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물거림' 또는 머뭇거림은 일종의 교착상태다. 이런 상태에 빠져 있는 이들은 대체로 '의지박약'이나 '게으름'으로 비춰지지만 실제 반대인 경우가 많다. 마감일에 맞춰 일을 겨우 끝내는 이들은 대체로 '낙관주의자', '완벽주의자'인 경우가 많다. 대체로 자신의 능력을 과만하거나 미래를 낙관하는 경우가 많고, 자신을 평가하는 기준에 충족하기 위해, 최대한 결과를 '지연'하는 경우다. 즉, 꾸물거리는 사람들에 대해 자세하게 알아보고 해결법을 알아보자.
값비싼 물건을 선물 받거나 구매하게 되면 나는 그것에 철저한 주종관계를 주입시킨다. 누가 주인인지 물건에게 확실하게 해준다. 즉, 그것을 함부로 대한다. 함부로 대한다는 것은 '책임없이' 대하는 것과 다르다. '함부로'라는 부사는 사전적 의미로 '곰곰히 생각지 아니하고 조심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를 의미한다. 나는 새로 산 스마트폰에 지문자국이 남을까봐, 노심초사하지 않는다. 혹 나의 흔적이 남겨질까봐 조심스레하지도 않는다. 새로운 차를 구매해도 '새차'의 감성을 유지하기 위해, '포장지'를 뜯지 않는 행위도 하지 않는다. 한 번 나에게 들어온 물건은 웬만해서 '중고판매'하지 않는다. 그것이 사용불가 상태가 될 때까지 나와 함께 한다. 고로 되팔 때, 좋은 가격을 받기 위해 노심초사하며 물건을 대하는 것과는 다르다. 구매한 물건을 중고로 판매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다음 주인의 물건을 '임대 사용'하는 것과 같다. 단연컨데, 임대자와 임차자는 물건 사용 효율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다. 책을 빌려준 사람과 빌린 사람의 차이와 같다. 책을 빌려주는 사람은 자신의 책의 모서리를 접거나 낙서를 하는 등 마음껏 할 수 있지만, 책을 빌린 사람은 그저 눈으로 그것을 볼 수 밖에 없다. 즉, 소유와 경험의 차이에서 그 깊이의 차이가 생긴다.
이렇게 물건을 막 대하기 시작하면, 물건이 편해진다. 물건이 편해지면 대상의 효율을 최대로 활용할 수 있다.
어린 시절, 완벽주의는 '노트 한권'을 다 쓸 수 없는 상태로 만들었다. 문방구에서 노트를 구매하면 그것의 첫 장을 깨끗하게 사용했다. 필기를 깨끗하게 하거나 글씨를 최대한 예쁘게 썼다. 그러다보니, 그 완벽함을 유지하기 위해, 그 노트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것은 내가 어린 시절 겪은 '완벽주의'가 '무능력'이 되는 완벽한 사례다.
비슷한 경우는 역시 있다. 중학교 시절 미술 시간이었다. 별 생각 없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미술 선생님은 내 앞에 서서 한참을 지켜봤다.
"그림에 감각이 있네, 이렇게 그리면 그림 쪽으로 나가도 괜찮겠어. 지금까지 그린 것을 보건데, 다 보지 않아도 만점을 주고 싶을 정도야. 완벽해."
아이들 앞에서 엄청난 칭찬을 들은 나의 그림을 몇 점을 받았을까. 그때 내가 받은 점수는 C였다. 이유는 이랬다. 선생님의 흡족한 표정을 보고 난 뒤, 나는 더이상 그림을 건들이지 못했다. 친구들은 한마디씩 거들었다.
"내일이 제출인데, 칭찬 받은 상태에서 하나도 안 그렸네?"
그렇다. 나는 이미 완벽하다고 칭찬 받은 결과물을 건들이고 싶지 않았다. 결과물은 친구들이 이미 완성될 때 쯤, 부랴부랴 시작했고 데드라인을 겨우 맞추고 형편없는 미완성 작품을 제출하고 말았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만 내 기억으로 '칭찬'은 되려 '방해'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롭 무어'의 책 'Start now, get perfect later'는 원서로 읽었다. 이후에 '결단'이라는 한국어판 제목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원제목이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
'일단 시작하고, 나중에 완벽해져라'
이 책의 도입부에는 '꾸물거림'이 '완벽주의자'에게 일어나는 현상이며 이들에 대한 예시를 다음과 같이 들었다.
"모든 신호가 파란불이 됐을 때, 출발하겠다는 다짐"
대체로 '꾸물거림'은 '게으름'이라는 성격의 결과물처럼 보여진다. 이는 인과관계가 잘못된 경우가 많다. 대체로 자존감이 결여되고 마음이 우울해지는 '우울증 환자'의 경우, 의지력이 약해지고 행동력이 둔해진다. 사람들은 이들에게 '의지력'이 약하고 행동력이 둔하기에 우울증이 걸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만 이들에게 생기는 '의지박약'과 '게으름'은 우울증의 원인이 아니라, 증상이다. 이들에게 부지런하라고 조언하는 것은 '열이 나지 않아야,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는 조언과 같다. 이들이 꾸물거리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원인'이다. 고로 게으름을 고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심리'와 '마음가짐'을 편하게 두는 것이 먼저다. 현대인은 스스로는 모르는 '불안' 속에 살고 있다.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항상 놓여 있고, 끊임없는 마케팅에 노출되어 있다. 세상은 이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도파민 중독'을 유도한다. 모두가 '해야 하는데... 해야 하는데...' 하며 쇼츠, 릴스, 틱통을 넘기며 시간을 보낸다. 이것은 모두 결정 피로도를 소모해버린 현대인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고로 가장 중요한 것은 '부지런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을 정화하고 안정된 심리 상태을 유지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