 영어도 마찬가지다. 수능 영어 지문은 기본적으로 꽤 어려운 어휘가 나온다. 이 단어를 모두 암기하고 독해를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주장문', '설명문', '일기문', '편지문' 등 글의 종류에 따라 글이 씌여진 목적을 파악하고 대략적으로 '필자'가 어떤 말을 하고자 하는지 '문맥'을 이해하는 능력을 더 필요로 한다.

한자는 '어휘력 향상'에 큰 도움을 준다. 쉽게 말해, 한국어 대부분의 근원은 '한자'에서 출발한다. 한자를 알고 있으면 언어의 복잡한 개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또한 복합어에 대한 의미를 파악하는데 유용하고 한자를 공부하는 중에 얻을 수 있는 '문화적 배경'과 '지식 습득'도 아주 중요하다. 동아시아 문화권, 특히 한국과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데 한자는 몹시 중요하다. 가령 '책'과 관련된 한자에는 '대나무 죽'자가 많이 사용되는데, 그것은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모르고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한자는 다양한 기호를 기억하게 하고 구별하게 하여 아이들의 인지 능력 발달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기억력도 증진 시킨다. 또한 무언가를 '암기'한다는 것은 학습의 기본이다. 한자를 공부하는 학습법은 학습능력에 큰 영향을 준다. 한자는 아무리 쉽게 공부해도 기본적으로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고로 지속적인 노력과 연습이 필수적이다.

한자를 잘 아는 이들의 경우, 간단한 '중국어', '일본어'에서 사용되는 글에서 대략적 문맥은 파악할 수 있다. 가령 일본어를 거의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책꽂이에 꽂힌 일본어 논문의 제목 정도는 읽을 수 있다. 한자가 중요한 이유는 이뿐만 아니라 무궁무진하다. 지금 이처럼 '한자'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는 과정에서도 얼마나 많은 한자어가 사용되었는가. 고로 한자를 모르면 반드시 한계점에 도달한다. 한자는 될 수 있으면 빠르고 이르게 시작하는 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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