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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Mar 05. 2024

[생물] 누군가 당신에게 혈액형을 물어 본다면?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몸에 피가 흐른다는 사실이 밝혀진 건 비교적 최근이다. 고대 의사하면 우리는 '히포크라테스'를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서기 150년 경, 로마에는 의사이자 철학자였던 갈레노스가 있었다. 그 또한 서양 의학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치며 17세기까지 사양 의학의 기반을 이루었다. 또한 그의 영향력은 근대까지 지속됐다. 갈레노스의 연구에 따르면 혈액은 순환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에서 소비되어 사라진다.

 그는 우리 몸에는 4가지의 액체가 있고 이것이 균형을 이루면 건강이 유지된다고 믿었다. 이 네가지 액체는 '혈액, 점액, 노란색 담즙, 검은색 담즙이다. 이중 혈액은 당연 중요한 역할이었다. 이것이 생명의 근원이자 건강의 원천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고대 의학에서 혈액은 어떻게 사용된다고 봤을까. 그 생각에 따르면 혈액은 각 신체 부위로 옮겨진다. 옮겨지며 영양분과 에너지를 가지고 다니는데, 이러한 혈액이 특정 신체 부위에 도달하면 혈액은 사용되고 사라진다. 말 그대로 소모품이다. 그러던 것이 17세기에 이르러 '윌리엄 하비'라는 영국 의사가 현대적 의미의 '혈액순환'을 정의한다. 하비는 실험과 관찰을 통해서 심장이 혈액을 펌브질하고 있으며 이것이 혈액을 신체 전체로 도달하게 한다고 봤다. 펌프질 된 혈액은 산소와 영양분을 각 신체 부위에 제공하고 이산화탄소와 다른 대사 산물을 수거한다. 이런 매커니즘은 연속적으로 작동되는데 그로써 혈액이 재사용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순환하고 재사용 되는 혈액중 일부는 신장을 통해 몸 밖으로 배출된다. 또한 수거된 이산화탄소는 폐를 통해 밖으로 나온다. 즉, 혈액은 '영양분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운반하고 수거하는 매개체라는 의미다.

 현대적 의미의 '순환'을 정의했지만 혈액에 대한 연구가 완전한 것은 아니었다. 1665년에는 혈액을 서로 공유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이 있었다. 몸속에 있는 혈액을 외부의 혈액으로 공급한다는 발상은 당시 굉장히 획기적이었다. 실험 대상은 강아지였다. 먼저 개 한 마리를 죽기 직전까지 피를 흘리게 만든다. 이후 그 개가 과다 출혈로 죽기 직전이 되면 다른 개의 동맥과 개의 정맥을 연결시켜 개가 살아나는지 확인했다. 이 실험으로 개가 죽지 않고 살아나는 것을 확인한 의사들은 즉시 인간에게도 같은 실험을 재개한다.

 1667년 프랑스의 장 바티스트 드니는 15세 소년에게 양의 피를 수혈한다. 이후 그 소년은 실제 회복했다고 보고되기도 한다. 다만 이 수혈 실험은 항상 성공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이 실험에서 다수는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했고 일부 환자는 사망에 이르기도 했다. 혈액은 이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구분할 수 없지만 내부적으로 분명히 종류가 다르다. 

 우리나라의 홍범도 장군이 태어난 시기. 오스트리아에서 '란트슈타이너'라는 인물이 태어난다. 그는 수혈 후 심각한 후유증과 사망사고가 일어나는 일에 대해 호기심을 가졌다. 겉으로는 똑같이 보이는 피라고 하더라도 그 종류가 달라 서로 호환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적혈구의 표면에는 적혈구가 서로 달라 붙게 하는 반응을 일으키는 물질이 있다. 이를 '응집원'이라고 한다.

 응집원에는 A응집원과 B응집원이 있는데 각각 A응집원만 가진 적혈구, B응집원만 가진 적혈구, AB를 모두 가진 적혈구, 둘다 없는 적혈구가 있다. 이것을 ABO로 구분한다. 즉 응집원에 따라 다른 혈액이 엉키면 피는 굳어버린다. 다만 분명 같은 혈액형인데도 그 둘을 결합했을 때, 응집이 되는 현상을 목격한다. 왜 그런고하니, 혈액은 단백질에 따라 그 종류가 다르다. 쉽게 말해 '혈액'은 그 '혈액'이 자기의 혈액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있는 '태그'나 '이름표' 같은 것을 각각 가지고 있다.

 1940년대에 과학자들은 혈액 응고 현상을 연구하기 위해 붉은털 원숭이(Rhesus monkey)라는 남아시아에 서식하는 작은 원숭이를 사용했다. 이 원숭이에게서 혈액의 특별한 항원이 발견된다. 이 항원은 사람의 적혈구에도 발견될 수 있었는데, 이 항원이 존재하면 원숭이의 이름을 따서 RH+(양성), 없을 때는 RH-(음성)라고 한다.

 이처럼 RH는 일종에 혈액에 붙어 있는 '이름표' 같은 것이다. 즉, 자신의 이름표가 있는 혈액은 RH+(양성), '이름표'가 없는 혈액은 RH-(음성)이다. 이는 우리가 태어나면서 결정되는데 이름표를 가진 이들은 이름표가 없는 혈액을 수혈 받아도 문제가 없지만,  이름표 없는 이들이 다른 이름표가 있는 혈액을 수혈 받으면, 이름표가 없는 이들은 '다른 이름표'를 '외부의 침입자'로 규정한다. 외부의 침입자를 공격하기 위해 항체를 생성하고 이 과정에서 적혈구가 파괴되기도 한다. 이 반응을 용혈 반응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수혈받게 되면 혈액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빈혈이나, 신장손상, 심한 경우네는 사망에 이를 수 있다.

 혈액형은 결국, 항원의 차이에 의한 구별이다. 다만 인종차별과 민족주의가 왕성하던 20세기 초반, 굉장히 독특한 주장이 생긴다. 동물과 사람에 대한 혈액형 조사가 한창을 이루던 시기, 국가별 혈액형 분포도 함께 이어졌다. 이 시기는 '골상학'과 '우생학' 등이 유행하던 시기다. 이런 유행은 '흑인 노예'와 '아시아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부여했다. 이 과정에서 동양 국가들에서 B형 혈액형이 유럽과 북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실제로 한국과 일본에서는 B형 혈액형의 비율이 20에서 30%로 추정되는데 이는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은 편이다. 이에 '원숭이에게는 B형이 많다.'는 연구가 진행되며 이것이 새로운 인종 차별의 재료로 사용된다. 실제 독일의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에밀 폰 던게른 교수는 1914년에 Handbuch der Rassenhygiene라는 책에서 '동양인'과 '서양인'의 혈액형 차이를 언급한 적 있다. 이 언급에 따르면 동양인의 혈액형 분포는 서양인과는 확연하게 다르며, 특히나 B형 혈액형이 많은 편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이것이 동양인의 행동과 성격 차이에 대한 새로운 지점을 제공할 수 있다는 내용을 언급했다. 이는 당시 '일본'에 대한 서양의 '오리엔탈리즘'이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가 직접적으로 'B형이 많은 동양인은 야만적이다'라고 주장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주장은 충분히 인종차별적 소재가 될 수 있었고 실제로 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이에 1927년 '후루카와 다케지'라는 교육자가 자신의 주변 인물과 친척 열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하여 '혈액형에 의한 기질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한다. 이 연구에 따르면 A형은 소극적이고, B형은 개성이 강하며, O형은 적극적이다. 또한 AB형은 A형과 B형의 특색을 모두 갖는다. 다시 1970년에는 노미 마사히코라는 작가가 '혈액형 인간학'이라는 책을 출간하고 혈액형별 성격 유형은 '연예인과 유명인'들에서 TV와 방송매체, 뉴스, 잡지로 '일반인들'에게도 전파되며 큰 유행을 갖는다. 다만 일본에서 혈액형별 성격 유형을 정리한 자료는 표본이 지나치게 적고 과학적 근거가 전무하다. 또한 대체로 '과학자'가 아니라 '작가'와 '교육자'에 의해 조사된 내용이라 그 근거를 찾기 더욱 어렵다. 이렇게 일본에서 유행하던 혈액형별 성격 유형은 일본의 경제 호황시기 한국으로 넘어가 한 차례 더 유행을 했고 MBTI 성격유형이 그 자리를 대체하기 전까지 꽤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됐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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