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과 학폭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시기, 나는 학교를 다녔다. 철 없는 시골 아이들의 장난이겠지만, 지금 생각해도 도를 넘고도 남는 행위들이었다. 남자 아이들은 학교 복도에 설치된 정수기에 금붕어를 집어 넣었다. 한참을 뒤에서 몰래 지켜보다가 누군가 물을 마시다 '금붕어'를 발견하면 키득거리며 웃곤 했다. 더 심한 경우는 '소변'을 넣는 경우도 있었다. 담대한 장난을 칠수록 '대단하다'는 인식이 생겼다. 아이들의 장난은 도를 한참 넘어섰다.
남자화장실은 소변기와 양변기가 구분되어 있다. 양변기 칸에 들어간다는 것은 대변을 본다는 의미다. 장난기 있는 아이들은 대변기에 들어가면 문을 열거나 위, 아래로 물을 붓기도 했다. 이런 장난이 만연한 시기에 학창시절을 보냈던터라 어지간한 장난에는 놀라지도 않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화장실을 이용하지 않았고 교사 화장실을 이용하곤 했는데, 그 마저 선생님께 걸리면 뺨아리를 맡곤 했다. 소변 보는 아이에게 물을 뿌리거나 옷자락을 잡아 끄는 것은 귀여운 수준이었다. 도 넘은 장난은 당시에도 심하게 느껴졌다. 썩은 우유를 가방에 놓고 발로 밟아 터트리기거나 의자에 압정을 꽂아 놓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장난을 주도하는 쪽은 언제나 일부다. 그 장난의 수위가 도를 넘어섰지만 그것이 '학교폭력'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확실하건데 상황에 놓여 있는 이들이 '학교폭력'을 '학교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폭력'이라고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반대로 '신고 사례'가 지나치게 많다. 다른 이유로 학생들은 장난과 폭력을 구분하지 못하기도 한다. '사건보고서'나 '진술서' 따위의 글을 읽다보면 놀라운 경험을 한다. 실제 그럴 법한 일들이 서면으로 분위기나 어휘만 바꾸더라도 완전히 터무니 없는 사건으로 바뀌는 것이다. 폭력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지면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이들도 생긴다. 바로 실제 심각한 수준의 '학교폭력'을 당하는 피해자다. 너무 많은 사건으로 사건에 대한 심각성이 훼손되면 실제 사건의 주인공들은 묻히게 된다. 고로 신고를 하지 않던 과거도 옳지 않지만 너무 흔히 신고하는 현재도 옳지 않다.
학교는 '배움'보다는 '생존'에 적합한 곳이었다. 선생님들은 '보호'보다 관리'를 목적으로 두었다. 부모는 '우리 아이 때려주세요'하는 경우도 적잖았다. 선생님은 각자 자신만의 지휘봉을 가지고 다녔는데, 대체로 몽둥이로 활용됐다. 쇠파이프, 당구규대, 각목 등 남자 선생님들은 꼭 자신만의 아이템처럼 몽둥이를 가지고 다니셨다. 둔탁함, 뼈까지 진동하는 묵직함. 각 선생님들마다 타격감도 달라서 매가 어떤 느낌인지는 지금도 선하다. 매주 월요일마다 '교장선생님의 훈화말씀'에 아이들은 뙤약볕에 서 있다가 '픽, 픽' 쓰러졌다. 짝다리를 짚고 서있거나, 조금만 꼼지락거리면 '구령대'로 불려갔다. 구령대로 불려가는 아이를 뒤로하고 피식거리고 웃으면, 얼마 뒤, '짝'하고 뺨맞는 소리가 학교 운동장에 퍼졌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아이가 눈물을 글썽이며 자리에 돌아와도 누구도 그것이 폭력인지 몰랐다. 학우들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사제지간에서도 너무 빈번하던 학교폭력이었다.
최근 한 인터넷 영상을 봤다. 어린 여고생이 선생님과 말다툼하는 모습이었다. 아버지 뻘 되는 선생님과 딸 뻘 되는 제자가 한참을 싸우는데, 주변에서 학생들은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다. 학교를 졸업한지 꽤 시간이 지나서 현재 교권에 대한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다. 다만 내가 본 영상에서 선생님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기껏해봐야 벌점을 주거나 '위원회'에 보고서를 작성해여 올리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극단에서 극단으로 변해버린 탓에 과거와 현재 중 무엇이 진실인지 헷갈리는 정도다.
개인적으로 현재 교사의 '교권'은 지나치게 낮다고 여겨진다. '폭력'으로 교권을 올리는 것도 옳지 않지만 아무 힘 없는 무능한 교사의 모습도 옳지 못하다. 사람을 관리하는 일은 다른 어떤 일보다 어렵다. 특히 중고등학생들은 더더욱 어렵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하다보면 기가 찬 경우를 자주 접한다.
'모든 일에 부정하는 사람', '모든 일에 의욕이 없는 사람', '무책임한 사람', '무례하 사람', "무관심한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이런 이들 수십명을 모아 놓고 관리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신고자가 원하면 무조건 심의위원회를 간다.'
학교 폭력은 분명 옳지 못하다. 다만 '학교 폭력'이라는 경계선이 너무 낮아지면서, '교사'의 업무는 더욱 늘어난다. '신고자가 원하면 일단 심의 위원회를 간다.' 쉽게 말해 '입건'되고나면 '교사'는 교육 외에 신경 쓸 일이 더 많이 생긴다. 가르치고 상담하고 전화해야 하는 등.
고로 가장 중요한 것은 '학교 폭력'이 어떤 것인지를 배우는 일이다. 어디부터가 폭력이고 어디까지가 장난인지, 그 선을 정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대체로 아이들의 장난이 '폭력'이라고 여기지 못했다. 반대로 누군가는 별거 아닌 장난을 '폭력'으로 여기기도 한다. 이 두 경우는 '진짜 폭력'의 무게감을 가볍게 만든다. 고로 무조건 신고하라, 혹은 신고하지마라, 이야기 할 것이 아니라, 어떤 수준까지가 폭력이고 어떤 수준까지가 폭력이 아닌지, 모두가 인정하는 사회적 합의에 따른 교육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