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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눈치 없는 사람을 상대하는 방법

by 오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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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눈치없는 사람들이 있다. 난데없이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을 한다거나, 분위기 파악 못하는 경우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불쾌한 감정을 갖게 된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이런 사람을 상대하기 위해서 '이 부류'의 이해가 필요하다. 이들은 왜 그런 행동을 할까.

첫째, 사회성 부족.

겉으로 보기에 사람들은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누군가는 노래를 잘 부르고, 누군가는 춤을 잘 춘다. 겉으로 보기 알 수 없는 영역은 존재한다. 사람은 각자마다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능력이 있다. 또한 자라면서 학습되는 능력에도 차이가 있다. 누구는 키가 크고, 누구는 눈이 크다. 목소리의 높낮이 또한 각각 사람마다 다른 것 처럼 우리 모두는 다르다. 같은 수업을 들었다고 같은 성적을 얻는 것이 아니듯, 모든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학습능력을 가졌다.

눈치가 없는 이들은 이런 부분에서 '사회 경험'이 부족한 결과다. 언어를 익히고 춤과 노래를 익히듯, 사회성 또한 감각과 경험에 의해 늘어난다. 지나치게 게임이나 커뮤니티, 게임 등에 몰입하면 보편적인 생각보다는 집중한 문화에서의 사회성만 늘어난다. 이런 경우, 사회성이 부족한 듯 보인다.

둘째, 자기 중심적 사고.

모든 동물들은 자신에 더 집중한다. 그것은 본능이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 다르다. 인간은 생존력을 높이기 위해, 타인의 생각을 읽어야 했다. 고로 우리는 누군가의 눈치를 살피는 이들의 생존률을 높였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의 감정에 기민하다. 다른 사람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지루해 하는지, 화가 났는지, 난감해 하는지를 본능적으로 살피게 된다. 이렇게 상대의 표정과 상황을 잘 읽는 이들은 인간 사회에서 생존 능력이 올라갔다. 특히나 동양에서는 '단체' 즉, 타인과의 관계는 무척 중요하다. 쌀농사 짓는 이들은 대부분 관계사업이나 보를 짓는 등의 큰 공사를 지어야 했다. 이런 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과의 관계다. 그러나 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은 분명히 수가 적다 하더라도 반드시 존재한다.

셋째, 감정 인식의 어려움.

아예 태어나면서 선천적으로 감정 인식이 둔한 경우가 있다. 누군가는 추위에 민감하고, 누군가는 추위에 둔감하다. 이처럼 사람은 각자마다 감각의 예민함이 다르다. 우리는 다른 이들의 감각을 읽지 못하는 사람을 '사이코패스'로 분류한다. 그러나 이런 극단적인 경우는 평균값에서 독보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사이코패스와 정상인 사이에는 무수한 값이 존재하고, 이처럼 애초에 감정인식에 둔한 경우는 생각보다 많을 수 있다.

마지막 넷째, 소통방식의 문제

누군가는 음악적인 감각이 뛰어나고, 누군가는 학습 감각이 뛰어나고, 누군가는 운동감각이 뛰어나다. 이처럼 누군가는 '비언어적 신호'나 '사회적 신호'에 뛰어나고, 누군가는 그렇지 못하다. 고로 굳이 언어로 전달하지 않으면 그것을 익히는데 둔감한 이들이 분명히 있다.

그렇다면 이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가.

첫째, 아주 구체적인 언어적 피드백을 제공한다.

"지금, 이 말은 상황에 적절치 않아 보이네."

이처럼 직접적인 언어적 피드백을 제공한다. 예민한 이들에게 이는 분명, '무안을 줄 수 있을 정도지만 눈치가 없는 이들의 경우에는 언어적으로 둔감한 경우가 많다. 고로 직접적인 언어로 의사를 밝힌다.

둘째, 이해하기.

그저 이해하는 것이다. 비난을 최소화하고 '그런 사람인가 보지'하고 넘어간다. 피부색이 밝은 사람에게, '피부톤 좀 낮추세요.'라고 할 수는 없다. 어차피 말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성향이다. 고로 그저 둔다.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야 한다. 상대하기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어도 그것은 '그의 문제'가 아니라 불편해 하는 '나의 문제'라고 인식하고 이해하길 노력해본다.

셋째, 결국 맞지 않는 이들은 나의 에너지를 갉아먹는다. 비록 그 의도가 나쁘지 않다고 하더라도 굳이 함께 할 필요는 없다. 그저 거리를 둔다. 상대를 미워하거나 뒷담화 할 필요도 없다. 그저 피해가 나에게 오지 않도록 거리를 두는 것이다. 피할 수 없는 관계라면 최소한의 말만 한다.

사람은 모두 자신만의 약점을 가지고 있다. 상대 뿐만아니라, 나 자신또한 그런 약점을 가지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자. 나는 나의 약점을 보완하겠다고 다짐하면 얼마만큼을 지키고 살아갈 수 있는가. 스스로도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은 어렵다. 상대도 마찬가지다. 상대 또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긴 어렵다. 고로 미워하는 마음을 내거나 갈등이 생기는 것은 현명한 방법은 아니다. 이쪽에서 불편해 한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문제를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데, 문제를 문제 삼으면 문제가 된다. 상대를 바꾸지 말고 상대를 불편해 하는 자신을 바꿔보자. 이제 깨닫게 된다. 상대를 불편해 하는 자신도 바꾸지 못하는데, 상대는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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