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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Jan 19. 2024

[창작소설] 내가 그린 그림이 사라졌을 때_2화

비를 맞고 있었다. 전화가 왔다. 불길했다. 피하고 싶었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병원을 향해 달리는 걸음은 아무리 뛰어도 제자리였다. 멈춰버린 시간에 갇힌 느낌이었다. 비라는 장막이 나의 눈과 귀를 막고 진행하는 시간도 막고 있었다.

이제 거의 다왔어. 

몇 걸음만 더... 

다시 몇 걸음만 더... 

조금만 몇걸음만 더...

늘어지는 시간과 공간을 뚫고 나아가는 과정은 힘들고 버거웠다.

 눈앞에 '지현'이 웃고 서 있을 것이다. 그녀의 생일. 싸구려 곰인형 하나 전해 주려고 그녀를 불렀다.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됐다. 그녀를 부르지만 않았더라도.

후회가 밀려왔다. 모든 것이 나 때문이라고 여겼다. 떨어지는 비가 계속 속삭였다.

'그래 너때문이야'

'니가 죽인거야'

귀에서 이명이 들렸다.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다시 이명 뒤에 속삼임이 들렸다. '띵'하는 이명은 사라지지 않았다. 빗소리마저 적막으로 바뀌었다. 아무리 걸어도 제자리인 그 자리에 나는 섰다. '팔딱'거리는 심장이 목구멍을 지나 얼굴 안쪽에서 앞면을 강타하는 것만 같았다. 감각이 돌아왔다. 스마트폰이 울리고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울리는 전화를 받았다.

차오르는 숨이 떨어지는 빗방울을 터트렸다. 

"준현아... 나야."

민준의 목소리가 떨렸다. 대답하지 않았다. 결과를 독촉하고 싶지 않았다. 모른 척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고개를 어두운 곳에 처박고 겁먹은 타조처럼 상황을 외면하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 나는 지현의 사망소식을 들었다. 병원 앞이었다.

"미안하다..."

민준의 말이 솟아 박혔다.

 오른손에 들려 있는 곰인형이 묵직하게 땅 아래로 떨어졌다.

'척'

곰인형이 아스팔트에 떨어졌다. 그렇게 벗꽃 같은 운명이 졌다.

 얼마가 흘렀는지 모른다. 비를 맞고 그곳에서 한참을 울었다. 빗소리가 울음소리를 삼켰다. 빗물이 눈물을 묻었다. 나는 조금도 울지 않은 것처럼 울었다. 한참이 지났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다. 내 손목과 손가락을 지나 '뚝, 뚝' 떨어지는 빗물로 봐선, 비가 그쳤고 나는 거기 서 있을 뿐이었다. 구름은 걷혔다. 정신을 차려보니 민준이 땅에 떨어진 곰인형을 줍고 있었다. 손이 나의 어깨에 올려졌다. 촛점 없는 눈이 갈 곳을 잃게 됐다.

"가해자가 도주하는 바람에 시간이 너무... 지채됐어. 미안하다."

 그 사건이 벌써 4년도 넘었다. 곰인형을 바라봤다. 색이 바랬었다. 무심히 바라봤다. 모든게 이 녀석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 생각은 마음으로 삼켰다. 영혼없는 곰인형을 증오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지 않기로 했다. 오랫만에 서점을 방문했다. 서점은 수년이 지났으나 그대로였다. 달라진 것은 거의 없었으나 사라진 그림이 나타났다. 그것이 내 그림이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림에는 벗꽃 배경에 검은 고양이 한마리가 있었다. 고양이는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지만 표정은 없었다. 내가 잊어버린 그림은 서점에 있었다. 출간한 책의 표지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가갔다.

'그렇게 그녀는 벚꽃이 되었다. 작가 이준현'

책을 들었다. 표지를 한참을 지켜봤다.

"이준현 작가 글이에요."

"네?"

옆에서 나를 향한 시선이 느껴졌다. 뿔테 안경을 낀 여자가 서 있었다.

"이준현 작가 글이에요. 개인적으로 꽤 재밌는 작품이었는데, 4년 전 출간을 하고 이후 활동이 없는 작가죠."

"아... 네."

그녀의 목소리는 꽤 낮고 차분했다. 서점에 어울리는 목소리였다. 나는 책을 다시 집어 넣었다. 자리를 뜨려고 했다.

"작가 님."

뒤를 돌아봤다. 아까 말을 걸었던 뿔테 안경의 여자였다.

"네?"

"이준현 작가 님이시죠?"

"그걸 어떻게..."

"저, 모르시겠어요?"

"네? 누구.. 시죠? 죄송합니다."

안경을 낀 여자는 품에서 지갑을 꺼내 명함을 보여줬다. 

'벚나무 출판, 정혜진이에요.'

"아, 네."

그제야 그 목소리가 기억에 났다. 그녀는 내 처음이자, 마지막 책의 편집자였다.

"혹시 잠시 대화 가능하실까요?"

그녀가 물었다.

"네, 괜찮긴합니다만..."

자리를 옮겼다. 카페에는 '벗꽃' 그림이 그대로 걸려 있었다.

"저는 캐모마일이요."

시선은 그림에서 그녀에게 옮겨졌다.

"아, 작가 님, 소설에 여주인공이 '캐모마일'을 좋아했잖아요. 그래서 그 이후로 저도 캐모마일을 좋아하게 됐어요."

그녀는 말했다.

"그랬었죠. 캐모마일을 좋아했죠. 저도 같은 걸로 주세요."

씁쓸한 웃음을 삼켰다. 지현을 모델로한 소설이다. 그것이 계속 그녀를 떠오르게 했다.

그녀와 나는 캐모마일 두 잔을 주문했다.

"어쩐일로 저를..."

그녀는 말했다.

"작가님, 저희가 얼마나 연락을 드렸는데요. 연락처도 바꾸셨더라구요. 소설 흥행이랑 상관없이, 너무 좋은 소설이었어요. 마지막에 '고양이'로 변한 여주인공이 교통사고를 당하잖아요. 그 부분에 제가 얼마나 울었던지, 편집하면서 그렇게 슬픈 소설을 만난 건,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어요."

"죽이지말 걸 그랬나봐요."

"네?"

"고양이가 된 여자요. 죽이지 말걸 그랬어요. 슬프잖아요."

"아니에요. 작가 님, 여자 주인공이 죽었기 때문에 그 작품이 완성됐어요. 저는 그게 신의 한수라고 봐요."

"신의 한수..."

마른침을 삼켰다. 지현의 얼굴이 떠올랐다. 고양이를 닮은 그녀가 그렇게 마무리 된 건 어쩌면 신이 둔 마지막 수 같은 것이었다. 그럴지 몰랐다.

"저희가 이 소설을 '재출간'하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사고 이후 책을 다시 들여다 보지도 않았다.

"그 책이 반응이 있을까요?"

"그럼요."

그녀는 캐모마일을 한잔 마셨다. 

"'그렇게 그녀는 벚꽃이 되었다'라는 소설 제목을 조금 손보구요. 내용만 조금 바꿔서 재출간해봐요. 저희가 마케팅은 확실히 신경 쓸께요."

"네,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연락을 다시 드릴께요. 작가님, 연락처 하나 주세요."

그렇게 소설은 재출간을 결정했다. 소설의 제목은 "벚꽃이 돼다."으로 결정됐다.

혜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작가 이준현입니다."

"네, 작가님 잘 지내셨어요?"

소설의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바꾸고 싶다고 전했다. 그러나 출판사에서는 그것이 결사반대라고 했다.

"작가 님, 그때 말씀드렸죠. 그 부분이 이 소설에 하이라이트에요. 신의 한수."

"신의 한수."

"그러지말고 지난 번 처럼 표지 디자인만 하나 그려보시겠어요?"

"제가요?"

이번에도 표지를 그리기로 했다. 그러자고 했다. 작업실로 돌아왔다. 빈 캔버스를 한참을 멍하니 바라봤다. 무엇을 그려야 할까. 무엇을 그려도 그것은 또 다시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 뒤로 꽤 시간이 흘렀다. 혜진에게 그림을 보내야 할 당일까지 그림을 찾지 못했다. '지현'과의 이야기는 더이상 기억에 나질 않았다. 무엇을 그려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혹시 민준이라면 도움이 될지도 몰라.' 민준을 찾아가기로 했다.

"민준아!"

병실문을 열었다. 민준은 자리에 없었다. 

"혹시 103동 병실에 있던 김민준 환자 어디 갔나요?"

차트를 챙기던 간호사가 병동 쪽을 살피더니 말했다.

"아, 오늘 새벽에 쇼크가 있어서 중환자실로 옮겨졌어요."

"중환자실이요?"

 조심스레 중환자실 문을 열었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차가운 공기가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났다. 병실 안은 조용했고 긴장감이 돌았다. 밝은 흰색 불빛 아래서도 병실은 은은하게 어두웠고 벽시게의 초짐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병실에 민준이 누워 있었다. 침대로 조용히 다가갔다. 병실의 공기는 산소와 소독제 냄새가 섞여 있었다. 전체적으로 무거웠다. 간호사가 이에 반하는 부드러운 발걸음으로 다가왔다. 민준의 상태를 설명했다.

"현재, 김민준 환자는 안정적인 상태이긴 한데요. 아직 의식 회복되지 않았어요. 지난 밤에 쇼크 때문에 급하게 중환자실로 옮겼는데 지금은 호흡과 심장 박동이 안정이에요. 그런데 의식을 회복할 때까지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아요. 저희가 김민준 환자 상태를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 마시구요. 필요한 모든 치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어떤 변화가 있으면 바로 알려드릴께요."

 간호사는 가볍게 목례를 했다. 인사를 받았다. 간호사는 이내 자리를 떴다.

"민준아."

민준의 얼굴을 살폈다. 민준의 얼굴은 되려 편안해 보였다. 숨을 가볍게 쉬고 병실을 다시 훑어 봤다. 거기에는 빨간색 목도리를 하고 있는 고양이 그림이 있었다. 틀림없다. 저 그림은 내가 그린 그림일 것이다. 나는 밖으로 나가 간호사를 찾았다.

"저기요. 혹시 병실 안에 있는 그림이요. 어디서 났는지 알 수 있나요?"

간호사는 고개를 저었다. 다른 간호사 몇에게 더 물었다.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 작은 소품이나 액자에 출처까지 알고 있을리 없다. 그림으로 다가갔다. 빨간색 목도리를 한 고양이의 모습. 그 배경에는 벚꽃이 날리고 있었다.고양이는 표정이 없었다. 표정없는 얼굴로 나를 뚫어지게 응사하고 있었다.

"너는 왜 그렇게 나를 보는거니..."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뭘.. 미친놈처럼 그렇게 중얼거려?"

민준이 말했다.

"좀 괜찮냐?"

"괜찮겠냐? 암환자인데?"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네"

"그나저나 어쩐일이야?"

나는 그림을 바라봤다. 민준은 눈치를 채고 말했다.

"그거, 네가 준거. 내가 원장님 선물 드렸어. 괜찮지?"

"응. 그게 아니라, 다른 그림도 혹시 있어?"

"그거 물어볼라고, 아픈 사람 중환자실까지 찾아왔냐."

민준은 웃었다. 

"그런 건 아니고 임마."

민준은 몇 부의 사진이 집에 있다고 말했다.

 내가 잊어버린 그림을 찾았다. 잊혀진 기억이 사라났다. '지현'은 고양이를 좋아했다. 그녀는 검은색 페르시아 고양이를 기르고 있었다. 그때가 떠올랐다.

"준현 씨, 고양이가 왜 특별한지 알아? 얘들은 숲속 요정 같아. 스스로의 세계를 가지고 있어. 사람들은 고양이가 혼자를 좋아한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단순히 외로움을 즐긴다는 의미가 아니야. 고양이는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을 필요로 해. 따뜻한 태양 아래서 조용히 누워 있기도 하고, 창가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좋아해. 고양이에게 있어서 혼자 있는 시간은 자신과 대화하고 세상을 탐험하는 시간이야. 어둠 속 별처럼 고독 속에서도 빛을 발한다고. 신비롭고, 자유롭고, 독립적이고. 그래서 나는 고양이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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