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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Mar 31. 2024

[생각] 나는 매일 다섯시 오십분이면 사탄을 만난다

[생각] 나는 매일 다섯시 오십분이면 사탄을 만난다_인플루언서 순위 8위

 매일 아침 다섯시 오십분이 되면 로봇청소기가 돌아간다. 출력이 최대치인 청소기가 엄청난 소음을 낸다. 알람 시계는 따로 없다. 스마트폰도 없다. 침실에는 전자기기를 최소화하기 때문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집안 전체에 충전선이 없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노트북을 충전하는 충전선은 '세탁실'에만 있다. 밤새 스마트폰을 충전하려면 스마트폰은 세탁실에 혼자 남겨진다.


 내가 만나는 사탄은 다섯시 오십분에 나타난다. 사탄의 모양은 울그락 불그락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매우 달콤하고 아름다우며 매력적이다. 그 향기와 용모, 소리는 마치 천국의 문턱과 같다. 반면 사람들이 '진리'라고 하는 것 또한 가끔 만난다. 진리는 불친절하고 못생겼으며 더럽고 쓰다. 덜 매력적이고 흉폭하다.


 아침 다섯시 반이되면 사탄은 나의 귀에 속삭인다.

 "하루는 괜찮아. 뭘 그리 대단한 일을 한다고 그래. 행복이라는 건 별 거 없어, 그냥 이대로 편한 것이 최고야."

 그 아름다운 용모에서 선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나는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 네 말이 맞아. 기회란 얼마든지 있어. 꼭 오늘만 날은 아니야.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유난이야. 괜히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할 필요는 없어."


 그때, 못생기고 냄새나고 흉폭한 녀석이 나타난다.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지금까지도 네 마음대로 했으니. 대신 네가 선택한 결과를 받아 들여라. 그 끝은 아주 처참할 거야."


저주를 퍼붓는다. 이 싸움에서 나는 가끔은 사탄의 손을 들기도 하고, 진리의 손을 들기도 한다. 아마 모두가 그러하지 않을까. 그 아름다운 용모를 거절할 수 있을까. 그 아름다운 목소리, 향기를 거부할 수 있을까. 그 대척점에 서 있는 '진리'라는 놈을 보아라. 녀석은 냄새가 고약하고 불진철하며 더럽고 못생겼다. 비교 대상이 이러하니 '진리'가 이기는 경우는 극하게 드물다.


 한때, 영국의 수상 '처칠'과 독일의 총독 '히틀러'의 용모에 대한 비교를 본 적 있다. 둘 중 하나는 매우 매력적인 웅변 솜씨를 갖고 있었으며 외모도 수려했다. 또한 꽤 친절한 성격을 가졌다. 반면 다른 하나는 거친 외모와 투박한 말투를 가졌다. 처칠과 히틀러의 외모를 비교할 때, 우리는 극명한 오류를 범한다.


 "사탄"이란 히브리어로 '방해꾼'을 뜻한다. 우리가 이상향이나 목표를 정하고 나가가고자 할 때, '방해꾼'은 어김없이 나타나 우리를 유혹하고 방해한다. 우리를 꾀는 그의 매력이 어설플리가 없다. 사탄의 모습은 반드시 아름다우며 매력적이다. 달콤하고 감미로우며 후광을 갖고 향기롭다.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 너무나도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다. 고로 우리는 '사탄'의 논리와 매력에 빠져 결국 '진리'를 저버리고 만다.


 내면적 유혹, 나태, 회의, 자기 중심적 욕망 이런 것들은 결코 '행태'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것을 '인격화'하면 틀림없이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하고 미인의 외모처럼 아름다우며 꽃처럼 향기롭고 꿀처럼 달콤할 것이다. 그것은 선택하는 순간, 자연스럽게 우리는 '진리'에서 멀어진다.


 울그락 불그락한 표정으로 '지옥불'이 인도하는 '악마'가 아니라,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끊임없이 유혹하며 방해하는 '그것'. '그것'이 사탄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유혹에 넘어가고 살아가는가.

다이어트를 할 때는 맛있는 음식이 우리를 유혹하고, 공부를 하고자 하면 스마트폰과 TV가 우리를 유혹하며, 운동을 하고자 할 때는 포근한 침대와 안락한 소파가 우리를 유혹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것들은 하루에도 수백, 수천번을 찾아와 우리가 진리로 나아가는 방향을 흔들어 댄다.


 사람이 하고저 하는 일이 있을 때, 끊임없는 '유혹'과 '방해'를 받는다. 그 선택은 한번이 아니라, 수십 번, 수백 번 지속적으로 우리를 매혹한다. 한번, 두번 그리고 세번, 네번. 넘어갈 때까지 쉬지 않고 우리을 꾄다.


 '이것만 보고 해야지'

 '이것만 먹어야지'

 '1분만 자고 일어나야지'


 물고기를 낚는데는 한 번의 바늘코만 꾀면 된다. 그것이 걸어지면 '단 한번'만 그 바늘을 삼키면 잠시 나를 잡아 당기는 낚시줄이 가끔은 느슨해진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입에 걸린 바늘을 따라 물밖으로 꺼내진다.


 나는 아침 다섯시 오십분이면 어김없이 아침 인사처럼 '사탄'을 만난다. 그리고는 더럽고 냄새나고 못생긴 무언가의 손을 덥석 잡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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