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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대부분의 철학가들이 부자인 이유?_마흔에 읽는

by 오인환

대부분의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를 단순히 철학자로 알고 있지만, 그의 아버지는 마케도니아 왕의 개인 의사였다. 그는 아카데미아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부유한 삶을 살았다. 철학자는 배고프고 속세와 동떨어진 삶을 살았을 거라는 편견은 동양의 '유교'와 '도교'의 영향이 크다. 유교와 도교에서는 물질적 부를 추구하는 것이 도덕적 완성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봤다. 이런 동양의 오랜 생각은 물질적 부가 욕망을 증가 시켜서 고통과 불만족으로 이어진다고 여겼다. 고로 간소하고 검소한 생활을 '도덕'과 결부하는 가치관이 생겼다. 그러나 과연 서구에서도 그럴까.

그렇지 않다.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이자 철학자인 '미켈란젤로'는 꽤 큰 부를 축적한 인물이다. 그는 교황과 다른 귀족들의 후원을 받아 풍요로운 생활을 했으며 다양한 작품 의뢰를 받아 수익을 올렸다. 그는 자신의 수입에 대해 현명하게 관리하여 부를 더 크게 증식 시켰는데 우리가 '물질적 풍요'를 '탐욕과 집착'과 연결하는 것과는 충분히 다른 시각이다. 되려 이런 풍요는 철학적 사고와 내면의 평화를 이루는데 도움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 프랜시스 베이컨 은 영국의 철학가로 알려져 있다. 다만 그는 엘리자베스 1세와 제임스 1세 통치 기간에 고위 정치직인 재무장관을 역임한다. 그 역시 정치적 성공을 통해 큰 부를 축적했고 상당한 재산과 영향력을 가졌다. 그는 변호사 활동을 하며 법률 사건을 처리하고 명성과 부를 얻었기도 했다. 그의 생의 후반에는 부패 혐의로 공직에서 축출되기도 했으나 그의 삶 전반에는 풍요로움이 가득했다. 그는 자신의 물질적, 정신적 풍요로움을 이용하여 경험주의와 과학적 방법론의 초기 개척자로 현대 과학 방법론의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뉴턴 또한 말년에 투자로 인해 전재산을 탕진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의 생은 영국 조폐국 국장으로 공직생활을 했다. 영국 조폐국 국장이라는 직책은 꽤 수익성이 좋은 공직이었다. 이 역할을 통해 뉴턴은 상당한 수익을 얻었다. 또한 그는 초기 남해 회사의 주식에 투자하여 거품이 일어나기 전, 단기간에 엄청난 수익을 얻었다. 그는 시장 변동성과 투기적 거품의 위험성을 간과하여 큰 손실을 얻긴 했지만, 그가 삶의 대부분을 부의 증식에 기울였던 것은 사실이다.

스코틀랜드의 철학자인 데이비드 흄 또한 다르지 않다. 그는 젊은 시절, 상업 활동을 했다. 그는 인식론, 윤리학, 종교비판 등 다양한 주제에 저술을 했다. 다만 그는 재정적 안정을 위해 영국 외교관으로써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에 머물렀다. 그는 이런 활동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수익을 얻었으며 생애 후반에는 재정적으로 여유로운 삶을 살았다.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가인 볼테르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작가로써 성공을 이룬다. 그의 부는 대부분 저술활동과 투자, 사업적 기지로 인해 증식된다. 그 밖에 국채와 복권에 투자하여 엄청난 수익을 올렸고 이후에는 부동산에도 추자하여 상당한 수익을 얻었다. 그가 소유한 여러 부동산에서 나오는 임대 수입은 그의 주수입원이었으며, 당시 기준으로도 매우 부유한 사람 중 한 명으로 그의 경제적 자유는 그가 사회적 정치적 문제에 자유롭게 말할 수 잇는 독립성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의 재정적 성공 사례도 유명하다. 그는 천문학적 계산을 통해 올리브 수확이 있을 것임을 예측했다. 이를 바탕으로 올리브 압착기를 저렴한 가격에 임대하여 고수익을 얻는다. 그는 철학가가 마음을 먹으면 어떻게 부를 만들어 내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자주 거론된다. 쇼펜 하우어 또한 마찬가지다. 그의 부모는 부유한 상인 계급에 속했다. 그의 아버지는 성공한 사업가였고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상속 받은 재산의 상당수를 투자하는데 사용했다. 이 투자는 꽤 성공적이어 안정적인 수입원을 확보했고 경제적 압박에서 벗어났다. 이런 경제적 자유는 그들에게 철학 연구와 저술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여유를 주었다. 그들의 경제적 상황이 그의 철학적 사유와 별개되어 있다해도, 경제적 압력이 꾸준한 상황에서 철학적 사유가 지켜지기는 힘들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시작해서 쇼펜하우어까지 꽤 많은 철학자들은 '적잖은 부'를 이루고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철학가다. 경제적 자유가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쇼펜하우어의 생을 간단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쇼펜하우어는 19세기 독일 철학자다. 1788년에 태어나 1860년에 사망했으니 우리로 치자면 정약용 선생이나, 추사 김정희 선생과 비슷한 시대를 살던 사람이다. 쇼펜하우어는 세상 사람들이 자주 불행해지고 슬퍼한다고 봤다. 그는 세상 사람들의 이런 불행과 슬픔은 '의지'라는 힘 때문이라고 여겼는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좌절과 실망이 괴로움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이런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런 부정적인 것들을 극복하기 위해 그가 제안한 것은 꽤 감성적이다. 감정이 부정적으로 변하는 이유는 '의지'의 끊임없는 욕구와 불만족 때문이다. 고로 이러한 욕구와 욕망을 억제하고 줄이는 것으로 내면의 평화를 얻을 수 이다고 여겼다.

첫째로 그가 제안한 것은 예술이나 자연과 같은 아름다운 것으로의 위안이다. 그는 예술이 인간 고통을 일시적으로 끊어내는데 도움이 된다고 여겼다. 특히나 그는 음악을 그렇다고 여겼는데, 음악은 순수한 감상에 몰두할 후 있도록 우리를 이끌기 때문이다.

둘째는 자기통제와 절제다. 쇼펜하우어는 욕구와 욕망을 억제하고 자기 통제를 강화하는 훈련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물질적인 것과 외부 세계에 대한 욕망을 줄이는 것으로 고통을 최소화 하는 것이다.

셋째는 명상과 내적 성찰이다. 그는 동양철학, 특히 불교와 힌두교에서 영향을 받았는데, 명상과 같은 훈련이 욕망을 초월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여겼다.

넷째는 철학적 성찰이다. 그는 사유를 통해 인생과 세계를 깊게 이해할 수 있다고 봤다. 고로 다양한 책을 읽고 깊게 사유하는 것으로 의지가 만들어내는 고통을 끊어낼 수 있다고 여겼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쇼펜하우어를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지'다. 쇼펜하우어의 의지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욕구와 충동을 말한다. 그의 사상에 따르면 의지는 모든 존재와 현상의 근본적인 힘이며, 우주와 생명의 원동력이다. 쉽게 말해 '눈이라는 감각 기관'은 단순히 생물학적 진화의 결과가 아니라 보려는 의지가 만들어낸 산물일 뿐이다. 모든 것은 '의지'의 표현이며,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신체적, 자연적 현상은 이 '의지'에서 비롯된다. 이 '의지'라는 개념은 19세기에 이르러, 프로이트의 '무의식' 개념과 닿는다. 그런 의미에서 쇼펜하우어의 사상이 '프로이트'나 '칼 융'에게도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사유의 결과물은 '생계'에 대한 꾸준한 압박이 오는 과정에서는 얻어내기 쉽지 않다. 시간적, 정신적, 물질적 풍요는 깊은 사색의 필수 요소다. 우리가 '풍요'에 대해 어째서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게 됐는지를 보면 우리의 마음이 왜 여유가 사라졌는지 또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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